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과 정 회장의 부인 정지선 씨가 지난달 30일 오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병문안을 위해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이새롬 기자 |
문재인 대통령 울산 공장 방문한 지난달 30일 귀경하자마자 병상 찾아…부부동반 '문안'
[더팩트 | 서재근·이성락·이새롬·임세준 기자] 이날은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친환경 미래차의 요람' 현대자동차(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한 날이었다. 문 대통령은 현대차가 사활을 걸고 개발하고 있는 수소·전기차의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현대차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현대차그룹의 수장 정의선 회장을 "우리 회장님!"이라고 반갑게 불렀다. 정의선 회장은 문 대통령에게 "영광이다"며 감사를 나타냈다. 그리고 다시 350여㎞를 달려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의 병실을 찾았다. 옆에는 부인 정지선 씨가 함께했다.
문 대통령이 울산공장을 방문한 지난달 30일 정의선 회장이 서울과 울산 왕복 700여㎞를 차량으로 오가는 강행군 속에서도 정몽구 명예회장이 입원 중인 서울 송파구의 서울아산병원을 찾는 장면이 <더팩트> 카메라에 포착됐다. 평소에도 시간만 나면 입원 치료 중인 아버지를 찾아 문안했지만, 실제로 병문안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잡혀 확인된 것은 지난 7월 정몽구 명예회장의 입원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은 해외 출장과 같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아버지 병문안을 빠짐없이 챙기고 있으나, 워낙 개인적 일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성격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다"라며 "정의선 회장에게 정몽구 명예회장은 단순한 아버지 관계를 떠나 '정도경영', '책임경영'을 가르쳐 준 스승이나 다름없어 더 각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달 30일 오후 5시 15분께 부인 정지선 씨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정의선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병원 건물 입구에서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마치고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약 2시간 동안 병상을 지켰다.
오후 7시 50분께 병원 1층에서 만난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건강 상태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합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짧은 답변을 남기고 차량에 올랐다.
이번 병문안은 연일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도 '아버지의 건강을 살펴야 한다'는 정의선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오전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한 문 대통령과 만나 현대차그룹이 개발 중인 수소·전기차를 비롯해 자율주행 기술 현황 등을 직접 소개했다.
회장 취임 후 문 대통령과 첫 만남에서 정부 주도의 한국판 뉴딜 사업에 적극적으로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정의선 회장은 일정을 모두 마치고 곧장 서울로 발길을 옮겼다.
정의선 회장의 선대를 향한 각별한 효심은 재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지난 3개월 동안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바쁜 일정에도 시간을 내 가족들과 병원을 찾았다.
할아버지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와병 중이었을 때도 어린 나이의 정의선 회장은 빠짐없이 병문안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9년 10월 어머니 이정화 여사가 별세한 후에는 주말마다 가족들과 한남동 정몽구 명예회장 자택을 찾아 시간을 보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이 입원 중인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방역 수칙에 따라 손 소독을 하고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정의선 회장의 가족 사랑은 '밥상머리 교육'으로 잘 알려진 현대가(家) 특유의 엄격한 가정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치러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례식에서도 '예의범절'을 강조한 가풍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달 26일 그룹 총수 가운데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정의선 회장은 "고인께서 우리나라 경제계 모든 분야에서 1등 정신을 아주 강하게 심어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정의선 회장은 이후 같은 달 28일 이 회장의 영결식에도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키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최근의 이 같은 분위기는 아버지 병상을 지키는 효심을 더 돈독히 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두터운 친분을 쌓고 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과는 아버지의 병석을 지키면서 그룹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데 더욱 공감대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달 30일 오전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현대차그룹이 개발 중인 수소·전기차량을 비롯해 자율주행 기술 현황 등을 직접 소개하고, 정부 주도의 한국판 뉴딜 사업에 적극적으로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청와대 제공 |
주요 그룹 한 고위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은 재계에서도 겸손한 자세와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고 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길을 지킨 것 역시 경제계 큰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라며 "특히, 평소 친분을 나눠 온 이재용 부회장을 위로하면서 정의선 회장 역시 '큰 스승'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애틋함이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버지를 향한 정의선 회장의 존경은 경영 행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대차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이라는 직함을 달았을 당시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직접 회장 승진을 권유받았지만, '부친이 추구하는 경영철학의 큰 틀 아래 (정몽구 명예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에 집중하겠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경영 업무 전반을 총괄하며 최고의사결정권자 역할을 맡아왔음에도 '부회장' 직함을 고수했던 정의선 회장은 경영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어김없이 "회장님에게 더 배워야 한다"라며 선대의 공로를 부각하고, 자신을 낮췄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차에서 내린 정의선 회장은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마치고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임세준 기자 |
지난달 14일 그룹 회장 취임사에서도 그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오늘을 이룩하신 정몽구 명예회장님의 높은 업적과 깊은 경영철학을 계승하여 미래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을 느낀다"라며 정도경영의 철학을 심어준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다.
정의선 회장의 부인이자 정몽구 명예회장의 맏며느리 정지선 씨의 효심과 성품도 재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날 정지선 씨는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베이지색 니트, 청바지 차림으로 정의선 회장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로 지난 1995년 정의선 회장과 결혼한 정지선 씨는 25년 동안 제사와 같은 가족 행사 때를 제외하면 언론 등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내조에 전념했다.
특히, 정지선 씨는 정의선 회장과 해외에 동행할 때면, 현지 명품숍 등이 아닌 공항 면세점에 들러 자녀들에게 줄 립스틱 등을 구매할 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재벌 총수의 아내'라는 화려한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검소하고 근면한 정지선 씨의 성품은 '항상 겸손하고 눈에 띄는 행동을 삼가라'라는 시할머니 고 변중석 여사의 가르침이 대를 이어 전해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약 2시간 동안 아버지의 병상을 지킨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건강 상태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합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짧은 답변을 남기고 차량에 올랐다. /이새롬 기자 |
앞서 정몽구 명예회장은 지난 7월 대장게실염으로 입원, 3개월째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대장게실염은 대장 내벽 일부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생긴 주머니(낭)에 염증이 생긴 질환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입원했을 당시 현대차그룹은 "위독한 상황은 아니며 대장 염증 치료를 받고 곧 퇴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생각보다 건강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등 정몽구 명예회장 신상 관련 각종 루머들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몽구 명예회장은 고령으로 회복이 다소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상태로 일상 대화를 비롯한 인지 기능은 모두 정상이다. 정의선 회장도 이날 2시간이 넘도록 병실을 지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미래차에 대한 관심, 경영 안팎의 내용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어버이는 자식에게 도타운 사랑을 베풀고 자식은 부모를 잘 섬기는 '부자자효(父慈子孝)'의 도리를 실천하고 있는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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