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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체인지(替認知·Change)] ‘부동산과 전쟁’에 여야를 따지지 마라
입력: 2020.07.21 11:09 / 수정: 2020.07.21 16:01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서울의 국공립 시설 부지와 군이 가지고 있는 태릉골프장 등에 집을 짓는 걸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사진은 지난 16일 제21대 국회 개원 연설을 하는 문 대통령./국회=배정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서울의 국공립 시설 부지와 군이 가지고 있는 태릉골프장 등에 집을 짓는 걸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사진은 지난 16일 제21대 국회 개원 연설을 하는 문 대통령./국회=배정한 기자

'그린벨트 해제 논란'은 가관...야권도 냉소적 자세보다 실현 방안을 내놓아야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살다 보면 길을 몰라 헤매는 경우가 생긴다. 앞은 강인데, 강을 건너는 나루는 대체 어디일까? 논어(論語) 미자(微子)편 6장에 보면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에게 "나루가 어딘지 물어오라(孔子 過之 使子路 問津焉 공자과지 사자로 문진언)고 말한다.

부근 주민은 "노나라 공자라면 나루를 알고 있을 것(魯孔丘與, 知津矣/노공구여,지진의)"라며 답한다. 여기서 나루는 나루 자체라기보다는 강을 건너는 효율적 방안을 뜻한다. 이상적인 방책을 묻는다는 의미다. 나루를 몰라도 건널 배가 있으면 된다. 이 때 훌륭한 뗏목이 있다면…

미진보벌(迷津寶筏), 나루를 못 찾을 때 뗏목이 보배라는 한자성어다. 깜깜한 거리의 밝은 촛불 즉 암구명촉(暗衢明燭)과 같은 의미다. 보벌(寶筏)은 본디 불교에서 유래됐다. 고해 중생을 피안으로 건너게 해주는 불법(佛法)을 말한다.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에도 명쾌한 보벌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고 오르기만 하는 아파트 때문에 정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유력한 해법으로 거론되던 그린벨트 해제 검토마저 않는 것으로 결론은 났지만 그 과정에서 혼선을 빚으면서 많이 꼬인 상태다.

당정은 얼마전 '7·10 주택시장 안정 보완대책'에서 국토교통부가 중심이 되어 제안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이 미흡하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세금관련 규제로는 한계가 있고 서울은 대규모 주택공급을 위한 부지 확보가 어렵다고 지적됐기 때문이다.

사업 시기도 장기화될 우려가 높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 이외에는 주택난 해법이 없다고 판단되면서 문제는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다. 뗏목을 찾기보다 ‘강을 메울 건지 나루를 지을 건지 수준의 논쟁’으로 비화된다.

물론 그린벨트 해제 검토가 서울의 서초·강남구 등 강남권이 주요 대상이어서 논란은 가중된 측면을 감안해도 그렇다. 당정 간에 생각이 달랐고 말을 뒤집기까지 하면서 거의 혼돈의 수준까지 갔다.

그 과정을 보자. 지난 14일 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방송에서 "해제를 검토한다"며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론의 불씨를 지피면서 본격화 된다. 다음 날인 15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기재부, 서울시에서 "검토 안 한다" "한다" 등 정 반대 발언이 시차를 두고 쏟아지면서 대혼란에 불을 당겼다. 그러다 당일 오후 당정과 실무기획단 협의를 통해 "그린벨트 활용 가능성을 논의한다"고 가닥을 잡는 듯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에서 제10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마치고 6·17 부동산 정책 후속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이덕인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에서 '제10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마치고 6·17 부동산 정책 후속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이덕인 기자

혼돈의 또 다른 시작일 줄이야... 서울시는 바로 "그린벨트는 ‘마지막 보루’"라며 반대 입장을 못박는다. 17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라디오 방송에서 나서면서 점입가경((漸入佳境)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당정이 (그린벨트 해제 검토 쪽으로) 이미 의견을 정리했다"고 장단을 맞춘다.

이것도 잠시 19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서 "당정이 합의하거나 결정한 적은 없다"며 전혀 다른 취지의 발언으로 그린벨트 해제 기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의 발언은 더욱 혼돈을 부추긴다.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다는 취지에서 (정 총리와 김 실장의 발언은) 같은 내용"이라고 말한다. 우리말인데도 뭐가 같은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어법으로 얼버무렸다.

이런 과정에 딱히 관계 없는 인사들까지 숟가락을 얹어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더욱 긁어 놓았다. 윤석열 총장과 ‘각세우기’에 열을 올리며 사법개혁에 열심인 듯하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까지 그린벨트 논란에 가세한다.

그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그린벨트를 풀어 서울과 수도권을 전국의 돈이 몰리는 투기판으로 가게 해서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이재명 경기도 지사까지 나서 19일 "그린벨트 해제보다는 도심 재개발을 활성화하고 용적률을 높여야 한다"고 거들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직접 나서면서 정리는 됐지만 국민들에게는 이 과정이 어떻게 비칠까? ‘가관의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다. 대통령은 대신 "서울의 국공립 시설 부지와 군이 가지고 있는 태릉골프장 등에 집을 짓는 걸 검토하라"고 했다.

국회에선 여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수도권 집중을 막아야 한다"며 '세종시 행정수도' 카드를 다시 꺼냈다. 그래도 실수요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정부는 점차 ‘양치기 소년’이 돼가는 형국이다. "이젠 정부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문 대통령이 지난 16일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 연설을 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하얀색 마스크를 착용한 반면 미래통합당 의원들(위쪽)은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문 대통령이 지난 16일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 연설을 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하얀색 마스크를 착용한 반면 미래통합당 의원들(위쪽)은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서울의 한 인터넷 언론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 13일부터 14일까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해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극명하게 확인된다., 부정평가가 60.1%로 긍정평가(31.6%) 보다 약 2배 가량 높았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뒤늦게 공급 대책을 마련하려다 보니 혼선이 더 가중되는 것"이라며 "처음부터 종합적인 청사진을 내놓았어야 했는데 세제·금융만 옥죄다 3년의 시간을 허비했다"고 지적했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편을 보면 전국시대 합종책(合從策)으로 유명한 소진(蘇秦)은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했고(전화위복/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이 되게 하였다(因敗爲功)"고 말했다.

주역(周易) 계사(系辭)하편의 수도동귀(殊途同歸)라는 말이 생각난다. 길은 다르지만 이르는 곳이 같음을 비유한다. 부동산정책의 목표는 집값 안정이다. 모두의 목표가 같다면 융통성으로 가는 길은 다를 수 있다.

당정청은 가능한 방안을 다 동원해 같은 목소리로 시장에 주택공급이 늘어난다는 희망의 시그널부터 줘야한다. 실현 가능한 모든 방법을 한꺼번에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생각하자. 서로 반대보다는 치밀하게 검토해 해가면서 실현가능 여부를 함께 따져보라.

야권도 ‘여권의 실수만 바라는’ 냉소적 비판적 자세에서 벗어나 구체적 방안을 내놓고 머리를 함께 맞대라. 중국 진시황(秦始皇帝)의 통일을 도운 정치가 이사(李斯)가 한 말이 떠오른다.

"태산은 작은 흙도 사양 않고 받아들여 이뤄졌고(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강과 바다는 개울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이루어졌다(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고. ‘부동산과 전쟁’에 여야가 따로 있겠는가. 정권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전쟁이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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