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부사장은 지난 7월 4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덕인 기자 |
일반인과 결혼한 한화 김동관·현대중공업 정기선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재벌은 재벌과 결혼한다는 공식이 깨지는 듯한 분위기다. 재벌의 혼사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보여지고 있지만, 창업주에서 3~4세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일반인과 결혼하는 재벌들이 부쩍 늘고 있다. 그들은 기업의 이해를 고려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와는 달리 자유로운 연애와 결혼을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재벌의 결혼 동향은 최근 들어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37) 한화솔루션 사장은 지난해 10월 기업인 집안 출신이 아닌 여성과 결혼했다.
김동관 사장이 2010년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한화그룹에 합류했다. 그의 결혼 상대방도 그해 한화에 입사했다가 이듬해 퇴직을 했다. 김 사장은 당시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10년가량 교제해오다가 지난해 결혼에 골인했다.
김동관 사장의 사촌이자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장남 김동환 씨도 지난 2017년 사내 연애로 배우자를 맞이한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한화그룹은 혼맥은 대체로 정계 쪽에 집중돼 있었다. 김승연 회장은 서정화 전 내무부장관의 장녀인 서영민 씨를 배필로 맞았다. 서영민 씨의 부친 서 전 장관은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조부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법무부 장관을 지낸 고 서상환 장관이다. 김호연 회장의 부인 김미 씨는 김구 선생의 친손녀이자 김신 전 교통부 장관의 딸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은 지난해 10월 기업인 집안 출신이 아닌 여성과 결혼했다. 사진은 김동관 사장이 지난 7월 4일 정기선 부사장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모습. /더팩트 DB |
올해는 재계에서 1등 신랑감으로 꼽혔던 정기선(38) 현대중공업그룹 부사장이 노총각 꼬리표를 뗐다. 정기선 부사장은 지난 7월 4일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배우자는 연세대를 막 졸업한 교육자 집안의 재원이다.
정기선 부사장의 아내는 대학 시절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뜻을 담아 만든 '아산서원'의 온라인 홍보단에서 활동하면서 현대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가의 결혼 풍토는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유연한 편에 속한다. 정기선 부사장의 동생 정선이 씨는 자유연애를 통해 2014년 벤처기업인 백종현 씨와 결혼했다. 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외손녀인 선아영 씨는 2016년 탤런트 길용우 씨 아들 길성진 씨와 결혼했고, 정대선 현대BS&C 사장은 지난 2006년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화촉을 올려 화제를 낳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자녀들의 결혼에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결혼관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혼기 꽉 찬 재계 인사
재벌들의 결혼 소식이 이어지면서 아직 미혼으로 남아있는 기업 후계자들에게 이목이 쏠리고 있다.
먼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장남 장선익(38) 동국제강 이사는 혼기를 채운 재계 대표 '골드미스터'다. 장선익 이사는 앞서 결혼한 김동관 사장과 정기선 부사장과 막역한 사이이기도 하다. 장선익 이사와 정기선 부사장은 연세대 동문이면서, 세 사람의 활동 영역이 중후장대 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장선익 이사는 정기선 부사장의 결혼식에 참석해 정 부사장을 축하했다. 이날 장선익 이사가 부케를 받으면서 다음 재계 결혼식 주인공은 장 이사가 되는 게 아니냐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장선익 이사는 2007년 동국제강 전략경영실에 입사해 해외법인을 거쳐 2015년에는 법무팀에서 활동했다. 현재 경영전략팀장으로 그룹의 중장기 목표와 투자 관리를 하는 등 경영수업에 매진하고 있다. 장선익 이사는 매년 철강 신년 인사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대외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장남 장선익 동국제강 이사는 혼기를 채운 재계 대표 '골드미스터'다. /더팩트 DB |
동국제강 오너가는 평범한 혼맥을 보인다. 장선익 이사의 부친인 장세주 회장은 상명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 씨와 결혼했다. 장세주 회장의 동생 장세욱 부회장은 군복무 시절 고 김흥기 전 산업은행 총재의 딸 김남연 씨를 친구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동국제강 오너가는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배우자를 만난 경우가 많다. 특히 장세주 회장이 연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38) 한진칼 전무도 미혼이다. 조현민 전무는 그룹의 주요 계열사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현민 전무의 경력은 다양하고 화려하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 LG애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07년 대한항공 광고선전부 과장으로 입사해 광고 팀장, 부장을 거쳤다. 2013년 상무로 승진한 후 다음해 전무에 올랐다. 그는 진에어 마케팅본부장과 진에어 부사장, 한진관광 대표이사,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 등 다양한 사업을 이끌어 왔다.
현재 ㈜한진과 토파스여행정보 임원을 겸하고 있는 조현민 전무는 그룹의 신사업 발굴과 사회공헌, 마케팅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상무도 조현민 전무와 함께 일에 빠져 있는 재계 '골드미스'다.
1980년생인 박주형 상무는 이화여대 특수교육과를 졸업한 뒤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에 입사해 관리 분야를 담당했다. 박주형 상무는 지난 2015년 7월 금호석화 구매·자금부문 담당 임원으로 입사하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박주형(왼쪽) 금호석유화학 상무와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재계 대표 골드미스로 꼽힌다. /금호석화, 한진 제공 |
당시 금호가에서는 여성을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이 금호그룹에서 독립했고 "딸도 능력이 있으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고 장녀인 박주형 상무가 금호가의 첫 여성 경영인이 됐다.
박주형 상무는 구매·자금부문을 5년 넘게 담당하고 있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구매·자금부문 담당은 말 그대로 자금을 다루며 금액의 규모와 관계없이 부담되고 긴장되는 자리이며 업무량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재벌가에는 30대 미혼들이 즐비하다.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아들 정경선 정경선 에이치지아이(HGI) 대표는 1986년생으로 올해 34세다. 정경선 대표는 사회 혁신가와 기업에 후원·투자를 하고 있다.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는 1991년생으로 내년에 30대에 들어선다. 최민정 씨는 2014년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자원입대해 재벌가 여성으로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여 주목을 받았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 있는 SK하이닉스 대외협력총괄 산하 조직에서 국제통상과 정책대응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재벌들의 혼사는 유력한 집안과의 결합으로 도움을 주고받았다면, 지금은 변화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확고한 사업 영역을 갖추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돈 기업에 도움받을 일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정략결혼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jangb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