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지난 2018년 6월 국내 시장에 최초로 선보인 고성능 브랜드 N 라인업 '벨로스터 N'의 상품성을 개선한 '2020 벨로스터 N'을 출시했다. /용인=서재근 기자 |
2020 벨로스터 N, '달리기' 위해 태어난 '일상의 레이싱카'
[더팩트 | 서재근 기자] 1995년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니 당시 '영광의 레이서'(일본 원작,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을 보며 '나도 저런 멋진 차를 타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자동차 혹은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 낯설지 않게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극 중 주인공이 경쟁자와 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마치 미사일 발사 버튼을 연상하게 하는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자동차가 거친 굉음을 내며 부스터 모드에 돌입, 멋지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광경을 한 번씩은 봤을 것이다. 영화 '분노의 질주'(패스트 앤 퓨리어스1)에서 등장한 NOS 시스템처럼 말이다.
'2020 벨로스터 N'의 외관은 기존 모델과 비교해 큰 변화는 없지만, WRC 경주차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리어 스포일러와 헤드레스트 일체형 스포츠 버킷 시트인 'N 라이트 스포츠 버킷 시트', 19인치 알로이 휠 등 고성능 모델만의 차별적 요소는 차량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느끼게 만든다. /용인=서재근 기자 |
물론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불을 내뿜으며 시속 수백km의 속력을 과시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운전자로 하여금 '달리기에 특화된 특별한 차'를 타고 있다는 감성을 전달해주는 탈 것이 드디어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도 탄생했다. 지난 21일 현대자동차(현대차)가 출시한 '2020 벨로스터 N'이 그 주인공이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AMG 스피드웨이'에서 2020 벨로스터 N을 시승했다. 'N'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BMW의 'M'과 같은 현대차의 고성능 모델로 '벨로스터 N'은 국내 시장에서 출시한 첫 번째 'N 라인업'이라는 상징성 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차명 앞에 붙은 '2020'이라는 숫자에서 알 수 있듯이 2020 벨로스터 N은 상품성을 개선한 연식변경 모델이다. 사실 디자인 부분에서는 지난 2018년 6월 출시된 기존 모델과 비교해 눈에 띄는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N 브랜드 전용 색상인 '퍼포먼스 블루'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날렵한 실루엣과 WRC 경주차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리어 스포일러, 전·후방에 부착된 'N'마크, 19인치 알로이 휠 등 차별 요소에서 느껴지는 날렵한 이미지도 그대로다.
현대차는 '2020 벨로스터 N'에 무선 업데이트를 지원하는 최신 8인치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신규 인포테인먼트 장치를 기본 적용했다. /용인=서재근 기자 |
운전석에 앉으면, N브랜드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현대차는 이번 모델부터 '일상의 스포츠카'를 표방, 무선 업데이트를 지원하는 최신 8인치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신규 인포테인먼트 장치를 기본 적용하는 등 변화에 나섰다. 그러나 첨단 신기술을 반영한 편의사양을 전면에 내세웠던 최근 신차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갖출 것만 딱 갖춘' 2020 벨로스터 N의 내부가 너무 단출하게 느껴질 것이다.
선택사양인 헤드레스트 일체형 스포츠 버킷 시트인 'N 라이트 스포츠 버킷 시트'에 앉으면 눈으로 느껴지는 감성은 물론 등부위부터 엉덩이까지 전해지는 타이트한 착좌감에 이르기까지 영락없는 '달리기용 차' 이미지 그 자체다.
이번 2020 벨로스터 N의 가장 큰 특징은 진화한 변속 시스템과 극한의 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N 그린 쉬프트(NGS)' 기능이다. 차에 탑재된 2.0ℓ 터보 엔진은 기존 모델과 마찬가지로 275마력과 최대토크 36.0㎏f·m의 힘을 발휘하지만, 8단 습식 더블 클러치 변속기(N DCT) 사양이 새로 추가되면서 엔진의 잠재된 힘을 남김없이 주행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차에서 자체적으로 측정한 수치지만,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도 5.6초로 수동변속기 사양 대비 0.5초 줄었다.
주행 때 스티어링휠 오른쪽에 배치된 'NGS' 버튼을 누르면 순간적으로 토크를 높이는 오버부스트 기능이 20초 동안 작동된다. /용인=서재근 기자 |
실제 주행에서 운전자가 느끼는 주행 감성은 이 같은 '숫자'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다. 일반 도로가 아닌 서킷 위를 달리는 약 30여 분 동안 마치 전문 레이싱선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특히, 개선된 주행 성능 및 기능에 있어 백미는 단연 순간적으로 토크를 높이는 오버부스트 기능을 갖춘 NGS다.
서킷 내 직선 구간에서 인스터럭터(강사)의 지시에 맞춰 스티어링휠 오른쪽에 배치된 'NGS' 버튼을 누르자 계기판 중앙 디스플레이에 'N Grin Shift'라는 글귀 밑으로 강렬한 빨간 색의 원이 나타나고, 그 안에 '20'이라는 숫자가 초 단위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해당 기능을 활성화한 채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어느새 몸은 시트에 더 가까이 밀착돼 있고, 강렬한 엔진 사운드와 차체가 하나가 돼 마치 포탄이 날아가는 것 같이 치고 나간다. 속도계 바늘도 눈을 한번 깜빡이는 사이 시속 170km를 넘어 180km를 향했다.
허용된 20초라는 시간 동안 마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속 주인공이 사용한 '필살기(?)'를 직접 재연하는 짜릿한 느낌은 시승이 끝난 후에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단, 이 기능은 엔진 과부하를 방지하기 위해 한 번 사용한 후 3분 동안은 재사용이 불가하다.
'2020 벨로스터 N'은 '노멀', '에코', '스포트' 등 3가지 주행 모드에 따라 다양한 주행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용인=서재근 기자 |
물론 이런 특수한 기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2020 벨로스터 N의 가속력과 이에 상응하는 제동력, 코너링을 비롯한 주행 능력은 차량의 정체성을 운전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특히, 스포트 모드에서 가속페달을 90% 이상 힘껏 밟으면 창문 너머로 '두둥!' '두두둥!' 역동적인 엔진 사운드가 귀와 가슴을 울린다. 이런 감성적인 요소 역시 차량의 특성을 잘 살린다.
일반 모델과 비교해 태생적으로 '달리기'에 특화된 N 브랜드 중에서도 2020 벨로스터는 공간 활용성이나 편의성 등을 고려하면 결코 패밀리카나 데일리카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국내를 대표하는 완성차 업체에서 이 같은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자체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하고 싶다.
'탈 것'의 최우선 가치를 '잘 달리는 것'에 두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2020 벨로스터 N이 '가성비'가 아닌 '가심비'를 충족할 수 있는 훌륭한 선택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likehyo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