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식(왼쪽)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이 부친인 조양래 회장의 성년후견심판 절차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25일 밝혔다. 오른쪽은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 /더팩트 DB |
장남 조현식·장녀 조희경 "아버지 건강 상태 확인해야"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이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 사장의 후계자 지목 입장문을 내면서 경영권 분쟁 조짐은 수그러드는 듯 보였지만, 장남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이 부친의 성년후견심판 청구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형제의 난'이 확전일로를 걷게 됐다.
일각에선 조양래 회장이 건강을 자신하는 이례적인 입장문까지 낸 상황에서 장남까지 성년후견심판에 참여했다는 대목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양래 회장의 건강 상태가 입장문과는 다른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조양래 회장의 입장 표명이 결과적으로 '형제의 난'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타이어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형제간 다툼이 일어나면서 그룹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현식 부회장은 25일 입장문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부친의 성년후견심판절차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주는 제도다.
조현식 부회장은 "부친의 건강 상태에 대해 주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그에 따라 그룹의 장래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결정들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제공된 사실과 다른 정보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조양래 회장은 지난 6월 26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23.59%를 블록딜 방식으로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에게 매각했다. 이에 따라 조현범 사장은 지분 42.9%로 그룹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조양래 회장이 주식 매각 이후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반기를 들었다. 조희경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조양래 회장이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넘긴 결정이 정상적인 판단으로 이뤄진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법원에 성년후견인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같은 날 조현식 부회장은 "한정후견 신청 문제에 대해서는 가족 일원이자 그룹 주요 주주로서 고민하고 있다"라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앞으로 행보를 결정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조양래 회장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조현범 사장을 그룹 최대주주로 점찍었다고 밝히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조양래 회장은 "조현범 사장에게 약 15년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겨왔고,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며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해 이미 전부터 최대주주로 점 찍어 두었다"라고 밝혔다.
자신의 건강은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올해 83세인 조양래 회장은 "매주 친구들과 골프도 즐기고 있고, 골프가 없는 날은 P/T도 받고, 하루에 4∼5㎞ 이상씩 걷기운동도 하고 있다"라며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양래 회장이 조현범 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다툼이 수그러질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조희경 이사장의 지분은 0.83%로 많지 않은데다가 조현식 부회장도 명확하게 의사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양래 회장은 지난 6월 26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23.59%를 블록딜 방식으로 조현범 사장에게 매각했다. /더팩트 DB |
하지만 이날 조현식 부회장도 조양래 회장의 성년후견심판 절차에 참여하면서 형제간 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조현식 부회장과 조희경 부회장은 부친의 주식 매각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원은 <더팩트>에 "조양래 회장의 성년후견심판 청구가 인정되고 개시할 경우 법률 행위는 법원이 지정한 제3자 후견인이 맡게 된다"라며 "조 회장이 앞서 했던 행위를 되돌릴 수 있는지는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조현식 부회장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원은 상속과 성년후견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왔던 로펌으로 알려졌다. 이 로펌은 2012년 삼성가 상속 분쟁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리해 승소한 바 있다.
조양래 회장으로부터 지분 23.59%를 인수한 조현범 사장의 그룹 지분은 42.9%로 형제들을 크게 앞서고 있다. 조현식 부회장은 19.32%, 조희경 이사장 0.83%, 조희원 씨가 10.82%를 들고 있다. 세 사람의 지분을 모두 더하면 30.97%로 조현범 사장과 10%가량 차이를 보인다.
한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실적이 고꾸라지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올해 2분기 매출 1조3676억 원, 영업이익 701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4%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33.6% 줄었다.
코로나19 경기 불황에 주요 타이어 공급처인 한국과 유럽, 미국 시장의 수요감소가 영향을 미쳤다. 경영 환경이 어려운 가운데 형제의 난이 본격화하면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내우외환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jangb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