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서울고등법원=서재근 기자] "제가 지금 제대로 대답하는 게 맞나요. 동문서답했나요?"(장시호 증인신문 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장시호 씨가 삼성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영재센터) 후원금 지원 경위와 관련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개입 여부를 두고 '황당한' 진술을 이어가면서 혼란을 키웠다.
11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의 항소심 12차 재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변호인단은 장 씨를 상대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장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조카로 그가 이 부회장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 2시 수의에 흰색 운동화 차림으로 재판정에 들어선 장 씨는 증인 선서를 앞두고 한참을 말없이 서서 눈물을 보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눈물에 재판정 내부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지만,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던 장 씨는 곧 감정을 추스른 듯 떨리는 목소리로 신문에 나섰다.
재판에서 증인신문의 핵심 쟁점은 삼성이 건넨 영재센터 후원금이 부정한 청탁의 결과물이었는지 여부다. 특검 측 신문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던 재판은 질문 순서가 변호인단으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의혹의 불씨가 커진 것은 변호인단이 김 전 차관과 영재센터 설립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를 추궁하면서부터다.
장 씨는 변호인단 측이 그가 지난 2015년 9월 이규혁 전 국가대표 스케이팅선수(전 영재센터 전무)와 주고받은 문자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증인은 이 전 전무에게 '미스랑 일한 지 2년이다' '미스타가 (영재센터 사업안에 관해) 획기적이라고 칭찬해서 내가 다 오빠 아이디어라고 했어'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여기서 '미스'와 '미스타'는 김 전 차관을 말하는 것이냐?"고 질문하자 "김 전 차관이 아니라 이모(최순실)다"고 설명했다.
해당 문자 내용은 이미 지난 1심 때는 물론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 때도 재판 증거로 활용된 자료로 지난 5월 이 부회장의 1심 15회차 재판 때 증인으로 나온 이 전 전무는 "김 전 차관을 만나 영재센터 사업안을 전달했다"며 문자에 등장하는 미스타가 김 전 차관이라는 취지로 일관된 진술을 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씨 재판에서도 장 씨와 이 전 전무가 주고받은 문자가 등장한 바 있다. 장 씨는 지난 2015년 9월 23일 새벽 3시쯤 이 전 전무에게 '삼성에서 스폰 받기로 했다고 소문이 돌아 벌써 미스 귀에 들어가서 떠벌리고 다닌다고 난 (최 씨에게) 귓방망이 맞고 울고불고 매달렸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4월 최 씨의 뇌물수수 재판 당시 최 씨는 해당 문자 내용에 관해 "혼을 내긴 뭘 혼내냐"며 장 씨가 허위진술을 한다고 항변했다.

반년 넘게 진행되온 재판에서 '미스'와 '미스타'가 김 전 차관을 의미한다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이날 장 씨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창피한 얘기지만 사실은 제가 처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이 전 전무를 비롯해 다른 선수들에게 무시를 당해 김 전 차관과 잘 아는 것처럼 과장되게 말한 것이다"며 "이 전 전무에게 말한 '미스타'는 김 전 차관이 아니라 이모다"고 말했다.
이어 장 씨는 "'미스'는 이모도 될 수 있고, 김 전 차관도 될 수 있다"며 "이 전 전무와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그는 내가 말하는 '미스'가 어떨 때 이모를, 어떨 때 김 전 차관인지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다소 황당한 발언으로 변호인단을 당황하게 했다. 이 외에도 그는 신문 중에 "변호사님, 제가 지금 동문서답을 했나요?" "제가 지금 제대로 답변을 한 게 맞나요?" "영재센터가 설립된 게 언제였죠?" 등 그의 오락가락한 진술은 변호인단 측 신문 내내 이어졌다.
혼란만 키운 장 씨의 신문은 결국 재판부가 "(장 씨와 이 전 전무의) 문자 메시지 내용으로 언제까지 신문할 것이냐"며 제지에 나선 후에야 마침표를 찍었다.
김 전 차관의 개입 여부에 관해서는 철저히 '모르쇠' 전략을 고수한 장 씨는 영재센터의 설립 취지에 관해서는 "이모의 지시로 영재센터를 설립·운영한 것은 맞지만, 은퇴선수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동계스포츠 육성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설립 목적이 있는 줄 알았다"며 애초부터 최 씨의 이익 추구가 목적이었다는 특검 측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진술을 했다.
이어 "영재센터는 설립 초기 영재육성에 관심이 많았던 김동성 선수를 비롯해 많은 유명 동계스포츠 스타가 대거 참여했다"며 "이 전 전무를 제외한 영재센터 임원들과 선수들은 이모와 영재센터 관계에 관해 몰랐다"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13일 열리는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의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13차 재판에는 국정농단 사건의 고발자 고영태 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치러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