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당장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더팩트DB |
유연근로 적용범위도 애매…금융업계 "사실상 무임금 초과근무 우려"
[더팩트ㅣ이지선 기자] # "금융 쪽은 근로시간 단축이 1년 유예 됐으니 그에 맞춰 서서히 도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시행하기에는 시스템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일이 몰릴때도 주 52시간만 일하기는 힘듭니다. 보안을 유지해야해서 회사 밖에서 일을 할 수도 없고요. 내년쯤 되면 한 주로 근무시간을 특정해두는것 말고 유연근로제나 탄력근로제로 현 제도를 보완하지 않을까요?" - 시중은행 종사자 A씨
# "영업을 하려면 적어도 8시에 출근해서 영업 대상 분석하고 부서 회의를 하는 등 준비를 마쳐야합니다. 그래야 정상적인 근무 시간부터 실무가 가능하죠. 보험금 납입 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일찌감치 준비가 필요해요. 준비시간을 근무시간으로 본다면 주 52시간은 턱도 없을 수 있겠네요. 고객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고객을 만나는 경우도 많아서…이런 경우는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네요." - 국내 보험사 기관영업부 종사자 B씨
주 52시간 근무제가 2일 시행됐지만 금융권은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내년 7월까지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금융업계에서는 '칼같이' 주 52시간 근무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특성상 일이 몰리는 시기가 생기거나, 특수 점포 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업 등으로 근무지 밖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이런 경우를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다.
아직 유예기간이 남은 만큼 금융계는 앞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대비해 끊임없이 논의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연착륙을 위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나 야근을 근절하는 PC오프제 등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은행권에서는 IBK기업은행이 일부 본점 부서에서 시범적으로 적용하던 유연근무제를 확대 도입했다. 기존 유연근무제가 오전 7시30분에서 10시 사이에 시간을 정해 출근하는 것에 그쳤다면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출근한 후 9시간 근무를 마치면 퇴근하는 것으로 개정됐다.
이외에도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일찌감치부터 자율출퇴근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육아를 위해 근무시간을 늦추거나 당길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PC오프제도 운영하고 있다.
금융업계 특성상 실질적인 업무시간 산정이 애매한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Pixabay |
증권가에서도 KB증권, 현대차증권, 삼성증권이 근무 단축에 적응하기 위해 PC온·오프제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주 52시간 근무제 관련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해 이달부터 제도를 시범 운영할 방침이다. 이외에도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 하나금융투자, IBK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등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등 선제적으로 근무시간 단축에 대응하고 있다.
보험사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들며 업무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삼성화재와 현재해상, 신한생명은 PC오프제를 도입해 야근을 근절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지키기 힘든 직무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은행의 경우 공항영업점, 주말 영업점들이 존재해 근무시간이 다양하고, 기관 영업이나 여신심사를 하는 경우 신용 평가를 해야 하는 기간에 따라 업무가 편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IT(정보기술) 전담 부서는 전산망을 감시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대처 과정에서 업무가 집중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모바일 영업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모바일 앱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새 앱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도입할 경우 주 52시간으로는 제대로 일을 완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외에도 상대적으로 업무시간이 긴 홍보, 해외사업부 등은 단축 근무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행들은 특수 범위로 이들 부문을 포함해 트레이딩, 해외투자, 특수점포 인력, 운전기사, 청원경찰, 콜센터를 간주하고 있다.
금융업 종사자들은 사실상 일이 남아 '무임금 초과노동'을 하게 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더팩트DB |
증권가에서도 다양한 직군이 있어 일괄적으로 주 52시간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업점은 주식 매매 시간을 지켜 그 전후로 주가 분석 과정을 거쳐야 하고,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영업직의 경우에는 외근이 잦아 근로시간 산정 자체도 어려울 수 있다.
명목상 주 52시간만 근무한다고 하지만 일이 남아 집에서 '무임금 노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료를 분석하고 정보를 정리하고 하는데에 주말이 없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기업 실적이 발표되는 시기에는 더 눈코뜰 새 없다. 증권사에서 일하는 C씨는 "오히려 집으로 일거리를 싸 들고 가 무임금 노동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보험업계에서도 영업·홍보 등 부서는 주 52시간을 지키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근이 잦은 데다가 고객 스케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근무시간 외에 고객을 만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보험 심사를 담당하는 부서나 보험금 지급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야근이 잦다.
현재 주 52시간을 지키기 위해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등 유연하게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가 제시되고 있지만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영업직이나 출장 업무 등의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사업장 밖 간주근로제'를 적용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사내에서 취업규칙을 통해 산정 방법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상 52시간의 근로시간을 넘겨도 이를 알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르는 수밖에 없으니 근로시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으면 이를 지키는 방향으로 근무시간 단축에 대응할 것"이라며 "금융업계 특성상 규정된 근무시간 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는 경우에 대해서 좀 더 면밀히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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