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그룹 한국콜마홀딩스(회장 윤동한·왼쪽 상단)가 서울 내곡동에 전국 13개 연구소를 모은 통합기술원 건립을 진행하고 있으나 환경유해 등을 우려한 일부 주민 반대에 차질을 빚고 있다. 내곡동 아파트와 인근 학교 등 공사장 주변에는 통합기술원 건립을 반대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즐비하다. /내곡동=안옥희 기자 |
[더팩트ㅣ내곡동=안옥희 기자] 연 매출 1조원 대의 화장품 및 제약 중견그룹인 한국콜마홀딩스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건립 추진 중인 연면적 3만1560㎡(9563평) 규모 통합기술원 건립이 현지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난항을 겪으면서 지역 내 갈등과 분쟁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주민들은 해당 통합기술원이 순수 사무공간이 아니라 화장품 개발 용도의 화학연구소로 활용될 것으로 알려지자 유해물질 배출을 우려해 콜마반대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려 조직적으로 건립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콜마는 이 기술원에서 화장품이나 제약 관련 연구를 할 예정이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내곡동 한국콜마 통합기술원 건립을 둘러싼 기업과 지자체, 주민들 간 갈등과 분쟁은 11일 현재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비대위는 행정절차 과정을 문제 삼으며 서초구청에 건축허가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쟁점은 비대위가 제기한 SH공사의 한국콜마홀딩스 수의계약 특혜 의혹과 유해물질 배출 우려 문제다.
비대위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서초구가 내곡지구 자족시설 부지를 수의계약 형태로 한국콜마홀딩스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검토나 주민 의견 청취가 없었다며 기업 측에 일종의 특혜가 제공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관련 지자체는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일각에선 연구소 건립이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더팩트>는 지난 10일 논란 속 내곡동 한국콜마 통합기술원 공사 현장을 찾았다. 현장 인근 아파트 곳곳에는 '콜마건설 결사 반대', '콜마홀딩스 OUT', '서초구청은 건축허가 취소하고 SH공사는 녹지공원 돌려줘라', '임대업자 콜마홀딩스, 자족부지 수의계약 빽도 좋다', '우리 공원 팔아먹은 SH공사는 원상 복구하라' 등의 구호가 담긴 플래카드가 가득했다. 건축 현장과 주거지는 불과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통합기술원 공사 현장 바로 옆에는 구립 어린이집 건축이 한창이다. 통합기술원은 주거지, 초등학교, 어린이집, 어린이병원과 100m이내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콜마 통합기술원 건축공사 현장 바로 옆에는 구립 어린이집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장은 주거지, 초등학교, 어린이집, 어린이병원과 100m이내에 자리하고 있다. /다음스카이뷰 |
◆ 비대위 "화학연구소 유해물질 배출 우려" vs 콜마 "법정 기준치 이하로 문제없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무엇보다 주거지와 학교 인근에 세워지는 통합기술원의 안전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콜마 기업군 내 개별적으로 연구 활동 중인 전국 13개의 화학연구소가 통합된 만큼 실험 과정에서 유해물질 배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 주민은 취재진에게 "옥시 사태 이후 생활 속 유해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집 앞에 대규모 화학연구소가 들어온다니 너무 불안하다"며 "콜마가 '흄 후드(Fume Hood·화학실험 중 가스배출 기구)'를 13개나 설치한다는 데 유해물질이 나오니까 설치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한국콜마홀딩스 측은 유해물질 배출 관련 안전성을 검증 받아 문제가 없고 흄 후드 개수 논란은 오해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화장품연구소에서는 화장품 유해성분인 파라벤, 트리클로산, CMIT/MIT(가습기살균제 성분)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며 "의약품 연구소에서는 황산, 아세토니트릴 등 일부 유해물질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법적 기준치 이하인 극소량이며 3차에 걸쳐 정화를 한다"고 말했다.
13개의 흄 후드를 설치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화장품연구소에서는 휘발성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흄 후드가 필요 없고 제약연구소와 건강기능식품연구소에만 흄 후드가 필요해 13개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세종시에 있는 생명과학연구소의 배출 공기를 산업보건연구원을 통해 측정했는데 메탄올, 아세톤, 페놀 등 9개 물질은 불검출 됐고 황산, 벤젠 등 6개물질은 기준치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비대위 측은 SH공사의 한국콜마홀딩스 수의계약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은 한국콜마 윤동한 대표 명의로 서초구청에 해당 부지 매입 추천을 의뢰하는 공문. /비대위 제공 |
연구소 건립을 둘러싼 주민과 기업 간 갈등 문제에 업계 관계자들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반대하는 주민들 입장도 이해한다. 그런데 제약연구소뿐 아니라 공장은 독성물질에 대한 엄격한 수준의 관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화학물질 배출 우려는 기우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기업 논리로만 볼 수 없고 주민들의 우려나 불안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물질이 워낙 다양하고 어떤 물질을 사용하는지 알아야 유해물질 배출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유해성 관련 정확한 답변이 어렵다"며 "다만 입지 제한은 건축법이나 해당 지역 관계법령 기준을 충족한다면 허가해주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병연 글로벌코스메틱연구개발사업단 화장품 연구개발(R&D) 지원 사무국장은 R&D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임병연 사무국장은 "국내 화장품산업은 뒤따라오는 중국의 빠른 발전 속도와 사드 여파 등 외부적인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기술 발전을 통해서 시장 다변화,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그 저변에는 R&D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아직 중소기업이 많고 재정이나 기술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기업도 많기 때문에 정부나 외부 기관에서 일정 수준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업계 주장은 정상적 연구소 가동을 전제로 한 이야기일 뿐이라며 불의의 사고로 인한 유해물질 유출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걱정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 비대위 "수의계약 특혜 의혹 밝혀라" vs 콜마·지자체 "법적 문제없다"
또 다른 쟁점은 SH공사의 한국콜마홀딩스 수의계약 특혜 의혹이다. 비대위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서초구가 내곡지구 자족시설 부지를 수의계약 형태로 한국콜마홀딩스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검토나 주민 의견 청취가 없었다며 기업 측에 일종의 특혜가 제공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앞서 한국콜마홀딩스는 지난해 서울 서초구 내곡동 147번지 보금자리지구에 8127㎡(2462평) 규모 부지를 399억 원에 매입했다. 세종·오창 등 전국에 흩어져 있던 13개 개별연구소(화장품연구소·색조화장품연구소·생명과학연구소 등)를 통합한 6층 규모(3만1560㎡)의 최첨단 R&D센터 건립을 위해서다. 공사는 지난 4월부터 시작돼 2019년 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대위는 이 회사가 SH공사에서 지자체장에게 추천 대상 업체 의뢰·부지매각 인터넷이나 신문 등에 공고·관련 지침에 따라 서류심사 및 심의 등을 통해 업체가 선정되는 '일반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비대위는 "내곡동 부지가 당초 6909㎡에서 8127㎡로 면적이 변경되었는데 국토부 고시일(2016년 6월 15일) 6개월 전에 한국콜마홀딩스가 서초구청에 제출한 매입의향서(2015년 12월 3일)에 이미 국토부 고시 확정변경 면적이 적혀 있다"며 내부 부정 거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관련 지자체는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진 서초구청 복지정책과 복지기획팀장은 <더팩트>와 전화통화에서 "비대위가 제기한 의혹 관련 내용에서 위법한 부분을 찾고 있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며, "적법하기 때문에 건축 허가 취소는 불가능할 것 같다. 만약 유해물질 배출 등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건축 허가를 취소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비대위, 한국콜마홀딩스, SH공사 등 이해 관계자들이 조금씩 양보해서 갈등 조정을 하는 방법밖에 다른 해결 방안이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한국콜마홀딩스 측도 법적 문제가 없다고 비대위 측 주장을 반박했다. 회사 관계자는 "비대위 측에 특혜 관련 증거를 요구했는데 증거를 제출하지 못 했다"며, "일부 주민들의 주장일 뿐 SH공사, 서초구청 등도 법적 문제가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서초구청, 서울시청을 찾아 통합기술원 건립 취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반면 한국콜마홀딩스 측은 공사장 벽면에 공장이 아니고 동물실험실도 없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붙이면서 설득작업에 나섰다. /비대위 제공 |
◆ "콜마 나가" vs "억울하다"…이해관계자 갈등 고조 속 통합기술원 운명은?
비대위와 기업·지자체 등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분쟁 사태가 장기화되자 인허가권을 가진 서초구청의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서초구청이 인허가 등 행정절차에 앞서 선제적으로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아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지적이다. 비대위는 현재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탄원서를 보내며 서초구청에 건립 허가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5일 내곡동 서초더샵포레 내 주민공동시설 비대위 사무실에서는 서울시 갈등조정관과 서초구청 관계자, 비대위 및 입주민들 간 회의도 진행됐다. 서초구청이 서울시에 갈등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은 "주민공청회 한번 안 열고 주거지와 학교 앞에 대규모 화학연구소 건립을 결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서초구청을 질타했다.
한 주민은 "동네를 둘러보면 알겠지만, 아파트 근처에 편의점 몇 곳을 제외하곤 편의시설도 몇 개 없고 심지어 고등학교도 없다. 정작 필요한 시설은 제쳐두고 서초구청이 아우디 정비공장, 관광호텔, 한국콜마 화학연구소 같은 곳을 주거지와 학교 앞에 건립 허가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어떤 기업이나 자족시설이 들어오는 걸 무조건 반대하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혐오시설 기피현상)가 아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사현장이 주거지와 학교 인근에 위치한 탓에 주민들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화물 차량을 통제하는 '지킴이' 활동도 하고 있다. 공사장 앞 아파트에 '콜마홀딩스 OUT'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안옥희 기자 |
서울시 갈등조정관은 이날 경청한 주민 의견을 종합해 시민감사옴브즈만과 공동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에는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관계자들이 공사 현장과 인접한 서울언남초등학교와 어린이집 등 안전상황 실사도 진행해 향후 결과에 귀추가 모아진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은 현장 방문 후 등하교 시간 공사차량의 학교 앞 통행 금지, 교육환경평가 실시 방안, 콜마 유해물질 재검토 방안 등 대응책을 모색 중이다. 일각에선 공사가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비대위의 저지로 주민설명회가 무산되자 한국콜마홀딩스 측은 사전 접수한 주민 의견에 대한 답변이 담긴 유인물 3종을 제작, 배포했다. 회사 관계자는 "주민 요구사항을 접수해 반영하고 있었다"며 이를 위해 "거액을 들여 설계변경까지 했다"고 밝혔다. 유인물 속 내곡동 통합기술원 조감도는 설계변경 후의 모습이다. |
한국콜마홀딩스 측은 이 같은 상황 전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은 비대위가 주민들과의 소통을 막아서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비대위는 신뢰 문제를 제기하며 회사 측과의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주민들 요구를 수용해 설계변경까지 감행했다"며,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부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 중간에서 계속 비대위가 막고 있어 유인물 배포, 공장과 연구소 견학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5월에는 김병묵 한국콜마홀딩스 대표이사가 주민설명회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초 김 대표가 미리 준비한 파워포인트 문서 80페이지 분량의 설명자료를 통해 질의응답을 할 예정이었으나 현장에서 일부 주민들이 '콜마 나가라'며 거세게 반발해 설명회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에 지난 7월28일에는 콜마그룹 윤동한 회장이 직접 나서 주민들을 상대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통합기술원 건립을 두고 한국콜마홀딩스와 지자체, 내곡동 주민들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서울시가 갈등조정관을 통해 사태에 개입해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ahnoh0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