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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행의 소비자시대] '등 가려운데 다리 긁는' 금융위원회
입력: 2018.12.14 06:00 / 수정: 2018.12.14 06:00
최종구 금융위원장(사진)이 지난 5일 내놓은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 정책은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더팩트 DB
최종구 금융위원장(사진)이 지난 5일 내놓은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 정책은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더팩트 DB

현 손해사정제도는 '사업자 편'…소비자 권리 찾을 대책 필요

[더팩트ㅣ조연행 칼럼니스트] 등허리가 가려워 긁고 싶은데 손이 안 닿으면 난감하다. 벽에라도 기대 문지르면 시원하지만 벽도 없다면 고약스럽다. 더군다나 누가 엉뚱하게 다리를 긁는다면…. 이런 상황을 금융위원회(위원장 최종구)가 연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금융민원은 연간 8만 건에 육박한다. 이중 70%가 보험 민원이고, 그중에서도 50%가 보험금 지급관련민원이다. 전체 금융민원의 35%가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소비자 민원인 것이다. 그만큼 절대 다수 소비자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관행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 그런고로 우리나라의 보험에 대한 신뢰도는 세계 꼴찌다. 원인은 보험사가 망쳐 놓은 손해사정제도에 있다.

어느 금융감독원장이 보험민원이 너무 많다고 무조건 절대 건수를 줄이라는 주문을 한 적이 있다. 보험사들은 금융감독원의 눈치를 보느라 민원발생을 억눌렀다. 그러나 그 원장이 그만두자 민원은 폭발적으로 늘어 났다. 소비자 민원 발생의 원인에 대한 해결책 없이 그냥 '관리'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보여준 사례다.

보험사는 소비자가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보험금을 청구하면, 약관에 정한 보험금 지급기준대로 해당 보험금을 지급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험사의 기본적인 입장은 "어떻게 하면 보험금을 안 줄 수 있을까, 보험금액을 깎을 수 있을까?"인 것 같다. 여기에 동원하는 수단이 손해사정제도와 자문의사제도다.

우리나라 손해사정제도는 1978년 도입되어 40년이 지났다. 손해사정제도란 보험사고 발생시 손해액 및 보험금액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험금 또는 보상금이 보험사업자나 보험계약자 등 어느 쪽에도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평가·결정하는 제도다. 보험금 또는 보상금이 정확하고 신속히 지급되도록 해 보험소비자의 권익보호와 함께 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복구 및 원상회복을 통해 경제적으로 기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손해사정제도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보험사가 보험금지급을 거부하고 삭감하는 수단으로 해당 제도를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보험사는 손해사정 자회사를 설립해 소비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면 '손해사정'업무를 위탁한다. 자회사인 손해사정법인은 보험사의 의도대로 보험금지급을 거부하거나,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고지의무 이행이 미흡한 부분이나 과거 병력을 꼬투리 잡아 '면책'이라고 주장하거나, 소비자가 제출한 장해등급평가가 잘못됐다고 일단 지급을 거부한다. 소비자가 받아들이면 그대로 좋고, 이의나 민원을 제기하면 그때 가서 지급액을 놓고 보험금을 최대한 줄이는 '협상'을 한다. 손해사정사가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하지만, 자사손해사정법인은 불법적인 일이 '주업(主業)'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생명·손해보험협회, 손해사정사회, 보험연구원, 보험업계 등 관계기관과 함께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손해사정 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해왔다. /더팩트 DB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생명·손해보험협회, 손해사정사회, 보험연구원, 보험업계 등 관계기관과 함께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손해사정 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해왔다. /더팩트 DB

보험사들은 자기 손해사정사를 보험금 삭감의 주된 수단으로 악용하고, 부가적으로는 자문의사제도를 활용한다. 의료적 견해가 필요한 경우 환자를 치료한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를 무시하고 환자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자문의사에게 '자문비' 명목으로 돈을 주고 보험사의 '지급거부' 의견을 서면으로 작성해 서명만을 받아온다.

소비자에게는 어느 병원 어느 의사가 자문했다는 것도 밝히지 않고 소견서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유령 '소견서'로 환자를 치료한 의사가 발행한 '진단서'를 무력화시키고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다. 전국의 유명 대학병원 유명의사는 거의 다 보험사 자문의사로 포섭되어 객관적인 의사의 진단을 받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험금지급을 위해 도입한 '손해사정제도와 자문의사제도'가 보험 민원 발생의 주 원인인 셈이다. 좋은 제도를 보험사들이 자본력으로 무력화시켜 자기들 발아래 놓고 제도를 주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사정에 대한 비용은 상법에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돼있다. 그런데 보험업감독규정에 보험사가 '승인'한 건에 대해서만 보험사가 비용을 지불한다고 명시됐다. 결국 소비자가 내는 보험료에 손해사정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자기 마음대로 손해사정 비용을 쓰면서, 소비자가 손해사정인을 선임할 수 있는 권리 조차 없애버렸다. 금융위와 합작해 소비자의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은 것이다. 그러니 소비자는 보험사가 선임한 자회사손해사정사의 횡포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가 가외로 비용을 들여 손해사정사를 선임해도 손해사정보고서를 보험사가 '무시'해 버리면 그 뿐이다. 보험민원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을 공정하고 객관적인 손해사정제도로 만들기 위해 소비자에게 손해사정선임권을 돌려주자며 국회· 금융위원장·금융감독원장이 모두 개선하겠다고 국민들에게 발표까지 했다.

그러나 금융위가 지난 1월부터 쓸데없이 업계 관련자들을 모아 TF를 구성하여 대책을 내놓았는데, 이는 '등 가려운데 다리 긁는 격'으로 소도 웃을 만하다. 금융위는 소비자가 손해사정사 선임 의사를 밝힐 경우 보험사가 동의 여부를 판단할 기준을 마련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보험사가 소비자의 손해사정사 선임을 거부할 수 있다.

사실 대책은 간단하다. 거창하게 대책이랄 것도 없이, 상법에 따라 소비자에게 손해사정사 선임권을 주고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면 된다. 또한, 손해사정사의 보고서는 허위, 거짓 등이 아니면 '무시'할 수 없도록 무조건 인정하도록 하면 된다. 이 간단한 대책을 놔두고 금융위는 1년여를 끌더니 겨우 보험사에게 "손해사정법인 위탁기준을 만들어라, 소비자 손해사정사 선임시 동의기준을 만들어라, 손해사정사 정보를 공개하고 재교육시키겠다"는 엉뚱한 대책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대책을 기다려왔던 소비자들은 '허탈'을 넘어 금융위에 대해 배신감마저 든다.

금융위는 최근 '소비자TF'를 또 만들어 소비자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들에게 대외적으로는 이런 TF도 만들어 일을 제대로 한다고 보여주고, 안으로는 보험업자 편드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이런 간단한 소비자 손해사정권 하나 돌려주지 못한다면, 금융위가 소비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차라리 문을 닫아라! 거창한 소비자TF 만들어 광고하지 말고 국민을 속이지 말아라.

kicf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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