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인보사케이주' 사태와 관련해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전 회장이 자신이 설립한 벤처 회사 인근 카페에서 관계자들을 만난 뒤 나오고 있다. /강남구=이성락 기자 |
"인보사 넷째 자식" 큰 애정 보인 이웅열, 지금은 모르쇠?
[더팩트ㅣ정소양 기자] 이웅열(63)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인보사 사태'에 대해 본지와의 직격인터뷰에서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 업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실제 그런 식으로 말한 게 사실인지 되묻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업계 뿐만 아니라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도 대체로 엇비슷한 반응이었다. 엄청난 투자금이 투입되는 인보사 개발은 그룹 총수의 결정 없이 진행될 수 없는 대형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인보사 사업에 차질이 생기자 이제와서 등을 돌리는 듯한 모습이라는 지적이 다수를 이뤘다.
이웅열 전 회장은 지난 3월 인보사 사태가 터진 이후 책임론이 부각됐지만 어떠한 입장을 내지 않았고, 코오롱그룹 및 코오롱생명과학 측 역시 "이 전 회장은 이미 떠난 사람"이라며 선을 그어 왔다. 이 전 회장은 지난달 3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인보사의 판매·제조를 중단한지 만 한 달, 인보사 허가가 취소된지 4일 만에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더팩트> 취재진은 이날 서울 강남구에 있는 이 전 회장의 벤처 회사 인근에서 그에게 식약처의 허가 취소 조치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 전 회장은 "전혀 관여한 바 없다"는 한 마디를 남긴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웅열 전 회장의 이번 발언은 인보사 개발 과정에 대해 관여한 바가 없다는 해석과 '인보사 사태'의 조작 및 은폐한 사실에 대해 관여한 바가 없다는 의미 등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최근 식약처와 관련한 여러 이슈와 관련해서 그렇게 언급한 것 같다"며 "지난해 퇴임 이후에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식약처 자체 조사 결과, 인보사 일부 성분이 허가 신청 당시 기재한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로 확인됐으며, 코오롱생명과학이 제출한 자료도 허위로 드러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식약처는 골관전염 치료제 인보사의 허가취소 결정을 내렸고, 제출 자료의 허위성을 이유로 형사고발조치도 취했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코오롱그룹 계열사 5곳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웅렬 전 코오롱 회장이 지난해 퇴직금을 포함해 456억 원을 챙겼다. /코오롱그룹 제공 |
◆ 이웅열 전 회장과 인보사의 연관성
코오롱그룹 측과는 달리 이웅열 전 회장의 발언은 인보사 사태와 관련해 책임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 전 회장은 '인보사'와 관련이 없을까.
이웅열 전 회장은 고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와 부친인 고 이동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1996년 그룹 경영을 맡았다. 당시 그는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제약·바이오사업을 선택했다. 1999년에는 미국에 코오롱티슈진을 설립했으며, 2000년에는 코오롱생명과학을 세웠다.
초기 인보사 개발은 순탄치 않았다.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고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도 성공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그룹 내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이웅열 전 회장은 내부의 반대에도 인보사 개발을 결정했다. 그는 19년 동안 1100억 원을 투자하며 인보사 개발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17년 7월 12일 식약처로부터 국내 처음이자 세계 최초로 유전자치료제(국산 신약 29호)로 허가받았을 당시 인보사를 두고 공식석상에서 "넷째 자식"이라고 표현할 만큼 큰 애정을 보였다.
더욱이 이웅열 전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코오롱그룹과 계열사로부터 수백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았다. 이 전 회장은 코오롱그룹과 계열사로부터 퇴직금 410억 원을 포함해 모두 455억 원을 받았다.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던 코오롱생명과학에서는 43억 원을 받았다.
그가 지금은 회사를 떠났지만 여전히 코오롱그룹의 총수이며 최대주주다. 이웅열 전 회장은 코오롱생명과학 지분 14.40%, 코오롱티슈진 지분 17.83%을 보유 중이다. 또한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의 최대주주인 코오롱 지분도 49.7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이 전 회장이 보유한 지분만 봐도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코오롱이 골관절염 주사 치료제 '인보사'의 성분 변경 사실을 고의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코오롱그룹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이웅열 전 회장이 "전혀 관여한 바 없다"라고 말하는 등 무책임하고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이며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은 코오롱생명과학이 있는 서울 마곡동 원앤온리타워. /더팩트 DB |
◆ 투약환자·소액주주, 이웅열 전 회장 포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제기...판결에 영향줄까
이웅열 전 회장은 소송에도 연루됐다. 이와 관련 이 전 회장의 "관여 없다"는 발언이 소송을 염두해둔 발언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환자와 투자자들이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는 등 사안이 민감하다"며 "자신의 말 한 마디가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오킴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인보사를 투약한 환자 중 서류가 완비된 244명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1차 소송가액은 위자료와 주사제 가격 등을 고려해 25억 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2017년 7월 식약처가 허가를 내준 후부터 지난 3월 말까지 국내에서 인보사를 맞은 환자는 총 3707명에 달해 업계는 소송에 참여하는 인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피해를 본 소액주주들은 이미 이웅열 전 회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소송전에 가담했다. 코오롱티슈진 소액주주 142명은 지난 5월 27일 이 전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65억 원 규모로 전해졌다.
코오롱티슈진과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되고 있다. 법무법인 한누리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후 코오롱티슈진의 주주 294명은 코오롱티슈진과 이우석 대표, 이웅열 전 회장 등 4명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청구 총 금액은 93억 원 가량이다.
현재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 소액주주들의 지분가치 손실은 약 4000억 원이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 때 주당 7만5000원을 웃돌았던 코오롱티슈진의 주가는 현재 거래정지 중으로, 주당 8010원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