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일부 시민단체가 지난 21일 파기환송심을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단죄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더팩트 DB |
'이재용 재판' 향한 입법부 '월권', 삼권분립 가치 훼손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국가 권력을 세 기관이 나누어 맡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쓰시오.'
한 초등학교 6학년 사회과목 시험문제다. 해당 문제의 답은 '삼권분립(三權分立)'이다. 삼권분립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국가권력의 작용을 입법과 행정, 사법으로 나눠, 각각 별개의 기관에 이것을 분담하도록 해 상호 간 견제·균형을 유지함으로써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통치조직원리'라고 명시돼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국무총리로 임명한 것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삼권분립 가치가 훼손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문 대통령은 일각에서 제기된 이 같은 논란을 두고 '정치적 공격'이라고 정의하며 총리 임명 배경에 대해 "정 총리만한 적임자가 없고, 총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가치가 삼권분립 논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어느 정권이나 그 종류만 다를 뿐 대통령과 정부의 결정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례 없는 국무총리 내정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통령의 결단(?) 이후 최근 삼권분립 가치 훼손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는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정부 여당 국회의원과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현재 파기환송심을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단죄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민주당 의원 34명과 정의당 의원 6명 등 국회의원 43명과 민주노총,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21일 '이재용 파기환송심 관련 사법정의 실현을 희망하는 국회의원, 노동, 시민단체 공동성명'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성명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최근 치러진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네 번째 공판에서 재판부가 특검 측이 증거로 제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관련 자료를 채택 거부하고,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위)의 설치를 '실효적 운영'을 전제로 양형 판단에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사법거래'이자 '법경유착'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대표 반도체 제조사이자 재계 서열 1위 기업 총수의 경제범죄 혐의 재판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각계각층에서 해당 재판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견들이 나름의 창구를 통해 표출되는 것은 어떠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4차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김세정 기자 |
그러나 이번 성명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국회의원은 입법부 소속으로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국회의장 출신 국무총리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 공세', '흠집 내기'로 단정한 집단이 더 노골적인 방법으로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을 흔들고 있다.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특정 재판에 대해 입법부 소속 국회의원이 사법부 소속 판사를 향해 노골적으로 압박을 하는 것이야말로 '월권'이자 삼권분립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다. 집권당의 이 같은 행위를 두고 일각에서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빗대어 쓴소리가 나오는 것도 맹목적인 딴죽걸기가 아닐지 모르겠다.
범법 행위 주체가 재벌 총수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유죄를 판가름하고 그에 준하는 양형 판단을 하는 것은 국회의원이 아닌 판사의 몫이다.
준법위 설치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총수의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양형 사유로 삼기 위해 면피용으로 감시기구를 도입했다는 의구심까지야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수 집권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사법부의 존립 역할과 존립 자체를 깎아내리는 '사법농단'과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는 행위는 아쉬움을 넘어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재계의 전례 없는 감시기구 설치를 두고 경제계에서는 혹여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무소불위' 조직의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준법위가 실제로 제 기능을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재판과 무관한 사람들이 '사법거래' 등을 운운하며 사법부를 압박하는 수단이 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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