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POSCO) 최정우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고 500여 일이 흘렀다. 최정우 회장의 행적은 어떠했을까. /더팩트 DB |
환경문제·노사갈등·철강산업 후퇴 등 '첩첩산중'
[더팩트|윤정원 기자] 최정우 회장이 포스코 경영 일선에 나서고 500여 일이 흘렀다. 앞서 최 회장은 20년 만에 최초로 비(非) 서울대 출신, 비(非)엔지니어 출신으로 포스코 회장에 임명돼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최정우호(號) 출항 후 여정은 어땠으며, 향후 최 회장이 포스코를 위해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 환경문제 입방아…경영진 책임론 야기
최정우 회장 취임 이후 포스코와 가장 크게 회자된 부분은 환경문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환경부로부터 폐기물 처리 승인을 받지 않고 수재 슬래그 설비 10대를 30여 년 동안 가동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재 슬래그는 철광석과 석회석, 석탄을 태워 쇳물을 만들 때 나오는 슬래그에 물을 부어 모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시멘트 부원료로 사용된다.
앞서 광양만녹색연합과 녹색연합은 "포스코는 대기 오염물질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도 관련 법을 위반해왔다"며 "1987년부터 고로의 부산물을 이용해 수재 슬래그를 생산해왔는데 이를 32년 동안 무허가로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1일 전남 광양제철소 1코크스 공장에서는 정전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폭발 방지를 위해 제철소 굴뚝에 설치된 비상 밸브인 블리더가 개방됐고, 이로 인해 다량의 먼지와 유해물질이 유출됐다. 유출된 유해물질은 바람을 타고 인근 여수시 묘도동 마을 주민들에게 피해를 줬다. 당시 화재현장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이 어지러움을 느끼는 등 고통을 호소했다.
환경부는 압력이 높아지는 등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임의로 밸브를 열고 오염물질을 배출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들은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렸다.
잇단 환경문제로 포스코가 계속해 입방아에 오르내리자 경영진의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포항환경운동연합 등 포항지역 8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9월 "제철소 환경오염의 사각지대는 극히 일부만 밝혀졌을 뿐 많은 부분은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빙산이기에 우리는 또다시 포스코와 최정우 회장을 대기환경보전법 위반혐의로 고발한다"며 "최정우 회장은 최고 책임자로서의 역할 수행의지와 능력이 없음이 확인됐기에 퇴진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 "안전이 최우선이라더니"…노사갈등 여전
최정우 회장이 취임 후 포스코 산업현장에서 잇달아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지난해 7월 취임 당시 기업경영의 새로운 핵심가치로 '안전'을 꼽았지만,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안전 다짐대회를 열고 "안전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이며 기업시민으로서 더불어 함께 발전하기 위한 근간"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노총 포스코 노동조합은 "포스코에서 지난해 5명, 올해 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이는 안전에 대한 투자와 예방 대책 요구를 회사에서 묵살한 결과"라며 경영진 책임과 근본적인 안전관리를 촉구한 바 있다.
금속노조 포항지부와 포스코지회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취임한 이후 1년간 포스코 원·하청노동자 4명이 산업재해와 돌연사로 목숨을 잃고 34명이 다쳤다"면서 "노조 활동을 이유로 포스코로부터 해고·정직·감봉 징계를 받은 노동자가 8명이고, 추가로 12명이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고 밝혔다.
이어 "포스코는 끊임없는 중대 산업재해에 사과는커녕 공식입장 표명조차 없이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징계에는 두 손 걷고 나선다"며 "공동체와 함께 발전하겠다는 기업시민 모델과 포스코 현재 모습은 어느 것 하나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포스코는 중대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인력을 충원해 2인 1조 작업을 해야 하고, 노조 참여를 보장하는 산업재해 근절 논의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며 "노동부는 특별감독으로 금속노조 탈퇴 회유 협박과 특정노조 가입 강요 등 부당노동행위를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포스코 노조는 "원가절감을 위한 1인 근무와의 관계를 포함한 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다"며 "관련법 위반이 드러날 경우 책임자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 노조 관계자는 "회사는 제도 개선과 사고 예방을 위해 포스코 노조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근로자위원 참여 보장,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정당한 활동 보장,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위험성 평가 분기별 실시 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지난달 18일부터 시행 중인 '8 to 5' 근무제를 두고도 노조 측에서는 불만을 표하고 있다. 포스코 노조 관계자는 "협력업체들과의 상호 근무 환경을 따지면 8 to 5 근무제는 무의미하다. 어차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이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는 재무통 출신이라 노조 측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상당하다"며 "현재 노조에서는 월~목 8 to 6로 일하고 금요일에는 1시에 퇴근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지난해 7월 취임 당시 기업경영의 새로운 핵심가치로 '안전'을 꼽았으나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잇달아 발생해 비판이 일고 있다. /더팩트 DB |
◆ 철강부문 영업익 절반 '뚝'…이어지는 구조조정
포스코의 3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15조 9882억 원, 영업이익은 1조 398억 원, 순이익은 4968억 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감소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2.1%, 53% 줄었다. 전년 동기 대비 철강 부문 영업이익(7095억 원)은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철강 전방산업의 부진이 극심한 형국이다.
철강업계의 향후 전망 또한 밝지 않다. 근래 전 세계 철강업계는 지난 1월 브라질 발레댐 붕괴로 철광석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7월 철광석 가격은 톤(t)당 121.79달러를 기록하며 5년 만에 최고점을 찍기도 했다.
철광석 가격 상승세에 포스코는 지난 9월 연강판과 산세강판, 용융아연도금강판 등 가격을 톤당 각각 2만~3만 원 올린 데 이어 국내 한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공급하는 일부 자동차 강판 가격을 톤당 2만~3만 원 인상키로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철광석 가격과 국제 시황, 일본 철강-자동차업계 강판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인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 세계 철강 수요의 증가세는 둔화할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 속 원료가격 상승세가 안정될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노릇.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연결기준 올해 매출액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영업이익률 개선 여부는 안개 속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연구원 김주한 명예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철강산업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국내 경제성장률은 2% 초반으로 떨어지고, 주력 수요산업은 성장성이 둔화,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우리나라의 철강 소비는 2020년 들어서 증가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 중반으로 지속된다면 철강소비는 지난 10년간의 하락 추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철강 산업 침체에 직격탄을 맞은 포스코는 현재 비수익 사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는 베트남 봉형강 생산법인 포스코SS비나의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는 베트남 공장 가운데 철근 공장은 현지 업체에 매각하고, H형강 공장은 일본 업체 투자를 받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SS비나는 준공 첫해 당기순손실 1139억 원을 냈고, 지난해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바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지에서도 철근과 형강 시장 경쟁이 치열해 당초 예상보다 가격이 많이 떨어지고 조업상 이슈도 있다"며 "현재 구조로는 사업지속이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구조를 바꾸는 방안을 제3의 파트너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포스코의 전년 동기 대비 철강 부문 영업이익(7095억원)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포스코는 현재 비수익 사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더팩트 DB |
◆ 정권 초마다 회장 교체…공기업 이미지 탈피해야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을 갈음했다. 유상부 5대 회장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유죄를 선고받고 한 달 만에 사퇴했다. 이구택 6대 회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1년 뒤인 2009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명박 대통령 때 선임된 정준양 7대 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뒤 사퇴했다. 전임자인 권오준 회장은 지난 4월 임기를 2년 남기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포스코는 2000년 10월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정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스코는 지난 7월 9일 국민연금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10.79%에서 11%로 늘어났다고 공시했다. 이어 9월 30일에는 국민연금공단읜 주식 지분율이 종전 11.00%에서 11.72%로 확대됐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외압을 견디기 쉽지 않은 구조다.
물론 포스코가 '정권 거수기' 이미지를 벗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포스코는 회장 선임 절차를 독립적으로 진행하고자 지난 2013년부터 CEO 승계 카운슬을 운영하고 있다. 사외이사 중심의 CEO 승계 카운슬이 회장 후보군을 발굴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에 보고하면 최종 후보를 정하는 것이다. 이후 이사회에 후보군이 넘어가면 주주총회를 거쳐 회장을 선임하는 절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임 과정을 더 투명하게 하려면 회장 추천부터 선정 기준과 선임 등 전체 과정을 단계별로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부 전문가와 포스코 내부 직원들이 회장 후보를 평가할 수 있는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 내부적으로 안정적인 경영 승계를 위한 인사 발굴과 경영 수업 등 철저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회장 후보 추천부터 선임까지 모든 과정을 공개하는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외풍 논란을 불식해야만 포스코의 최대 약점인 CEO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우 회장은 동래고, 부산대를 졸업하고 1983년 포항종합제철, 현(現) 포스코에 입사했다. 포스코건설 경영기획본부 기획재무실장 상무, 포스코 정도경영실장 상무, 포스코 최고재무책임자 대표이사 사장, 포스코 최고재무책임자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8년 6월에는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에 내정돼 같은 해 7월 27일 정식 취임했다.
최정우 회장이 소통에 능하고 혁신 역량과 글로벌 경영 역량 등 그룹이 요구하는 CEO 자질에 가장 부합해 선임했다는 것이 내부의 입장. 그러나 포스코가 벌어들이는 이익의 80%가 철강 분야임을 감안할 때 당시 비(非) 엔지니어 출신을 회장으로 선임하는 것은 매우 뜻밖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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