KB금융그룹이 당분간 푸르덴셜생명을 독립법인 형태로 유지하며 통합 작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허정수 KB생명 사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KB생명 제공 |
허정수 사장 3연임, 푸르덴셜생명 통합 준비 포석
[더팩트│황원영 기자] 허정수 KB생명 사장이 시험대에 올랐다. 푸르덴셜생명과 KB생명 통합 과정의 초석을 다짐과 동시에 부진한 KB생명 실적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지난달 18일 허 사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2018년 취임한 허 사장은 KB금융 계열사 CEO 임기 관행인 2+1(2년 임기 후 1년 연임)을 깨고 3연임에 성공하게 됐다.
이를 두고 KB생명과 푸르덴셜생명의 통합 작업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KB금융은 푸르덴셜생명 인수 당시 사업 안정화 및 밸류업을 위해 독립된 법인 형태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수 시점부터 2년간 사명을 사용하기로 합의했으나 그 전에 양사가 합병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 지난달 푸르덴셜생명은 1989년 설립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앞서 같은 달 KB생명 역시 일부 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푸르덴셜생명과 KB생명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양사 합병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이다. 2019년 말 기준 푸르덴셜생명 정규직 임직원은 500여명으로 대형 생명보험사 대비 직원 수가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인력 중복을 해소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이뤄졌다. KB금융 역시 합병을 통해 고정비를 줄이고 영업력을 높이는 등 시너지 효과를 위한 조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사장은 양사 간 통합을 위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대내외 경영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이번 인사로 경영자로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허 사장은 재무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990년 KB국민은행 입사 이후 명동영업부 부장, 호남남지역본부 본부장, 재무본부 본부장을 거쳐 KB손해보험 경영관리부문 부사장, KB금융지주 최고재무책임자, KB국민은행 경영기획그룹 부행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 LIG손해보험(현 KB손보), 2016년 현대증권(현 KB증권) 인수후통합(PMI) 작업을 주도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바 있다. 이러한 강점을 살려 푸르덴셜생명과 통합 작업에서도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푸르덴셜생명 총자산은 22조4470억 원으로 KB생명(10조2545억 원) 대비 2배 이상 높다. /더팩트 DB |
우선 허 사장은 푸르덴셜생명에 피인수되는 모양새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KB생명은 생명보험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KB생명 총자산은 10조2545억 원이다. 국내 24개 보험사 중 17~18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 같은 기간 푸르덴셜생명 총자산은 22조4470억 원을 기록했다. KB생명 대비 자산 규모가 2배 많다. 순이익 규모에서도 푸르덴셜생명이 월등히 높다. 지난해 3분기 푸르덴셜생명의 누적 순이익은 2420억 원으로 KB생명(92억 원)과 27배 가까이 차이 난다. 덩치가 작은 KB생명이 푸르덴셜생명을 품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부진한 실적도 과제다. 지난해 3분기 KB생명 누적 순이익은 92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9.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19억 원으로 전년(242억 원)과 비교해 50.8% 줄었다. 3분기 순익만 보면 26억 원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GA(보험대리점) 채널을 통한 보험 영업 강화로 수수료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KB생명은 지난해 보장성 보험으로 상품 전략을 확대하며 GA 채널을 강화했다. 3분기 기준 KB생명의 GA 채널 월 환산보험료(CMIP)는 132억 원으로 전년 동기(71억 원) 대비 86% 늘었다.
푸르덴셜생명은 전속설계사와 종신보험 위주로 보험 포트폴리오를 유지해왔다. 65만 명의 가입자 중 고소득층이 많아 수입보험료도 높다. 반면, KB생명은 방카슈랑스와 GA 등을 통한 저축성보험 비중이 크다. GA를 통한 저축성보험 확대로 수입보험료가 늘어날 순 있으나 손익효과는 미미하다. 지난해 3분기 말 KB생명의 영업이익률은 0.49%로 전년 동기(1.41%) 대비 0.92%포인트 감소했다.
이에 허 사장이 KB생명 몸집을 키우면서 양사 간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합병에 따른 인력 감축 우려를 불식하고, 양사 임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통합을 위한 밑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는 것이 성 사장의 당면 과제다.
제로 금리 시대에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면서 보험 업황이 악화됐다는 점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양사 통합이 마무리되면 자산 기준 업계 7~8위 생명보험사로 탈바꿈한다. 금융그룹에서 비은행부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만큼 허 사장의 부담감이 가중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가 통합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으나 화학적 결합에는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이라며 "실적 개선과 자본확충으로 KB생명의 덩치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won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