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사·약사 등 의료 관계자들, 관리 소홀 등 수액 관리 시스템 문제 지적[더팩트ㅣ이민주 기자] 최근 한양대병원이 병원에 입원한 신생아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수액을 주사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병원 업계의 만성 인력 부족이 빚어낸 약제 관리 소홀의 결과라고 보며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병원 업계는 관리 소홀이 병원의 잘못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루 수십 개씩 나가는 수액을 일일이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14일 한양대병원에 입원한 한 신생아에게 간호사가 유통기한이 지난 수액을 주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건은 발생 한 달여만인 지난달 24일 피해 환아의 부모가 언론에 이를 제보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그는 병원이 사건에 대한 후속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환아의 아버지는 지난달 25일 자신의 개인 SNS를 통해 "얼마나 수액 관리가 소홀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냐. 병원은 관리 소홀을 인정하고 의약품 관리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이런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계가 강한 법적 조처를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환아는 한양대병원 응급실을 경유해 입원 치료를 받으며 문제의 수액을 맞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보호자가 수액의 유통기한이 넉 달 이상 지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보호자가 이 사실을 간호사에게 알리자 주치의가 곧 정상 수액으로 교체토록 했으나 이미 수액 200mL가 주입된 뒤였다.
수액은 환자에 전해질, 영양원 혹은 약물 투입을 위해 피하주사하는 인공용액을 말한다. 이 수액을 물류 직원이 일정 주기에 맞춰 병원 약제실에 공급하고, 약제실에서 이를 다시 병동으로 올려보낸다. 다만 수액은 일반 주사제나 약제와 달리 사용 빈도가 잦아 한 번 공급할 때 수십, 수백 개가 병동으로 배달된다. 이렇게 도착한 수액은 병동 한쪽의 보관장소에 쌓이고 그 위에 또 공급분이 쌓인다.
수액의 유통, 처치 등을 담당하는 병원 관계자들은 '선입 선출'이 지켜지지 않아 오래된 수액이 아래에 쌓여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봤다. 허술한 수액 관리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문제가 재발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병원에 수액을 공급하는 물류 직원은 한 번에 수백, 수천 개씩 공급되는 수액의 유통기한을 물류 직원이 일일이 다 관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병원약사도 입장을 같이했다. 간호사도 "과중한 업무와 수액 관리 시스템 상의 문제 때문에 이번 일이 발생했다"며 간호사 개인에게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워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물류담당자는 "한 번에 수백 개가 넘는 수액팩을 납품한다. 물류직원에 수액팩 유통기한을 하나하나 확인·관리하도록 하는 것은 마치 면봉 하나하나에 바코드를 찍어 관리하라는 것과 같다"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근무 약사도 "기초 수액을 박스 단위로 병동에 배송한다. 수액을 출납할 때마다 일일이 바코드를 찍거나 기록하지 않는다"며 "수액 출·입납을 다 입력하고 기록하는 건 현재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속 간호사는 "병동으로 올라오는 수액을 관리하는 전담 인력은 없다. 환자에 수액을 주사하기 전 간호사가 유통기한 등을 확인하게 돼 있다"며 "업무로 바쁜 상황일 때는 유통기한을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수액 유통기한이 대게 제조 일자로부터 4년 정도로 길기에 일일이 확인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에 이런 사고 재발을 방지하려면 병동에 올라온 수액 전량에 대한 유통기한을 조사하고 관리하는 전담 인력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간호사는 "재발 방지를 위해 수액실 직원이나 수액 전담 관리 인력을 두는 등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며 "이 인력이 병동에 구비된 수액 전량에 대한 유통기한을 조사하고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부터 소진하도록 안내한다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병동에 한 박스씩 올라오는 수액 관리의 책임을 간호사에 모두 지운다면 향후에도 이런 사건이 재발할 것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병원 업계는 수액 관리 전담인력 배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금전상의 문제로 실제 인력 충원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봤다.
병원 업계 관계자는 "수액 등을 관리할 전담 인력을 병동에 배치한다면 청결, 유지관리 등 여러 측면에서 환자 안전을 강화하는 효과를 볼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요양급여비용(수가)을 가지고 전담 인력을 따로 배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했다.
한양대병원은 피해 환아의 보호자와 연락해 합의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조처도 마쳤다고 했다. 소아용 수액의 유통기한이 성인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 이번 일이 벌어졌다고 봤다.
한양대병원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사건이 알려진 이후 피해 환아의 보호자와 병원 측이 충분히 대화했으며 합의가 완료됐다"며 "이후 병동에 있는 수액 전량에 대해 유통기한을 체크하도록 했고, 기한이 남은 것에는 동그라미를 쳐서 확인이 쉽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아용 수액의 유통기한은 2년으로 4년인 성인용에 비해 짧은 데다가 사용량은 적어 유통기한이 4개월 지난 수액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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