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보유세 부담에 따라 공시가격 인상안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대치동부센트레빌' 모습 /윤정원 기자 |
청와대 국민청원 '인상안 전면 철회' 동의 1만 명 넘어서
[더팩트|윤정원 기자] 서울 지역 내에서 공시가격 인하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세금 산출 기준으로 작용하는 공시가격이 크게 오르며 세부담이 커졌다는 데 따른 것이다.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에는 동의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얼어붙고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앞서 지난달 18일 국토교통부는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5.99% 상승했다고 밝혔다. 서울의 경우 공시가격 상승률 14.75%를 기록했다. 서울 강남구는 25.27% 뛰었고, 서초구 역시 22.57%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송파구(18.45%) △양천구(18.36%) △영등포구(16.81%) △성동구(16.25%) △용산구(14.51%) △마포구(12.31%) 등도 크게 올랐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대한 이의신청 마감일은 이달 8일로 정해진 상황. 아파트 소유자·입주자 모임은 이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일례로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입주자대표회의의 경우 주민들이 연명부에 서명할 수 있는 공간을 단지 정문·후문에 마련해 둔 상태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오는 6일 서명이 마무리되는 대로 관할 구청인 강남구청과 한국감정원 서울지사에 이를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2020년 공시가격 인상안의 전면철회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벌금과 같은 징벌적 세금을 '고래', '새우' 구분 없이 무차별적으로 부과하는 것이 과연 옳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투기 세력으로 꼽히는 다주택자만을 겨냥한 것이 아닌, 오히려 겨우 내집마련에 성공한 중산층들에게 타격이 큰 칼을 빼든 것 아니냐는 토로다.
청원글에는 "부동산은 경기에 따라 변동이 커서 매도 시점에 지금 가격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고, 급매는 가격이 현저히 낮아 공시가격을 하회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보유세는 미실현 추정자산에 과세하는 것이므로, 시장가보다 20% 정도 낮은 시세일람표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게 마땅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글은 "징벌적 과세의 피해가 여유로운 상류층보다는 생활이 빠듯한 중산층에게 집중된다. 공시가격이 인상되면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등 60여 개 지표에 연동된 준조세 부담이 증가하여 중산층의 생활이 쪼그라들게 된다. 정부는 '감당할 능력이 안 되면 떠나라'고 하는데, 생활터전이었던 정든 집 빼앗고 변두리로 쫓아내는 이것이 정의로운 정책인가"라고 묻는다. 지난달 31일 올라온 해당 청원에는 1일 오후 3시 50분 기준 1만1064명이 동의의향을 밝힌 상태다.
1일 오후 3시 50분 기준 '2020년 공시가격 인상안의 전면철회를 청원합니다'라는 글에는 1만1064명이 동의의향을 밝힌 상태다. /청와대 국민청원 화면 캡처 |
물론 이에 따른 반박도 상당하다. 아파트값 폭등 시기에는 잠자코 있던 사람들이 약간의 집값 하락세 속에 공시가격 상승으로 인해 세금 부담이 커지니 불만을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공시가격 인상 철회 견해 관련 기사 아래에는 "폭등 때에는 가만히 있고 쥐꼬리만큼 내려가니 청원을 올린다. 앞서 오른 가격에 대해 세금을 토해낼 의향이 없다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게 옳지 않은가" 등의 댓글 또한 다수 보인다.
그간 서울 아파트값은 오름세를 지속해왔으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2주 전 대비 0.01% 내렸다. 지난해 6월 첫 주 이후 아홉 달 만에 내림세로 전환했다. 송파구가 0.17%, 강남이 0.12% 떨어지며 하락을 주도했다. 1일 한국감정원에서 발표한 '3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 공표'를 보더라도 전월 대비 강남구는 0.33% 떨어졌다. 송파구(-0.33%)와 서초구(-0.27%)의 하락세도 눈에 띄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에서 공시가격 인상과 관련해 주장하는 것은 3억 원 미만은 적게 올렸고, 그 이상은 많이 올렸다는 등 아파트값 기준 별로 인상폭을 차등 적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가격이 다 오른 셈이기 때문에 (아파트값 하락세 속) 서민층이 체감하는 세금 인상폭은 클 수 있다. 부자의 5만 원과 서민의 5만 원이 갖는 가치는 다르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국내 경제활동 위축으로 경제성장률 하락세가 더 커질 것으로 보여 조세를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도 저하될 것으로 관측된다"며 "자금출처강화, 대출규제, 양도세중과 등으로 퇴로 없이 보유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은퇴한 고령자나 고가주택자를 중심으로 조세저항이 강해질 것으로 본다. 경제상황을 참작해 인상시기 유예와 인상폭 속도 조절을 고려해봄직하다"고 언급했다.
모 대학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동주택 공시가격 이의신청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이고, 이는 매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는 없는지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특히 공동주택은 한국감정원 일반 직원이 조사·산정 방식으로 전수조사를 하고 있으나 검증제도조차 없다. 국가에서 부동산시장 전문가로 자격을 부여한 감정평가사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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