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과의 M&A 무산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항공 제공 |
이스타, 제주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예고…업계 "항공 재편은 채형석 의지"
[더팩트|한예주 기자]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과의 인수합병(M&A) 무산 후폭풍이 거세지는 분위기다. 이스타항공이 제주항공의 요구로 운항을 중단(셧다운)하면서 경영난이 심화됐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만일 '네 탓 공방'서 제주항공이 불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면 당초 M&A를 의욕적으로 이끌어왔던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의 책임 역시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조만간 제주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다. 제주항공과 M&A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주항공의 요구대로 전 노선의 운항을 중단한 탓에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결국 임금 체불이 발생하고 회사가 현재와 같은 벼랑 끝 위기에 놓이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다른 항공사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국내선 운항을 늘려 국제선 폐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했다. 반면 이스타항공은 4월부터 전 노선 운항을 중단했고, 현재 항공운항증명(AOC) 마저 소멸된 상태다.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 역시 최근 입장문을 통해 "미지급 임금은 인수합병을 추진했던 제주항공의 셧다운 요구와 매출 중단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제주항공 요구에 따른 영업 중단, 매출 동결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스타항공은 앞서 지난 17일에는 제주항공을 상대로 주식매수 이행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지난 3월 2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4월 29일 M&A가 종료됐어야 하지만, 제주항공 측에서 7월 23일 일방적으로 해제를 발표한 만큼 계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견해다.
반면, 제주항공 측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스타항공이 재매각을 추진하며 새로운 투자자를 찾는 것이 결국 계약 해지를 인정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스타항공은 이스타홀딩스가 SPA 해지권을 정식으로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행사할 여지가 있음을 염두에 두고 다른 매수자를 물색 중이라는 설명을 보태면서 양측의 법정 공방은 극단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져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도 그 부담을 져야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선화 기자 |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져버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M&A 계획 자체가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애경그룹이 의욕적으로 이끌어온 사업인 만큼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의 부담 역시 커질 수 있다는 견해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12월 "새 역사를 만들자"며 야심 차게 이스타항공과의 인수합병 결정을 발표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패배했지만, 굴하지 않고 이스타항공으로 눈을 돌릴 만큼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제주항공의 매출이 1조 원을 넘어서고 애경그룹 내 알짜 계열사로 올라서자 생활용품에서 항공으로 사세를 확장하겠다는 그룹사 차원에서의 야심 찬 계획이었다.
특히, 그동안 제주항공이 저비용항공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매출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이스타항공 인수를 계기로 앞으로는 대형항공사와 본격적으로 맞붙겠다는 채 총괄부회장의 의지가 엿보이는 행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에 '빚더미 항공사'로 전락한 이스타항공 인수까지 강행할 경우 동반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이스타항공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채 총괄부회장이 이스타항공 인수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을 강하게 밝히면서 결과적으로 두 회사의 M&A가 물거품이 된 것"이라며 "항공업황이 이렇게까지 안 좋아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겠지만, 인수를 하기도 전에 이스타항공 경영에 개입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제주항공 입장에서는 사실상 좋은 판단이었겠지만, 계약 존속 및 해지 여부를 차일피일 미루는 등 이스타항공에 얼마 없는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다"며 "이스타항공이 다른 인수 후보자 등 자구안을 고민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게 했다는 점에서 제주항공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재매각을 추진 중인 이스타항공은 정리해고 사태, 노조와의 갈등,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책임론 등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다.
조종사 노조는 사측의 정리해고 통보 이후 연일 기자회견 등을 열어 정리해고 통보를 철회하고,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측의 무급 순환휴직 추진 철회와 고용유지지원금 미신청 등을 놓고 노사가 진실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회사 경영진이 직원들을 상대로 이상직 의원을 포함한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정치 후원금 납부를 독려하고 이상직 의원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내용 등이 담긴 녹취록을 잇달아 공개하며 '이상직 책임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 의원의 '위장 이혼' 의혹까지 재차 제기하고 나선 상태다.
이와 함께 노조는 체불된 임금으로 임금 채권을 보유한 채권자 자격으로 조만간 사측 대신 직접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상직 의원은 18일 국회 예결위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분을 헌납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것은 없다"며 "경영할 사람과 주관사가 알아서 다 할 것"이라고 답해 공분을 키우고 있다. 이상직 의원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하며 민주당이 이 의원에 대한 징계 문제를 조기에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이 의원에 대한 기초조사를 시작으로 윤리감찰단을 본격 가동한 상태다.
hyj@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