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2017년 3월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후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더팩트 DB |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다운사이클에 시름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소비 심리 위축으로 주력 제품의 스프레드가 둔화되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까닭인데요.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올해 석유화학업계는 그간 불황에 대비하기 위해 착실히 준비했던 신사업들이 하나둘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시기이기도 했는데요. 이에 국내 석유화학업체 CEO들의 리더십이 여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결국 적자생존입니다. 각 자의 방법으로 내년을 준비하고 있는 석유화학업계 CEO의 올 한해 성과를 다뤄봅니다. <편집자 주>
SK 석화사업 지탱 및 신성장동력 기반 마련 두각…소송전은 변수
[더팩트 | 이한림 기자]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국내 석유화학업계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룹이 추구한 미래 화학업의 가치를 실현하고 핵심 계열사의 수장으로 임기 내내 두드러진 성과를 올렸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동시에 김 사장은 올해 석유화학업계 수장 중 임기가 만료되는 유일한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업황 부진에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수장으로써의 책임도 중요시되는 시점이다. SK이노베이션의 핵심 신사업인 전기차 배터리 소송전에 대한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1961년 생인 김준 사장은 서울 경동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SK그룹 석유화학사업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유공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30년 넘게 '정통 SK 석유화학맨'으로 일해왔다.
다만 석유화학사업 분야에만 몰두해 온 '외길' CEO는 아니다. 1987년 유공 석유사업부 입사 후 2006년 SK네트웍스S모빌리언 본부장을 시작으로 SK 물류서비스실 실장, SK포트폴리오매니지먼트 부문장, SK네트웍스 사내이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사업지원팀장 등을 맡으며 비석유화학 부문에서도 리더십을 보였다.
이후 2014년 SK이노베이션의 정유 자회사 SK에너지 에너지전략본부장 등을 거친 뒤 2015년 6월 SK에너지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며 본격적으로 석유화학업 전문경영인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7년 3월부터 SK이노베이션의 대표이사 총괄사장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의 주된 성과는 사실상 SK그룹을 재계 상위 반열에 오르게 한 석유화학사업을 지탱하면서도 소재 사업, 배터리 사업 등 신성장동력을 발굴 등이 꼽힌다. 임기 내 실적을 크게 개선시킨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과 신사업 추진으로 미래 SK이노베션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1조1597억 원을 올렸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1.7% 감소한 것으로 영업이익률은 3.0% 수준에 그친 결과다. 업황 다운사이클을 이겨내지 못하며 지난해에 비해 저조한 성적표다. 임기동안 매년 영업이익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매출은 임기 내 꾸준히 오름세를 유지시켰다. 새로운 투자가 필요한 비정유부문의 사업 비중을 70%까지 늘려놓은 상황에서 견조한 실적 유지는 나름의 성과로 판단하는 이가 적지 않다.
또한 김 사장은 올해 배터리와 소재 사업을 SK이노베이션의 미래 주력 사업으로 판단하고 시장에 신사업을 어필할 수 있는 자리라면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등 체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CEO의 한 해 사업 구상의 중요도를 판단할 기준이 되는 새 해 첫 업무로 충남 서산과 증평의 SK이노베이션 배터리·소재 공장을 방문해 현황을 확인하고 임직원을 격려하는 행보를 보이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 사장은 올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 2019'에서 "이동수단을 뛰어 넘은 자동차의 미래 모습과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등은 핵심 소재인 배터리∙LiBS(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FCW를 미래 주력 사업으로 하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중요한 의미로 다가 왔다"며 "향후 SK이노베이션은 고객 가치 창출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이들 배터리∙소재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오른쪽)이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박천규 환경부 차관과 ‘환경 분야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
이에 업계에서는 김 사장이 내년 3월 이후에도 CEO 명함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장 손에 쥔 성적표는 신통치 않지만 중장기 먹거리를 선점해둔데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까지 겸임하며 그룹이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발현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터리 사업 경쟁사인 LG화학과 소송전, 작금의 실적 개선 등은 김 사장의 연임론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전기차 배터리 사업 영업비밀 침해로 미국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한 사건은 소송전을 넘어 여론전까지 번지며 현재에도 SK이노베이션의 주요 리스크로 지목되고 있다.
양 사간 분쟁 또한 장기화될 조짐이다. 소송전은 올해 4월 이후 반 년 넘게 이어지며 체력전에 돌입한 양상이다. 당초 LG화학이 미국에서 배터리 기술 탈취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 미국 법인의 영업을 막기 위해 시작한 소송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장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지난 9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한 차례 회동을 갖기도 했으나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는 데 그쳤고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당국도 사실상 양 사의 소송전에 개입하지 않고 있어 ITC의 최종 결정만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4월부터 반 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LG화학과 전기차 배터리 소송전은 결과 여부에 따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의 연임에 대한 최대 변수로 떠오른다. /더팩트 DB |
또한 최근 LG화학은 ITC에 SK이노베이션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정황 등을 제시하며 진행중인 소송에 대해 조기패소를 요청하며 패가 기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LG화학의 조기패소 요청을 ITC가 받아들인다면 김 사장의 임기도 보장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이 향후 시장 신뢰도를 잃고 신사업부문에서도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베터리 사업은 정유회사의 변신이라는 신선한 충격을 넘어 후발주자였음에도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과감한 투자로 적자폭을 줄여가고 있었다. 그룹 신성장동력의 핵심 사업이자 김 사장이 임기 동안 주력으로 추진했던 야심작이기도 해 이번 소송전에 대한 여파는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준 사장이 SK그룹 내 석유화학사업의 뿌리를 잘 유지하면서도 신성장동력의 기틀까지 마련한데다가 최태원 회장의 신임을 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연임 가능성은 높게 보인다"며 "다만 소송전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배터리와 소재사업 등 SK이노베이션 신사업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다시 한번 SK이노베이션을 서비스 플랫폼 회사로 도약시킬 인물인 지 대해서는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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