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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의 상암토크] 美 이익 앞에 휘둘리는 ‘64년 동맹의 가치’
입력: 2018.09.20 05:00 / 수정: 2018.09.20 10:04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기자 출신 밥 우드워드가 쓴 공포. 백악관 안의 트럼프가 지난주에 출간돼 미국 정가에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AP.뉴시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기자 출신 밥 우드워드가 쓴 '공포'. 백악관 안의 트럼프'가 지난주에 출간돼 미국 정가에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AP.뉴시스

밥 우드워드 ‘공포’가 밝힌 트럼프의 민낯...균형 잡힌 한미관계 절실

[더팩트ㅣ김민구 기자]지난주 출간된 책 한 권이 미국사회를 뒤흔들었다. 미국 주요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서 부편집인으로 일하는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가 쓴 '공포:백악관 안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가 그 주인공이다.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와 백악관 내부의 '좌충우돌‘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출간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공포'는 공교롭게도 미국 9.11 테러 사건이 난 지 17주기를 맞는 올해 9월 11일 첫 선을 보여 일각에서는 출간 홍보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테러리스트들이 2001년 세계경제 심장부인 뉴욕을 강타해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비극에 버금가는 파장을 '공포'가 불러일으킬 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공포'가 관심을 모으는 또 다른 이유는 저자 우드워드가 리처드 닉슨 전(前) 미국대통령의 1974년 사임을 이끈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기자 출신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영향력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공포'가 내용이 부정확한 소설이라고 애써 폄훼하고 있지만 현(現) 미국 정부의 난맥상을 꼬집은 화제의 저서임에는 틀림없다.

‘공포’에는 한국에 대한 언급도 있어 눈길을 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쾌감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백악관 참모들이 트럼프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휴지조각이 될 뻔했다. 또한 트럼프가 지난해 대북 선제공격을 검토하고 올 해 초 주한미군 가족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키려 했다가 접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후일담'을 듣는 지금은 전쟁의 먹구름이 걷힌 상태다. 그러나 미국 지도자가 동맹국인 한국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한 민족을 자칫 전쟁이라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떠미는 모습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미국 지도자 개인 판단에 8000만 한민족 운명이 좌우되는 상황은 자주국가인 한국에 대한 큰 모욕이다. 동맹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얘기다. ‘백악관 안의 트럼프’가 한국에 가장 큰 공포인 셈이다.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으로 불리는 그의 고립주의와 미국 우선주의 앞에 '동맹의 가치'는 빛바랜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변화협정'이 미국 노동자에게 불공정한 협정이라며 지난해 탈퇴를 선언했다. 이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동맹관계인 유럽연합(EU)이 트럼프의 독단적인 결정에 설득작업을 펼쳤지만 '자국 이기주의(아메리카 퍼스트)‘에 빠진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70년간 끈끈하게 이어진 EU와의 동맹이 미국이익 앞에서는 언제든 내팽개치는 게 트럼피즘의 민낯이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정부가 지불하는 주한미군 주둔 부담금이 적다고 취임 이후 줄곧 불만을 표시해왔다.

과연 그럴까.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한 방위비 분담비용으로 해마다 1조 원에 가까운 혈세를 내고 있다. 간접지원액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은 북한 핵과 군사도발로부터 한국을 방어함은 물론 미국이 아시아 역내 질서를 주도하고 위협과 갈등을 해결하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는 미국의 대외안보 정책에서 한·미동맹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평화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이 미국 국익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그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일방적 도움을 받고 있다는 트럼프 주장과 달리 최근 한·미관계는 철저한 원칙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총 18조원이 투입되는 한국형전투기(KF-X)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2025년까지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해 2026년부터 생산체제에 들어가는 이번 사업에서 미국은 KF-X 관련 핵심기술을 이전해 달라는 우리정부 요청을 단호히 거부했다. 기술이전을 전제로 한국정부가 미국 록히드마틴의 차세대형 F35를 도입하기로 한 것인데 미국이 막판에 기술이전을 기피한 것이다.

미국은 첨단 군사기술을 맹방에 넘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해왔지만 같은 F35를 도입하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우리가 완성된 전투기를 도입하는 방식인 반면 일본은 전투기 면허 생산과 정비창 권한까지 확보했다.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이중기준을 둔 것이다.

6.25 전쟁 때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북한군과 싸우다 장렬히 숨진 미국 군인들의 뜨거운 충정보다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전과(前過)가 있는 일본에 미국이 더욱 가치를 두는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미국과 한국이 64년간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2013년 한국형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미국산(産)이 아닌 러시아제(制) 추진체 도움을 받아 간신히 발사한 모습은 한·미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한국은 이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K팝, K푸드 등 한류(韓流)가 전 세계를 사로잡는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둔감한 채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마치 어린애 다루듯 결례를 범하고 자주성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일이다.

‘공포’에 묘사된 한국과 미국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한·미 양국이 보다 균형을 잡고 성숙한 윈·윈 관계로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gentlemin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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