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현(오른쪽 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삼성 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옮긴 가운데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이 된 박철규 부사장 체제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팩트 DB |
YG 합작 '노나곤' 철수 등 조직 안정화에 무게
[더팩트|이진하 기자] 삼성 오너 일가의 차녀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떠난 이후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사업 효율화를 위해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이서현 전 사장이 지난해 12월 6일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를 통해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옮기면서 삼성물산 패션부문 안팎에서는 충격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이 전 사장의 몫으로 당연하게 여겨졌던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하루아침에 든든한 수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매출이 기대에 못미치고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하락과 예견되는 한계를 이 전 사장의 빈자리와 연결짓기도 했다.
결국 이서현 전 사장이 떠난 빈자리는 박철규 삼성물산 패션부문 부사장이 같은 달 12일 패션부문장으로 채워졌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설립된 이후 첫 부사장 체제로 돌입한 것이다.
이후 빈폴, 갤럭시 등으로 유명한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빠르게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수익성이 악화된 브랜드의 재점검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달 9일 패션 브랜드 '노나곤'의 사업을 접는다고 밝혔다. 노나곤 사업을 전개한 지 약 5년 만이다. 또 6년간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에잇세컨즈'는 재고 정리에 주력하고 있는 분위기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수장을 맡게 된 박철규 부문장은 패션부문 부진 극복을 위해 차별화 서비스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패션 업황 부진, 스트리트 패션 '노나곤' 사업 중단
노나곤은 2014년 9월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YG엔터테인먼트가 합작 투자로 설립한 네추럴나인을 법인으로 두고 있다. 노나곤을 론칭할 당시 패션과 엔터테인먼트의 협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실제 노나곤이 론칭되고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오픈했는데, 사흘 만에 완판 돼 뜨거운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브랜드 론칭 3개월 만에 대만 시장 진출 소식을 알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는 미국과 일본의 백화점과 면세점 입점을 추진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서구식 판매방법 중 하나로 팝업스토어를 사용해 전용매장 없이 한시적으로 판매망을 운영해 지속적인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브랜드 론칭 5년 만에 노나곤은 지난달 2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해산 결의 및 청산을 선임했다고 공시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적자 브랜드를 정리하는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16년에도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와 잡화 브랜드 '라베노바' 등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삼성물산 패션부문 측은 "노나곤은 올봄과 여름 시즌까지만 운영하고 사업을 잠정 중단한다"며 "스트리트 문화에 기반한 패션 브랜드의 잠재력을 감안해 향후 해당 분야의 사업방향을 면밀히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에 사업 잠정 중단이 다른 사업의 재점검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적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이서현 전 사장의 야심작 에잇세컨즈는 론칭 6년 동안 2000억 원대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고전하고 있다. 사진은 이서현 전 사장의 야심작인 '에잇세컨즈' 중국 매장이다. /더팩트 DB |
◆ 이서현 야심작 '에잇세컨즈' 공장형 팩토리로 전락?
이서현 전 사장의 야심작이라 불린 '에잇세컨즈'는 2012년 아시아 시장 3위권에 드는 SPA 브랜드를 목표로 화려하게 탄생했다. 이 전 사장은 에잇세컨즈를 2020년까지 매출 1조5000억 원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당시 패션업계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SPA 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대한 큰 기대감을 모았다. SPA 사업의 특성상 대량 생산 체계와 유통망을 갖춘 의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기업이 아닌 이상 성장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패션 대기업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영역으로 평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잇세컨즈는 론칭 6년이 넘었지만 매출 2000억 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공들였던 중국 시장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중국 상해에 현지 법인인 '에잇세컨즈 상하이'와 '에잇세컨즈 상하이 트레이딩'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그해 9월 약 3636㎡(1100평) 규모의 상해 플래그십 스토어를 야심 차게 선보였지만, 2년 만에 매장을 철수했다. 현재는 온라인 유통만 하고 있으며 중국 법인의 실적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에잇세컨즈 상하이와 에잇세컨즈 상하이 트레이딩은 각각 37억 원, 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2%, 75%씩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에잇세컨즈는 재고 처리로 한창이다. 서울 시내에 SPA 브랜드 재고를 판매하는 업장에는 에잇세컨즈의 물건도 다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삼성물산 패션부문 측은 "에잇세컨즈는 2016년 재고를 도매업자에게 넘겨 재고관리를 하고 있다"며 "다른 SPA 경쟁 브랜드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재고 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박철규 부사장 체제로 돌입하면서 온라인 강화와 차별화 서비스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제공 |
◆ 박철규 부문장 체제 "온라인 강화와 차별화 서비스 집중"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전용 온라인몰인 'SSF몰'에서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와 제휴 브랜드 입점을 늘려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VIP' 고객들을 위한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가 눈길을 끈다. 지난해 12월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최대 3개 상품을 집에서 입어본 후 구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홈 피팅'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어 체험형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타사와 차별화된 서비스로 경쟁력을 키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 12일 서울시 한남동에 남성 패션 브랜드인 수트서플라이(SUITSUPPLY)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체험형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몰 판매채널을 강화해 서비스 차별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수트서플라이는 남성들이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매장이란 콘셉트로 고객들 개개인에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장인급 전문 수선사가 현장에서 직접 고객의 체형과 취향에 맞는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테일러 스테이션'을 별도로 마련했다. 옷을 구매하고 현장에서 바로 수선이 가능하다.
이처럼 이서현 전 사장의 뒤를 잇는 박철규 부문장 체제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다양한 변화와 적자 분야에 대한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실적 개선이 절실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 1조7590억 원, 영업이익 250억 원을 냈다고 밝혔다. 2017년보다 매출은 0.6%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24.2%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국내 유통 트렌드에 맞는 매장을 늘려 나갈 예정"이라며 "또 오프라인 외에도 온라인몰에 경쟁력을 키워갈 전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