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靑·재계, 이전과 결 다른 핵심 쟁점 논의 간담회…기업인 발언은 비공개[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주요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2017년 7월 '호프 미팅', 올해 1월 '기업인과의 대화'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이다.
청와대는 10일 오전 본관 충무실에서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자산 규모 10조 원 이상 30개 기업인, 경제단체 대표 4명 등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일본 출장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간담회가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참석 기업인들이 어떤 의견을 내놨을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경제계의 반응을 살피고, 정부의 대응 기조 변화에 관해 논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것이라는 게 재계 안팎의 중론이다. 기업인들의 좌석 배치도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좌우로는 최태원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윤부근 부회장이 각각 앉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번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기업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나라 전체 수출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중추를 맡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번 사태로 제품 생산 및 수출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대해 정부와 재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며 "2차, 3차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반도체 산업에 불어닥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민관이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김상조 정책실장이 의견 교환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며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 품목 수출 규제 조치를 공식화한 것에 대해 처음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특히 재계에서는 이번 간담회가 이전 두 차례 진행된 간담회와 사뭇 다른 분위기로 진행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간담회 장소가 고위 공직자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 국무회의 등이 열리는 충무실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간담회 장소로 '호프 미팅' 당시 청와대 내부 정원인 녹지원, '기업과의 대화' 당시 연회 장소인 영빈관 등을 선택한 것과 비교하면 이날은 중요한 사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간담회 진행 방식 역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강조했던 이전과 달라졌다는 평가다. '기업인과의 대화'에서는 자유 토론을 중시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을 채택했다면 이날은 긴 타원형 테이블 앞에서 더욱더 엄숙한 회의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좌석 배치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의 직접 당사 기업인 SK의 최태원 회장과 삼성전자의 윤부근 부회장 중심으로 간담회가 진행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발언 기회도 김상조 실장의 요청으로 SK와 삼성이 먼저 제공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SK·삼성 외에도 LG와 국내서 부품 생산을 맡는 금호, 코오롱의 의견 개진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확대에 따른 피해 예상 기업, 일본 내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의견과 이에 대한 정부 측 답변이 오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간담회가 끝난 뒤 분위기 역시 달랐다. '기업인과의 대화' 당시 이뤄진 산책에서 문재인 대통령,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회장이 나눈 반도체 경기 관련 대화 등과 같은 간담회 뒷이야기가 이번에는 전해지지 않았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간담회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모양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측에서 정부 관련 행사에 관해 할 이야기가 없다"며 "국제 정치, 외교와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이라 기업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날 나타난 간담회 형식 변화는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엄중하게 대처하겠다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차원일 뿐 이 문제를 타개해나가는 것과는 별개라는 시선이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절실한 건 간담회 이후 나올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이라고 밝혔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모두발언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불편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특정 국가의 경제보복에 취약한 우리 산업 구조에 대한 체질 개선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는 부품·소재, 장비 산업의 육성과 국산화를 위해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고, 세제와 금융 등의 가용자원도 총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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