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12·16 부동산대책과 최근의 6·17 부동산 대책은 물론 곧 내놓을 정부의 추가 대책까지 포함해 국회에서 신속하게 입법으로 뒷받침해 주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문 대통령 모습. /청와대 제공 |
당정청 대책 초지일관 규제 직진...국민은 글쎄? 야당과 시민단체도 반대
[더팩트 | 김병헌 기자] 기로(岐路)는 갈림길이다. ‘인생의 기로에 섰다’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처럼 우리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도 그래 보인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대중가요 가사처럼 이정표(里程標)가 없는 갈림길에 섰다.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잇단 정책에도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로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1번의 부동산 정책이 나왔지만, 서울의 아파트값은 50% 이상 올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KB주택가격동향을 분석해 지난달 2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중윗값은 52% 상승(3.1억)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 총 상승률(26%)보다 2배 높다. 상승액도 박근혜 정부 4년(1.3억)의 2.3배에 달한다.
곡기읍련(哭岐泣練), 갈림길에서 울고, 흰 실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뜻이다, 선택에 따라 선악이 갈리다는 의미다. 갈림길에서 울고(哭岐), 염색이 안 된 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泣練)는 내용은 회남자(淮南子)설림훈(說林訓)에 실려 있다. 회남자는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이다.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학자였던 양주(楊朱)는 갈림길을 보고 통곡했다. 남쪽으로 갈 수도 북쪽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楊子見岐路而哭之 爲其可以南可以北/ 양자견기로이곡지 위기가이남가이북). 겸애주의 사상가 묵적(墨翟)은 염색 안 된 명주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노란색으로도 검은색으로도 물들여질 수 있어서였다(墨子見練絲而泣之 爲其可以黃可以黑/ 묵자견련사이읍지 위기가이황가이흑).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판단을 해야 한다. 심사숙고하여 한 번 정한 방향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 성공하는 예는 많지만 중국 고대의 현자들도 선택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한 때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 후유증이 드러나는데 되돌아 나오는 것을 자존심의 문제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나중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널수도 있다. 당시는 최상의 판단을 했더라도 세월이 지나 후회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늦다. 개인도 그러한데 나라의 정책은 잘못이 드러나면 포기하고 방향을 돌릴줄 알아야 국민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장은 같은날 비대위회의에서 " 정부가 못하는 정책 대안을 곧 우리가 내놓겠다"고 말했다.사진은 통합당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더팩트DB |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원구성과 상임위원장단 싹쓸이에 반발했던 미래통합당이 국회로 복귀한 6일 "국회의 기본적 의무를 다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이제부터라도 여야가 협력하고 국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길 바라는 국민의 요구가 외면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체적 입법 방향도 애기했다. "최고의 민생 과제는 부동산 대책"이라며 "12·16대책과 최근의 6·17대책은 물론 곧 내놓을 정부의 추가 대책까지 포함해 국회에서 신속하게 입법으로 뒷받침해 주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집값 안정을 위해 필요한 입법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라며 "12.16 대책과 6.17 대책의 후속 입법을 추진해서 다주택자와 법인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율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종부세 실효세율을 높이기 위한 추가 조치를 국회 논의 과정에서 확실하게 검토하겠다"면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위한 금융 정책과 공급 대책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여당은 여전히 '강력한 규제가 답'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가던 길로 계속가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한 셈이다.
반면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장은 같은날 비대위회의에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은 묻지 않고, 집 사려는 국민들만 벌주려 한다"며 "집 한 칸 장만하고픈 평범한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가 못하는 정책 대안을 곧 우리가 내놓겠다"고 말했다.
통합당 내 부동산 전문가로 꼽히는 김현아 비대위원도 "문재인 정부의 두더지잡기식 부동산 정책이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 책임자를 추궁하고 정책을 지금이라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3회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시민단체나 관계전문가들도 정부 여당의 초지일관 밀어붙이기에 고개를 흔든다. 경실련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실패'로 규정했다. 경실련은 △공공·민간아파트 분양원가 상세 공개 △선분양 아파트 분양가상한제 시행 △임대사업자 세금 특혜 폐지 및 특혜 정책 추진 관료 문책 △임대사업자 대출 전액 회수 및 이후 대출 금지 등 을 촉구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세제를 통해 주택 가격 안정화를 도모하겠다는 잘못된 발상"이라고 말했다.
국민도 정부의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에 의문을 표하는 쪽이 많은 것 같다. 지난 3일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를 실시한 결과 6.17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 효과 전망에 대해 '효과 없을 것'이라고 답한 이가 거의 절반인 49.1%였다. '효과 있을 것'이라는 응답은 36.8%에 머무르고 있다.
세상에 사리에 맞고 바른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대책처럼 시각에 따라 이를 따질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존재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있다. 누가 옳고 그른지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라는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이 따로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하는 일은 모두 옳고 자기 생각이 항상 바르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요즘 우리 정치권은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진 것 같다. 그러나 옳은 방향으로 일을 했는데 결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옳은 일은 생각보다 적고 그른 일이 많다. 그래서 세상은 항상 시끄럽다. 나쁜 방향인 줄 알면서도 한 건 아니지만 자세히 따져 보면 옳은 것보다 그른 것이 많은 게 세상이치다.
사기(史記)를 후세에 남긴 사마천(司馬遷)은 중국 최고의 역사가로 평가받는다. 불행 속에서 대작을 집필하여 불굴의 의지가 더 빛난다. 48세 때인 서기전 99년 생식기를 잘리는 궁형(宮刑)을 받고서도 대작을 완성했다. 전한(前漢)의 7대 황제인 무제(武帝)에게 장군 이릉(李陵)이 흉노에 항복한 것을 변호하다 미움을 받아 벌을 받는다. 대류불연(大謬不然)이다. 좋은 일을 하려다 원래 의도와 크게 어긋나(大謬) 다르게 일이 틀어진(不然)경우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기조가 맞다고 해도 국민들 절반이 대류불연이라고 느끼면 정부와 여당은 숙고해봐야 한다. 야당도 기회라며 정략적으로 달려들지 말고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고 이마를 맞대야 좋은 답이 나온다. 이번에는 부동산 대책에 대한 여야의 생각들이 정쟁으로 번져 도문계살(屠門戒殺), '도살장에서 살생하지 말라'는 식의 공허한 훈계가 안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주택이 즐비한 여야 국회의원들에 비해 무주택이나 1주택의 국민들에게는 제대로 된 대책이 곧 생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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