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매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진은 3일 오후 한산한 유니클로 홍대점 계산대의 모습. /한예주 기자 |
일상된 불매운동에도 일부 기업 '무타격'…색깔 잃었다 지적도
[더팩트|한예주 기자]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1년을 맞았다.
불매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소비자들의 외침 아래 '유니클로'와 '데상트' 등 일본 유명 기업들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엔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이 한국 전통문화를 마치 '자기 전통'인양 왜곡해 현지화 전략을 꾀했다는 논란을 만들면서 불매운동은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ABC마트'를 비롯한 일부 기업들은 불매운동 여파를 피해 좋은 성적을 내면서 불매운동이 일본의 전제품이 아닌 소비자 감정에 따른 '선택적 불매운동'으로 변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매운동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유니클로와 데상트는 지난해 실적이 크게 감소하면서 일부 사업을 접는 결단을 내렸다. 사진은 3일 오후 유니클로 홍대점 매장 안이 텅 빈 모습. /한예주 기자 |
◆ '고꾸라진 실적에 사업 접었다' 불매운동 직격 유니클로·데상트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5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빠르게 한국 패션시장을 점령하던 유니클로 등 패션업체들은 불매운동의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유니클로는 2015년부터 4년 연속 '매출 1조 클럽'에 들 정도로 초고속 성장했다. 연간 영업이익도 2000억 원대를 기록하며 오랜 불황으로 힘겨워하는 다른 패션업체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불매운동이 시작되자 유니클로는 '불매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됐다. 지난해 7월 유니클로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오카자기 타케시가 "한국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니클로 광고 속에 위안부 폄하 내용이 포함됐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에 더욱 적극 동참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유니클로 실적에 바로 반영됐다. 지난해 유니클로의 매출은 974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3% 급감했으며,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문을 닫는 매장도 속출했다. 유니클로는 올해에만 벌써 11개 매장을 폐점했으며 그 결과 2018년 186개까지 늘었던 매장 수는 지난달 기준 174개로 줄어들었다.
유니클로의 자매 브랜드인 'GU(지유)'는 한국 진출 1년 8개월 만에 한국 내 매장을 모두 철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유 온라인 스토어는 이달 말까지, 오프라인 스토어는 다음 달까지만 운영된다.
일본 스포츠 브랜드 데상트 역시 불매운동에 직격타를 입었다. 데상트에 한국 시장은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주력 시장이었지만, 불매운동으로 지난해 하반기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매출액은 15.3%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697억 원에서 90억 원으로 86.7% 급감했다. 19년 연속 흑자 기록은 겨우 지켰으나 이익은 급감했다.
특히, 단독 매장으로 전개하던 주니어 스포츠 브랜드 데상트 '영 애슬릿' 라인도 매장을 접고 데상트 매장 내에서 운영하는 형태로 사업을 축소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데상트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이어 스포츠웨어 업계 매출 3위 수준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불매운동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산 대체상품을 쓰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의 문제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이 '로컬 마케팅' 논란에 휩싸이면서 불매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무인양품 인스타그램 캡처 |
◆ 무인양품, 때아닌 '식민지 에디션' 논란…불매운동 거세져
생활용품 브랜드 '무지'를 운영하는 무인양품도 불매운동 탓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9.7% 줄어든 1243억 원에 그쳤고, 영업이익은 193.4% 급감해 71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당기순손실은 57억 원을 기록했다.
이런 와중 최근 새롭게 문을 연 무인양품 강남점의 매장 콘셉트가 논란에 휩싸였다. 매장 내 전시된 저고리 자켓, 뚝배기, 때밀이 등을 두고 일본 기업이 한국 전통문화를 왜곡해 '로컬 마케팅'에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커진 것이다.
지난달 26일 확장 이전 오픈한 무인양품(MUJI) 강남점은 공식 SNS 계정을 통해 27일 '선조의 지혜에서 배운 전통의 일상복' 출시를 알리면서 '저고리 자켓'을 대표 상품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이 '저고리 자켓'을 두고 그 형태가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한복이 아닌 일본의 전통 겉옷인 하오리(羽織)와 모양이 닮았는데도 '저고리'로 명칭해 한국 전통의상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함께 전시된 아이템들도 '한국 전통'과 연관된 소품들이지만, 매장 내 소개 문구는 '한국'보다 '전통'에 초점을 맞춰 한국 전통문화를 마치 자신들의 전통인양 왜곡해 소비자들을 우롱했다고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일부 네티즌들이 "대영박물관 약탈 에디션을 잇는 '식민지 에디션'"이라고 꼬집자 일본 불매운동에 불을 붙여야한다는 움직임이 거세지는 분위기다.
일부 기업들은 불매운동의 여파를 피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불매운동이 '선택적 불매운동'으로 변질됐다"는 아쉬운 평가도 나온다. 3일 오후 ABC마트 홍대점 외관. /한예주 기자 |
◆ 불매운동 피한 ABC마트…'선택적 불매운동' 지적도
반면, 이 같은 일본 불매운동에도 실적을 유지한 회사들이 있다. 일본 기업이라는 인지도가 낮은 기업들이 그 대상으로, 가장 대표적으로는 ABC마트가 꼽힌다.
ABC마트코리아는 일본 ABC마트가 99.96% 지분을 소유한 순수 일본계 기업이다.
하지만 ABC마트코리아는 스니커즈, 운동화를 취급하는 신발 유통업체 가운데 여전히 국내 1위를 달리는 중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의 브랜드를 판매하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ABC마트에서 상품으로 유통되는 글로벌 브랜드의 운동화를 불매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고 제품을 유통한 유니클로, 데상트, 무인양품 등과 차이가 있다.
이에 ABC마트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이 5459억 원으로 2018년 대비 6.7% 늘고 영업이익은 376억 원으로 11.9%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줄었지만 매출은 오히려 상승하면서 불매운동을 비껴간 셈이다.
양호한 실적에 지난해 ABC마트코리아는 일본 본사에 ABC마트의 상표권 등에 대한 로열티 81억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2018년 82억 원의 로열티를 지급한 것과 비교했을 때 고작 1억 원 줄어든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프라인 구매가 많은 신발 특성상 ABC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줄어들지 않은 것 같다"면서 "매장 수 뿐 아니라 납품 물량 역시 다른 신발 유통업체에 비해 월등해 일본 기업이라는 점은 가려진 듯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택적 불매운동'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개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소비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불매운동이 다소 그 색을 잃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 1일 '한국 알리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 1년이 됐다. 지난 1년을 되돌아 보면,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불매운동이 일본 여행, 맥주, 자동차 분야 등에서 큰 타격을 입혔다"면서도 최근 G7 체제 확대 구상에 일본이 반대 입장을 표명한 점, 일본의 역사왜곡이 더 심해져 가고 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더 잘 해야할지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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