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키코 사태에 이어 대형 금융소비자 피해가 또 한번 발생해 논란을 빚고 있다. /더팩트 DB |
DLF 사태, KIKO 판박이…금소법 하루 빨리 제정해야
[더팩트|조연행 칼럼니스트] 국내 중소 수출 기업들이 환헤지 상품에 가입해 큰 피해를 입었던 키코(KIKO) 사태가 벌어진 지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 결합상품 (DLS·DLF)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사태가 또 터졌다. 그때와 변한 것이 하나 없이 '사기성 상품', '불완전 판매'의 논란도 반복되고 있다.
2008년 은행들은 환율 파생상품인 KIKO(Knock-in, Knock-Out)를 1000여개 이상의 기업에 판매해 1조6000억 원 이상 피해를 입혔다. 기업들은 은행에 대해 불완전 판매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했으나, 대부분 패소하고 말았다. 키코 상품 자체가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설정됐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불완전판매라는 주장도 가입 당시 서명한 형식적 서류에 무너졌다. 금융당국도 금융소비자보호 여부를 법원의 판단에 맡겨뒀다. 소비자들은 사기 여부나 불완전판매를 직접 입증해야하는 법정에서 은행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 여파로 상당수 기업들이 부도·폐업·합병 등으로 기업 자체가 사라졌거나 지금도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의 절차를 밟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DLS 상품은 독일 국채 10년물과 영국 파운드화 이자율 스왑 금리 등 해외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만기 때 해당 금리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3~5% 수익이 나지만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 전액을 잃을 수 있는 상품이다. 전체 판매액은 약 1조 원으로 예상된다.
손실 규모는 시장의 우려보다 매우 심각하다. 실례로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 DLF 상품은 판매 잔액(1266억 원)의 절반이 손실 구간에 들어섰다. 하나은행이 판매한 영국과 미국의 통화 이자율 스와프(CMS)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F 상품도 판매 잔액 6958억 원의 85.8%가 손실 구간에 있어 만기 시 예상 손실액은 3354억 원(56.2%)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영국과 미국 통화스왑 이율이 올라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됐으나, 앞으로의 손실 위험은 예측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독일과 영국 금리 하락세가 뚜렷한 상황에서 은행이 자세한 설명 없이 상품을 판매했다"며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연 3~5%인 데 반해 원금 손실은 100%까지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한 사기성 상품인데 금융사가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DLS는 원금 100%를 날릴 위험이 있는 '고위험' 상품이지만 이를 판매한 금융회사는 '중위험' 상품이라며 보수적인 투자자들에게까지 가입을 권유했다.
금융감독원은 투자자 손실이 확인된 이후에야 조사를 시작하는 등 매번 뒷북을 치지만 이번에는 키코 때와는 달리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감원은 투자자 입장에서 이해가 쉽지 않고,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 어떻게 설계되고 판매됐는지 전체 과정을 검사하고, 분쟁조정 절차도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법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 금융당국 하에 있는 금감원이 이 상품을 사기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거나 불완전 판매라는 결정을 내려 행정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현재의 책임과 권한을 감안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반복되는 금융소비자 피해는 결국 정부와 국회의 무능 탓이다. 아직 소비자보호를 위한 기본 법조차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팩트 DB |
그래서 DLS·DLF 피해 소비자들은 키코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공동소송으로 법정에서 '사기성'과 '불완전판매'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보 수집에 불리한 피해소비자들은 이를 입증하지 못해 패소하고 만다. 때문에 은행들은 '공동소송'이 제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소송이 제기되면 금감원도 분쟁조정에서 손을 떼게 되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선언해 부정적인 여론도 잠잠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송에 돌입하면 은행들은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은행이 패소한다고 해도 소송에 참여한 인원에게만 배상해주면 그뿐이기 때문에 비용도 얼마 들어가지 않는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청구권조차 없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금융소비자법이 필요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금융소비자보호 이슈가 급상승했다. 선진국들은 금융소비자보호법을 강화하고, 금융소비자보호기구를 신설했다. 우리나라도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발의는 했으나 10년째 그대로다. 국회와 정부가 당리당략, 밥그릇싸움 때문에 여태까지 기본법조자 제정하지 못하는 사이 금융회사는 계속 소비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소비자 보호와 관련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금융소비자 보호 관련 규제는 각 금융업권별 법에 따라 제각각 규정돼 있다. 금소법이 마련되면 업권별이 아닌 상품 종류별로 규제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의 영업행위 준수사항이 보다 구체화되고, 이를 위반하면 감독당국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도 소비자가 아닌 금융회사가 지게 된다.
금소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소비자의 투자 목적, 재산 상황, 투자 경험 등을 잘 파악해 권유해야 한다.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단정적 판단을 제공하거나, 해당 금융상품이 우수하다고 알리는 불완전판매도 금지하고 있다. 사후 피해 구제 역시 수월해진다. 또한, 금융회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을 위반해 소비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위법행위로 인한 수입의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만일, 금소법이 있었다면 DLS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징벌배상제, 입증책임의 전환, 집단(단체)소송제도는 소비자권익을 지키는 기본 3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흉내만 내고 있지 실질적인 소비자권익3법은 없다. 이 3법이 있어야 공급자들은 상품을 소비자중심으로 만든다. 상품설계 단계에서부터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문제발생의 소지를 미리 감안해 소비자가 만족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상품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만일 금소법이 있고, 소비자권익3법이 있었다면 키코 사태도, DLS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책임은 무능한 정부와 국회가 져야 한다.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한다면 하루빨리 소비자권익 3법이 반영된 금소법을 제정해 소비자권익을 증진 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