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재판이 대법원 판결만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는 물론 재계 안팎에서는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묵시적 청탁'의 존립 여부에 관한 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에 쏠리고 있다. /더팩트 DB |
'최종 라운드' 남은 이재용 재판, 대법원 법리 해석에 쏠린 눈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재판이 '최종 라운드'만을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는 물론 재계 안팎에서는 하급심에서 최대 쟁점으로 다뤄진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의 '묵시적 청탁' 존립 여부에 관해 대법원이 어떤 해석을 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월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가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고 못 박은 지 6개월여 만에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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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과 그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이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뇌물 공여 사건'의 핵심 쟁점은 '묵시적 청탁'이 존재했는지 여부다. 지난 24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 심리로 치러진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고, 이 부회장이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으로나마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판단했다.
즉, 이 부회장은 경영 승계를 위해 필요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순환출자고리 해소 등 개별 현안의 원활한 처리를 박 전 대통령에 묵시적으로 청탁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 대가로 승마·동계영재센터 지원 등을 요구했다는 게 판결의 골자다.
이는 지난 2월 치러진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의 해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재판을 심리했던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삼성의 개별현안 자체는 물론 이들이 '경영 승계'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시 재판부는 일부 개별현안에 관해서도 "이 부회장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 역시 사후적으로 그 효과가 확인되는 것일 뿐, 특검의 주장대로 경영 승계를 위한 작업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두 사람의 2심 재판부가 상반된 판결을 내리면서 일단 표면적으로는 '2대 2' 구도가 완성됐다. 이 부회장 재판의 1심과 박 전 대통령의 2심 재판부는 '경영 승계' 현안이 존재했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영재센터) 후원금(16억2800만 원)을 '뇌물'로 본 반면, 이 부회장의 2심과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부는 승계 현안은 없었고, 영재센터 후원금은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 '최종 라운드' 남은 이재용 재판, '묵시적 청탁' 정말 존재했나
그러나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팽팽한 균형에도 변화가 생긴다. 지난해 4월부터 특검과 삼성 양측은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를 두고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을 벌였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다.
1년 가까이 재판이 진행되면서 법조계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했던 논란거리는 바로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거의 부재였다. 이 부회장의 2심 재판 과정에서만 특검이 무려 세 차례에 걸쳐 공소장을 변경했음에도 이렇다 할 증거가 나오지 않자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재판주의' 등이 철저하게 배제된 판결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9월과 11월 미국의 유력 매체 포스브와 경제지 라 트리뷴 등에 실린 각국 경제전문가들의 칼럼에서도 "(삼성 재판에서) 이 부회장이 특정 대가를 위해 청탁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며 우려 섞인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와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 모두 "피고인의 법적 책임을 논하는 법정에서는 반드시 논란이 되는 쟁점의 개념이 명확해야 하고, 합리적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로 증거를 통해 증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2심 재판부는 '경영 승계' 현안이 존재했고, 삼성이 건넨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을 '뇌물'로 본 반면, 이재용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승계 현안은 없었고, 영재센터 후원금은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
◆ 최고 권력자의 '겁박' vs 승계 위한 '로비'…'허점' 남긴 특검 공소장 변수되나
특히, 이 부회장의 2심 막바지 특검이 공소장에 추가한 '0차 독대'는 증거 부재에 대한 논란의 불을 지폈다. 특검은 공소장 변경 전까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모두 세 차례에 걸친 독대에서 '물밑 거래'를 했다는 주장을 펴 왔다. 그러나 세 번의 독대에서 실제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자 1차 독대로 알려진 지난 2014년 9월 15일보다 3일 앞선 같은 달 12일 이 부회장이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0차 독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청탁이 오간 '실체'를 입증하려던 특검의 전략은 실패했다. 이 부회장이 특검이 특정한 날 청와대 안가를 방문했다는 방문 내역은 물론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간접적으로나마 입증할 수 있는 증언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으면서 '허점만 남겼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심지어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선고에서 "'0차 독대'는 사실관계부터 인정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본건 사건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논란의 여지는 또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2심 당시 재판부에 제출한 공소장의 일부 내용 가운데 2016년 2월 15일 3차 독대 당시 '박 대통령이 최순실로부터 건네받은 영재센터 사업 계획안을 직접 (이 부회장에게)전달했다'는 부분에서 '직접'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오후'라는 시간 표현도 없앴다.
증거로 제출된 3차 독대 당일 청와대 출입 기록 내역이 공개되면서 기존 공소장의 내용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특검 스스로 인정하고 오류를 수정한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 재판'의 결론을 정황에 따른 간접 증거들로 판단하기에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재판의 경우 시비를 다투는 쟁점이 상대적으로 너무 많다"며 "두 사람의 상고심이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되거나 '하나의 재판'으로 심리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큰 쟁점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서 '묵시적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겠지만, '정황만을 토대로 한 판결'이냐 '명확한 증거를 기반에 둔 판결'이냐의 문제로 봐도 무방하다"며 "나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사안인 만큼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 없이 정황에 의존하는 판결이 나올 경우 논란은 더욱 확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