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설비 구축에만 1조 원을 투자하고 공사 기간을 기존 목표보다 3개월 가량 단축시키는 등 사업 고삐를 당긴 SK에너지 VRDS 공정이 시운전을 완료하고 상업생산 채비를 마쳤다. /더팩트 DB |
코로나19·유가 하락 등 시황 악화 우려에도 수익성 회복 절실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설비 구축에만 1조 원을 투입한 SK에너지의 울산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Vacuum Residue Desulfuriztion)가 성공적 시운전을 마치고 착공 27개월 만에 본격 가동에 나섰다. 이에 따라 SK에너지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수익성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가동 시점이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로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회복이 시급한 SK이노베이션 수익의 한 축을 담당할 지 여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30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정유 자회사 SK에너지의 울산 CLX 내 VRDS 설비가 최근 상업생산에 돌입할 채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말 기계적 준공을 마쳤고 이달 14일 초기 시운전을 완료했다.
SK에너지의 VRDS 공정은 지난 2017년 SK이노베이션이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유 황함량 규제에 따라 향후 전개될 정유업종의 친환경 움직임에 발맞춰 1조 원을 투입해 구축한 설비다. 감압증류공정의 감압 잔사유(VR)를 원료로 수소첨가 탈황반응을 통해 저유황유 선박유와 경질유 등을 대량으로 생산할 방침이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이번에 구축한 VRDS 공정에 SK그룹 차원의 석유화학업종 노하우와 역량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VRDS 공정은 공사기간 초기 목표보다 3개월 가량 단축하면서 예산을 절감했고, 공사 과정에서 고압을 견뎌야 하는 배관과 반복된 틈새 현상 등이 한 건도 나오지 않는 등 성공적인 설비 구축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시운전 당시 기존에 예정됐던 외국 설비업체 전문가가 코로나19 여파로 입국하지 못한 악재가 있기도 했으나, 자체 기술력으로 시운전에 성공했으며 공사 기간인 27개월 동안 재해와 사고가 1건도 나오지 않는 등 성공적으로 설비 구축을 마무리했다는 자평이다.
또한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과 조경목 SK에너지 사장 등 최고 경영진이 공사 기간 동안 총 20회 이상 현장을 방문해 수시로 점검하는 등 SK이노베이션이 VRDS 공정에 거는 기대감을 반증하기도 했다.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은 "VRDS의 성공적 시운전 완료는 SK에너지의 높은 공정 운전 기술력의 결정체로서, 이는 최근 처한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SK에너지만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며 "SK에너지는 미래 경쟁력의 한 축이 될 VRDS를 비롯한 친환경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혁신해,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에 앞장 서 나가겠다"고 시운전 완료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SK에너지는 울산 CLX 내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의 기계적 준공과 및 시운전을 마쳤다고 29일 밝혔다. 사진은 SK에너지의 VRDS 설비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
다만 이번에 신설 가동될 SK에너지의 VRDS 공정이 가져올 수익성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보내는 시각이 있다. 김준 사장이 지난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이라고 표현할 만큼 업황이 좋지 않고, SK이노베이션이 다루는 정유·석유화학·소재 등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유가는 지난해부터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와 경기 침체 영향 등으로 회복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 공정 구축에 따른 잠재적 공급 과잉 여파도 우려된다.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등 일시적인 경기 침체 현상이 지속되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동률과 시황이 회복되면 석유화학을 포함한 모든 제조업계에서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SK에너지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좋지 않은 최근 실적 흐름도 우려감을 높히는 요소로 작용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전년 대비 39.6% 감소한 1조2693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특히 전체 매출 중 70% 가량을 책임진 석유 관련 사업에서 영업이익이 35%에 그치며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까닭에 SK이노베이션은 VRDS 공정 등 자회사들의 신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월 지난해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을 통해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SK에너지의 VRDS 공정은 회사의 연간 영업이익을 2000억 원에서 3000억 원 가량 끌어올려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의 연결기준 석유사업 영업이익(4503억 원)의 절반 수준이나 그 이상에 달한다. SK에너지의 VRDS 공정이 업황 악화에도 모기업의 기대를 받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여파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국제 유가가 크게 요동침에 따라 수주처인 선박 회사 등이 발주를 지연하고 있다. 이에 SK에너지의 VRDS 상업가동 시점이 시장 상황에 따라 좋다고는 볼 수 없다"며 "다만 SK이노베이션 경영진이 공사 현장에 여러차례 방문해 실태를 점검하고 이례적으로 공사기간도 단축하는 등 사활을 걸어온 만큼 수익성이 악화된 SK이노베이션의 석유 사업에서 새로운 활력이 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