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이 가증되면서 정부가 지난 19일 오피스텔, 호텔이라도 활용해 아파트에 버금가는 질 좋은 전세를 공급하겠다며 대책을 내놨으나 국민들은 성공여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다. /윤정원 기자 |
"그럼 고위 공직자들이 먼저 들어가세요"...'견지망월' 대책 '싸늘'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임대차 3법 폐지 및 고위공직자 공공임대 의무 거주에 대한 법률'이란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전세난의 근본 원인인 임대차보호법을 폐지하고, 고위공직자부터 솔선수범해 공공임대 주택에 거주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전세 대책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인 지난 20일 올라온 글이다. 24일로 나흘째인데 참여 인원이 2500명 가량 된다. 정부가 빌라, 오피스텔, 호텔이라도 활용해 아파트에 버금가는 질 좋은 전세를 공급하겠다며 대책을 발표하고 대국민 설득에 나섰지만, 시장에서 약발은커녕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며 대놓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호텔방 월세 등 공공전월세가 그렇게 좋다면 총리,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서 임대주택에 먼저 들어가 살아 보세요" "임대주택이 좋다면 왜 고급 아파트에 사십니까" "모범을 보여야 국민도 따라서 행동할 것 아닙니까?"등의 대책 발표 후 국민들의 반응과 같은 맥락이다.
국민 청원인은 "지금 발생하고 있는 주택난은 임대차 3법 때문"이라며 "인정하고 싶으시지 않겠지만 이것이 현실이니 이젠 과오를 인정하시고 임대차 3법을 폐지해달라"고 강조한다.
이어 "국회의원과 국토부를 비롯한 경제 관련 부서의 고위 공직자는 임기 동안 국가에서 그리도 좋아하는 공공임대에 의무적으로 거주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며 "호텔을 개조한 공공임대면 더 좋겠다"고 제안한다. 전세 대책 발표 전후 논란이 된 고위 공직자들의 발언이 더욱 기름을 부은 탓도 크다.
국토부는 대책을 발표 후 장·차관이 나서 대책의 실효성 등을 강조하며 여론 달래기에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브리핑 자리에서 "호텔 리모델링을 통한 전세 물량 공급은 유럽 등지에서 굉장히 호응도가 높다"고 주장했다.
22일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매입 임대 주택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전세대책으로 제시한 매입 임대의 품질을 크게 개선해 아파트 수요를 흡수하겠다"고 강조했다, 허나 비판적 여론은 수그러 들지 않았다.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임대차 3법 폐지 및 고위공직자 공공임대 의무 거주에 대한 법률'이란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전세난의 근본 원인인 임대차보호법을 폐지하고, 고위공직자부터 솔선수범해 공공임대 주택에 거주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 캡처 |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장은 거들었지만 혹 떼려다 붙인 격이 됐다. 진 의원은 20일 임대주택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으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한다. 발언 의도는 짐작이 되나 안 한 것보다 못했다.
진 의원이 서울 강동구에 신축 아파트인 '래미안 솔베뉴'(전용면적 84㎡)에 전세로 살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임대주택이 그렇게 좋다면 고급 아파트에 살지말고 빌라로 이사해라" 등의 비난 글 세례만 받았다.
국민들은 현명하다. 여론을 몰아가려거나 내집 마련의 꿈을 왜곡하면 안된다. 정부는 지금 양치기 소년이 된 지 오래다. 20여차례가 넘는 부동산 대책의 실패가 그렇게 만들었다. 확실한 정책이라도 의심부터 할 판인데 겸손하지도 않게 국민을 가르치려 한다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갔다.
물론 빈 호텔이나 도심 공장, 상가 등을 개조해 전·월세 집 공급을 늘리는 방안은 그럴싸 해 보인다. 설령 국민들이 이같은 대책을 반긴다 해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 비용 측면에서만도 그렇다.
어림잡아 1~2인 가구가 거주 가능한 10평 남짓한 ‘호텔방 월세’만도 월 70~90만 원가량 부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개조하는 비용도 집을 새로 짓는 만큼 많이 들기 때문이다. 조금 넓게 해서 3~4인 가구가 산다해도 한계가 있다. 휴·폐업한 호텔 객실을 모두 끌어모아도 2000가구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지난 3월 서울시가 청년주택으로 공급했던 서울 종로구 숭인동 ‘베니키아 호텔’의 경우 지하 3층~지상 18층을 내부공사를 거쳐 236세대를 만들었다. 40㎡ 이상 평형은 단 2가구이고 나머지는 전부 전용 22㎡ 이하 1인 가구다. 가장 넓은 전용 43.14㎡가 월세 87만원(보증금 4400만원)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택난 해소의 핵심은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에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공공임대를 전세로 전환하고 빌라 임대를 늘린다고 해서 아파트 중심의 임대차 시장이 안정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정부의 전세 대책이 발표된 지난 19일 국회 교통위원회에 출석, 통화를 하고 있다. /국회=남윤호 기자 |
리얼미터가 대책 발표 다음 날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1%는 이번 대책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응답은 39.4%. 권역별로는 전세대란이 극심한 서울에서만 '효과 있을 것' 응답이 47.1%로 '효과 없을 것'이란 46.6%로 팽팽했다.
인천·경기는 '효과 있을 것'이 32.2%, '효과 없을 것'이 66.2%였으며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등에서도 부정 여론이 훨씬 우세했다. 정부·여당은 여전히 부동산 시장 불안을 투기 탓, 유동성 탓만으로만 본다. 진단이 틀리다 보니 처방도 헛발질이다.
불교 경전 중 하나인 능엄경(楞嚴經)에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의 이치와 수행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경전이다.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뜻이다.
본질은 외면한 채 지엽말단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을 두고 흔히 쓰는 말이다. 달을 보여주겠다며 정작 달을 가리키지 않고 손가락만 내놓는다면? 손가락을 달이라고 우기는 억지나 다름없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을 간과한 탓이 크다고 본다. 집은 단순히 사고파는 재화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주는 주거 공간이지만 국민 자산 축적 1호 수단이란 현실을 애써 무시하면 안된다.
견지망월의 헛된 수고는 접고 시장이 신뢰하는 확실한 주택 공급확대 방안부터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bienn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