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에쓰오일 RUC·ODC 설비 준공식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알 트와이즈리 사우디 경제기획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문재인 대통령, 알 팔레 사우디 에너지산업광물자원부 장관. /뉴시스 |
사우디 아람코와 손잡고 석유화학 비중 늘려 경쟁력 확보
[더팩트 | 이한림 기자]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정유업계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에쓰오일(63.4%)과 현대오일뱅크(19.9%) 등에 수조원 대 투자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먼저 에쓰오일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울산 잔사유고도화(RUC) 및 올레핀하류시설(ODC) 준공식을 통해 12조 원대 투자 계획을 밝혔다. 기존 RUC&ODC 공정에 5조 원이 투자됐고 추가로 7조 원을 투자해 SC&D(스팀크래커 및 올레핀하류시설) 설비도 갖추겠다는 방침이다.
RUC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인 잔사유를 재처리해 휘발유와 프로필렌을 뽑아내는 설비이며, ODC는 RUC에서 뽑아낸 프로필렌을 투입해 산화프로필렌·폴리프로필렌 등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공정이다. 에쓰오일은 이번 준공식을 통해 기존 사업포트폴리오에서 석유화학 비중을 5%에서 13%까지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43년 전 작은 정유회사로 출발한 에쓰오일은 석유화학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변모하게 됐다. 특히 12조 원대 투자는 국내 정유업과 석유화학업종을 포함한 역사에서 연결 프로젝트로는 최대 규모의 투자 금액이다. 대주주인 사우디 아람코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종합 석유화학기업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자평이다.
올해 4월 사우디 아람코에 지분을 매각하며 2대주주 자리를 내준 현대오일뱅크도 사우디와 협력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6일 가삼현 현대중공업 사장(왼쪽부터),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 /사우디 외교부 SNS |
현대오일뱅크도 지난달 사우디 아람코의 계열사인 아람코 트레이딩 싱가포르와 2조 원대 규모의 정유 제품을 20년 간 장기 공급하는 수주를 따냈다. 계약 기간을 감안하면 약 40조 원대 규모의 대형 계약으로 추산된다. 이번 계약을 통해 일평균 휘발유 1만 배럴, 경유 1만 배럴, 항공유 4만 배럴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현대오일뱅크는 사우디 아람코와 일평균 15만 배럴의 사우디 원유를 구매하는 계약도 맺었다. 사우디 아람코에서 원유를 구매해 국내 주유소를 통해 정유를 공급하고 20년 간 진행될 아람코 트레이딩 싱가포르에 공급할 수 있는 원유 조달처를 마련하게 됐다.
현대오일뱅크의 최대 지분은 에쓰오일과 달리 국내 기업인 현대중공업지주가 보유하고 있다. 다만 현대중공업지주는 올해 4월 사우디 아람코에 보유 지분 19.9%를 넘겼다. 이에 현대중공업지주가 2017년부터 추진했던 현대오일뱅크의 상장(IPO)은 지분관계법상 무기한 연기됐으나, 아람코와 장기 계약 등을 체결하는 등 향후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손해는 아니라는게 중론이다.
특히 현대오일뱅크가 이번 사우디 아람코와 수주를 통해 석유화학 프로젝트에도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게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난달 사우디 아람코와 관련된 2건의 수주 계약을 진행한 현대오일뱅크는 곧바로 석유화학 프로젝트에 추가 비용을 투자했다.
현대오일뱅크는 3일 롯데케미칼과 합작사인 현대케미칼과 자회사 현대코스모를 통해 아로마틱 석유화학 공장을 증설하는 데 2600억 원을 새롭게 투자했다. 이미 올해 2월 2조7000억 원 규모의 현대케미칼 올레핀 석유화학 설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올레핀 공장이 가동되면 전체 영업이익에서 석유화학 비중을 기존 25%에서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정유사인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의 석유화학 프로젝트가 추진이 국내 정유업종을 포함한 석유화학업종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 사가 산유국인 사우디와의 협력으로 석유화학 비중을 단번에 크게 올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 유가 흐름에 변동이 심한 정유업황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 전기차 인프라, 석유화학 사업 등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어 자체적으로 규모를 확대하던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와 달리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는 신사업적인 부문에서 사업 비중이 비교적 낮지 않냐는 지적이 있었다"며 "다만 양 사는 최대 산유국이자 지분법상 기업의 투자 방향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우디와 이번 협력을 통해 정유업은 물론 석유화학 업종에서도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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