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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의 상암토크] 한·일 과학계 현주소 보여준 노벨상 '23 대 0'
입력: 2018.10.05 05:00 / 수정: 2018.10.05 05:00
스웨덴 노벨상위원회는 1일(현지시간) 올해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미국 면역학자 제임스 P 앨리슨과 혼조 다스쿠(사진) 일본 교토대 의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이번 수상으로 지금까지 23명이 자연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AP.뉴시스

스웨덴 노벨상위원회는 1일(현지시간) 올해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미국 면역학자 제임스 P 앨리슨과 혼조 다스쿠(사진) 일본 교토대 의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이번 수상으로 지금까지 23명이 자연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AP.뉴시스

노벨 과학상 수상자 일본 23명에 한국 1명도 없어...기초과학 과감한 육성책 시급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전 세계는 해마다 10월이 되면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눈을 돌린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가 이달 1일부터 8일까지 3개 과학 부문과 경제, 평화, 문학 등 모두 6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석학을 뽑아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기기 때문이다.

노벨상 시상식은 전 세계 학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축제라는 점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과학 등 주요 학문의 발전 성과와 업적을 평가하는 준엄한 순간이기도 하다.

올해 시상식은 여느 때처럼 우리와 관계없는 ‘그들만의 잔치’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국인 과학자나 학자는 눈을 씻어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웃 국가 일본은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다. 지난 1일 혼조 다스쿠(本庶佑) 일본 교토대 의대 명예교수가 2018년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들썩거릴 만한 경사다. 일본은 지난 1949년 유가와 히데키(湯川秀樹)가 노벨물리학상을 처음 받은 이래 지금까지 자연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23명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욱이 혼조 교수 수상으로 일본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2년 만에 노벨상 수상자를 다시 배출하는 과학 강국임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이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일본과의 노벨 과학상 경쟁에서 ‘23 대 0’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쥐었기 때문이다. 일본 과학기술의 그늘에 가린 우리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노벨상이 국력을 가름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다.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에서 "인류 복지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는 취지를 밝히지 않았는가. 이는 노벨상 수상이 개인의 영예라는 해석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117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상에 담긴 의미와 권위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만은 없다. 역대 수상 순위에서 미국이 압도적 1위에 오른 데 이어 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이 상위권을 휩쓸었듯 노벨상은 한 국가의 국력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하랴.

일본이 세계적인 과학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유신을 통해 과학기술 토대를 구축하고 많은 인재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일본 기초과학의 재목으로 성장했다. 또한 일본은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5년에 한 번 정하는 과학기술기본법을 1995년 제정하고 과학기술 예산을 확대하는 등 기초과학 육성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본이 인재를 자체적으로 키우고 기초과학 이론을 생산하는 토대를 구축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질곡을 거쳐 왔지만 노벨 과학상 최강국 지위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사회에 배어있는 특유의 직업관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는 작은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평생 파고들거나 대(代)를 이어가는 사회적 풍토가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장인(匠人)정신’ 또는 ‘오타쿠(オタク:한 우물: 특정분야에 매우 밝은 인물)‘ 기질을 지닌 이들이 많다. 이들이 한 우물을 파며 연구해 노벨 과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벨상은 ‘느림의 학문’이다. 독일 맥스 프랭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는 남미 갈라파고스 섬에 살고 있는 길이 1.8m, 몸무게 400㎏의 대형 거북이에 대한 보고서를 몇 년 전 발표했다. 이들 거북은 계절이 바뀌면 철새처럼 새 둥지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 그러나 거대한 몸무게 탓인지 이들이 하루 종일 움직여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기껏해야 200m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몇 달간 이동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다.

노벨상은 갈라파고스 거북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고대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물이 넘치는 욕조에서 불규칙한 물체 부피를 측정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유레카(Eureka: 알아냈어)를 외친 것처럼 노벨상이 뜻밖의 행운이나 천재성의 발현으로 이뤄지는 것은 거의 없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지는 마술지팡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노벨상은 답답하지만 연구가 오랜 기간 동안 쌓인 결과물이다. 일본도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세계가 주목할 만한 과학적 진보를 일궈내지 않았는가.

노벨상은 기초과학의 경연장이다. 기초과학은 당장 큰돈을 벌어주지는 않지만 첨단 기술제품을 만드는 응용기술의 터전이다.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제4차 산업혁명’은 기초과학 발전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다. 이는 기초과학 발전 없이 놀랄만한 기술혁신을 일궈낼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한국은 기초과학보다는 돈벌이가 되는 상업용 기술과 과학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응용기술에 주력하고 해외 특허기술에 목을 매는 우리 기업 풍토에서 기초과학의 도약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기초 과학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모습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20조원 넘게 책정했지만 기초연구 분야에 대한 예산은 1조6500억 원으로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기초과학을 홀대하고 장기 투자에 인색한 한국과 달리 첨단기술 최강국 미국은 전체 정부 연구 지원비의 47%를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과학자가 연구 주제를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분위기다.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의 과학 현주소는 척박하다. 기초과학 발전 없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와 관련 부처가 과학 분야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노벨 과학상 시상식에서 박수나 치는 신세를 면하기 힘들 것이다.

노벨상 수상의 길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다. 그러나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연구개발을 단기성과 인기영합 위주로 치닫게 할 수밖에 없다. 과학자들에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으라고 재촉하기 보다는 호기심에 토대를 둔 기초과학 연구가 지속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gentlemin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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