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과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침해와 관련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LG화학이 미국 ITC에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를 근거로 조기 패소판결을 요청했다고 14일 밝혔다. /더팩트 DB |
LG화학, ITC 홈페이지에 67페이지 분량 요청서 및 증거목록 공개
[더팩트 | 이한림 기자]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침해 소송 과정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판결을 요청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 4월 LG화학으로부터 영업비밀침해 피소를 당한 후 이메일을 통해 자료 삭제를 지시하는 등 증거 인멸 행위가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LG화학은 ITC에서 진행 중인 영업비밀침해 소송의 '증거개시' 과정에서 드러난 SK이노베이션의 광범위한 증거인멸, 법정모독 행위 등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판결 등 강도 높은 제재를 요청했다고 14일 밝혔다.
이와 관련 LG화학이 제출한 67페이지 분량의 요청서와 94개의 증거목록이 13일(현지시간) ITC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ITC에 공개된 내용 등에 따르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증거보존 의무를 무시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증거인멸 행위와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은 법정모독 행위를 근거로 SK이노베이션의 패소 판결을 조기에 내려주거나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 생산, 테스트, 수주, 마케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했다는 사실 등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올해 4월 29일 소송제기 직후는 물론 그 이전부터 전사차원에서 조직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LG화학은 ITC 제소에 앞서 2017년 10월 23일과 올해 4월 8일 두 차례 SK이노베이션 측에 내용증명 공문을 보내 '영업비밀, 기술정보 등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또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발견되거나 영업비밀 유출 위험이 있는 경우 법적 조치를 고려할 것'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LG화학이 입수·공개한 SK이노베이션의 올해 4월 30일자 사내 메일. LG화학은 해당 메일이 영업비밀침해 소송과 관련된 증거 인멸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LG화학 제공 |
그러나 LG화학이 내용 증명 공문을 발송한 올해 4월 8일 SK이노베이션이 7개 계열사 프로젝트 리더들에게 자료 삭제와 관련된 메모를 보낸 정황이 발견됐으며 같은달 12일에도 75개 사내 관련조직에 삭제지시서와 함께 LG화학 관련 파일과 메일을 목록화한 엑셀시트 75개를 첨부하며 해당 문서를 삭제하라는 메일을 발송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75개 엑셀시트 중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올해 8월 21일 제출한 문서 중 'SK00066125' 엑셀시트 한 개에 980개의 파일 및 메일이 존재했고, 10월 21일에서야 모든 존재가 밝혀진 나머지 74개 엑셀시트에는 무려 3만3000개에 달하는 파일과 메일 목록이 삭제를 위해 정리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제출한 'SK00066125' 엑셀시트가 삭제돼 휴지통에 있던 파일이며 이 시트 내에 정리된 980개의 파일 및 메일이 소송과 관련이 있는데도 단 한번도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건해 ITC에 포렌식을 요청했다.
이후 LG화학의 요청을 받은 ITC가 지난달 3일 "980개 문서에서 'LG화학 소유의 정보'가 발견될 구체적인 증거가 존재한다"며 "LG화학 및 소송과 관련이 있는 모든 정보를 찾아서 복구하라"고 명령했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이 ITC에 제출한 67페이지 분량의 법적 제재 요청문서 첫 페이지. /LG화학 제공 |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ITC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980개 문서가 정리된 한 개의 시트를 조사했고, 나머지 74개 시트에 대해서는 자체 포렌식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이 증인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LG화학은 포렌식 진행시 LG화학측 전문가도 한 명 참석해 관찰할 수 있도록 하라는 ITC의 명령에도 중요한 조사과정에서 LG화학측 전문가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는 등 포렌식 명령 위반 행위를 지속했다고 강조했다.
LG화학 관계자는 "공정한 소송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계속되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및 법정모독 행위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달했다고 판단해 강력한 법적 제재를 요청하게 됐다"며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과 LG화학 난징, 폴란드 공장의 코터 스펙을 비교하고 해당 기술을 설명한 자료, 57개의 LG화학 레시피 및 명세서 등을 사내 공유 했다는 내용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한편 ITC 제소는 원고가 제기한 조기 패소 판결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예비결정' 단계까지 가지 않고 피고에게 패소 판결이 내려지게 된다. 이후 ITC 위원회에서 '최종결정(Final Determination)'을 내리면 원고 청구에 기초해 관련 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