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운지구 재개발 사업 시행사인 한호건설이 "을지면옥이 합의를 뒤집고 평당 보상가 2억 원을 요구한다"고 주장, 을지면옥 측이 정면 반박하면서 진실공방에 접어들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을지면옥 입구. /을지로=김서원 인턴기자 |
시민단체 "유명 식당만 살리는 건 해법 아냐···제조업 생태계 보전 촉구"
[더팩트 | 을지로=김서원 인턴기자] 평양냉면 3대 맛집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 중구 을지로의 평양냉면집 을지면옥을 둘러싸고 때아닌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을지면옥이 포함된 을지로 세운지구 재개발 사업과 관련 핵심은 '유명 식당 하나가 이전하냐, 마냐' 문제가 아니라 '청계천 사업자 1만 명의 생존권'이라는 쟁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을지면옥 관련 이슈가 크게 부각된 것은 지난 20일 서울 세운지구 재개발 사업 시행사인 한호건설 측이 "을지면옥이 사업인가 직후 합의를 뒤집고 평당 2억 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면서다.
한호건설 측은 22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당초 세운3구역 정비사업은 이윤상 을지면옥 대표가 적극 추진해 평당 5000만 원 선에서 보상받기로 하고 개발 사업을 동의했다"며 "그러다 사업인가 직전 돌연 기존의 4배인 평당 2억 원을 토지 보상가로 요구하며 반대로 돌아섰다. 재개발 지연으로 나머지 영세토지주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을지면옥 관계자는 "시행사와 그런 얘기한 적 없다"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갈등의 촉발점은 당초 15년간 추진해온 재개발 사업에 일관성 없이 흔들리고 있는 서울시 태도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老鋪) 보존 갈등이 빚어지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6일 신년회견에서 "(을지면옥이 포함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그러나 관련 보도 이후 여론 일각에선 을지면옥을 두고 '과연 노포로써 보존 가치가 있냐'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을지면옥이 입점해 있는 건물이 근대 문화유산도 아니고 보전 대상으로 지정될 만큼 문화적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이유이다.
'을지면옥 건물을 보존하라'라는 반응이 우세했던 여론은 한호건설 측 주장이 제기되자 시공사 측으로 기울고 있는 모양새다. '합법적 절차 다 거치고는 떼돈 벌겠다고 뒷통수 때리는 갑질면옥' '서민 코스프레하다가 걸렸다' '서울 시내 한복판서 30년 외식 사업했으면 중소기업 급 준재벌' 등의 반응을 쏟아내며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사업이 한창인 을지로 공구거리에 영세 상인들이 재개발을 반대하는 빨간 조끼를 입고 일하고 있다. /을지로=김서원 인턴기자 |
한호건설 관계자는 "서울시의 오락가락 정책에 10년 넘게 준비해온 사업이 흐지부지될까 걱정스럽다"며 "을지면옥이 있는 3-2구역은 토지소유주 75% 이상이 재개발에 동의해 철거 가능하다. 이에 세입자에 대한 보상·이주 절차가 진행돼야 하는데, 박 시장이 갑작스럽게 제동을 거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사업 관련 문제는 을지면옥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아니라 70년 전통 공구거리서 내쫓기는 청계천 상인들의 생존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개발 지역엔 비단 을지면옥 뿐만 아니라 공업·공구사를 운영하는 1만 명의 영세 사업주들이 당장 생계를 잃을 위기에 처했는데, 유명 식당 철거 이슈만 부각되고 있어 세운지구 재개발 사안의 본질적 문제가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상인·예술인 등이 모여 을지로 일대 재개발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관계자는 "청계천 공구상가에 대한 보존 대책 없이 을지면옥 건물만 남기겠다는 서울시 입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운3구역 재개발 사안은 을지면옥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라질 위기에 처한 70년 전통 청계천 공구거리와 1만 개 업체 사업주와 종사자 4만 명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며 "유명 식당 몇 곳만 남기는 건 답이 될 수 없다. 서울시는 소상공인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현장에서는 '제조업 생태계를 보전하라'는 청계천 공구거리 상인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져 재개발 사업이 난항을 겪자 시공사가 언론을 통해 물타기를 시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을지면옥 근처에서 공구사를 운영하는 한 사장은 "누가 여기를 평당 2억 원에 팔려고 하겠냐"며 "한호건설 측이 을지면옥과 영세 토지주를 앞세워 사측에 유리한 쪽으로 여론몰이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