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가 거래상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해 한국 딜러사들에 각종 '갑질'을 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공정위가 무혐의 처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관련 논란이 증폭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본사. /더팩트 DB |
"수입차 불공정한 '갑을 구조' 개선이 근본 해결책…공정위 적극 나서야"
[더팩트ㅣ안옥희 기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대표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이하 벤츠코리아)가 한국 딜러사(社)들에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절대적인 '갑(甲)'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또다시 수면 위에 오르고 있다.
앞서 벤츠코리아는 2016년 딜러사 마진 제도를 변경하면서 고정마진 비중을 줄이고 주문 차량의 종류에 따라 변동마진을 늘리는 '2017년도 딜러사 보너스 시스템'을 도입해 딜러사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딜러사들은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줄어든 마진을 만회하기 위해 불필요한 물량이나 비인기 차종을 주문해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소비자원은 이와 관련한 제보를 토대로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거래 행위로 2016년 9월 벤츠코리아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지난해 2월 공정위가 이를 정조준하면서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결과적으로 무혐의 처리되면서 관련 논란이 증폭하는 모습이다.
2일 <더팩트> 취재 결과 공정위가 벤츠코리아의 불공정거래 행위 혐의에 대해 지난해 상반기 최종 무혐의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 결과 신고 내용과 사실관계가 달랐다. 딜러사들이 피해를 본 게 없어서 무혐의 처리됐다"고 밝혔다. 이어 조사 내용과 범위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답변을 피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공정위가 표면적인 것만 조사해서 한 꺼풀 속에 있는 문제를 밝혀내지 못한 것"이라며 "벤츠코리아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행위와 관련 공정위가 이제까지 제대로 칼을 휘두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수입차 법인(임포터)과 국내 딜러사(판매업체) 간 형성돼 있는 '갑을(甲乙) 구조'에서 기인하는 불공정거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관련 실태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적이 없다.
금융소비자원은 공정위의 벤츠코리아 등 수입차 법인 대상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남희 원장은 "벤츠코리아 등 수입차 국내 법인은 유통 구조, 소비자 피해 구제, 파이낸셜 할부금융 관련 부분 등에 이르기까지 관리·감독에 있어서도 국내 기업과 형평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런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 감독 당국이나 공정 당국이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벤츠코리아의 무혐의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수입차 시장 '갑을 구조' 문제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수입차 법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개선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수입법인의 불공정 행위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딜러사들에 차량 판매 물량을 할당, 실적을 강요하고 서비스센터와 전시장 등에 대한 투자와 자사 계열 금융사 이용을 강요하거나 여러 브랜드를 동시에 판매할 수 없는 딜러 사업권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딜러사들 사이에서도 벤츠코리아 등 수입법인과 국내 딜러사 간 불공정한 거래계약에 대한 공정 당국의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을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공정 당국의 소극적인 태도로 수년째 허공의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수입차 시장 유통 구조는 해외 본사로부터 차량을 수입하는 수입법인과 판매와 수리를 담당하는 딜러사로 이원화돼 있다. 벤츠코리아와 같은 국내 법인은 해외 본사로부터 차를 공급받아 딜러들에게 판매권을 나눠주는 역할만 하고 딜러사들은 판매와 사후 서비스(A/S)를 전담,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
업계는 벤츠코리아 등 수입법인과 딜러사 간의 '갑을(甲乙) 구조'에서 기인하는 불공정거래에 대해 공정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지적한다. /더팩트 DB |
이 같은 구조에서 수입법인은 국내 딜러사에 차량 가격 및 인센티브 부여 결정권, 차량 물량 배정뿐 아니라 딜러십 해지 권한까지 가지고 있어 딜러사들에겐 사실상 절대 우위인 '갑(甲)'의 위치에 있다. 갑(甲)인 수입법인 정책에 불합리한 부분이 있어도 을(乙)인 딜러사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A 딜러사 관계자는 "딜러사는 수입법인의 불합리한 요구 사항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물량 배정권한 등 중요한 권한을 다 임포터가 쥐고 있기 때문에 문제 삼았다가 나중에 딜러권 계약 갱신을 못 받거나 판매 볼륨이 큰 신차 배정을 못 받는 등의 불이익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B사 관계자는 "수입법인-딜러사 간 불합리한 계약 관계에 대해 공정위에 제소하려는 움직임은 계속 있었다. 다만 조사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나오면 결국 문제 제기한 딜러사만 피해를 보게 되므로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수입법인의 딜러사에 대한 갑질 문제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아 관계 당국의 면밀한 조사 없이는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딜러사에 대기업 계열과 중소규모 업체가 섞여 있는 특성도 '갑을 구조' 문제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딜러사는 '바게닝 파워(교섭력·bargaining power)'가 다르기 때문에 불공정행위가 있어도 말 못 하는 신규 또는 중소규모 업체와는 사정이 다르다. 또 수익 배분 구조에 따라 딜러사 실적이 달라지기 때문에 피해 규모를 명확하게 도출해내기도 어렵다. 딜러사들이 갑을 구조 개선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전문가들도 수입법인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따른 폐해를 줄이기 위해 공정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상구 변호사(법무법인 제하)는 "공정거래법은 기본적으로 바게닝 파워가 현저하게 차이나는 두 당사자가 있을 때 공정한 운동장(level playing field)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바게닝 파워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이 국내 업계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입법인의 신차 배정 권한 등 딜러사들에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부분은 대리점법이나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우월적인 지위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공정위에서 마음만 먹으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