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41번째 재판이 18일 열린 가운데 증인으로 출석한 방영민 삼성생명 부사장이 2016년 추진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화 계획 경위에 관해 "새 국제회계기준 도입에 따른 대응책의 일환"이라고 진술했다. /더팩트 DB |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삼성생명에 대한 금융지주회사 전환 추진' 경위와 관련해 "새 국제회계기준(이하 IFRS4 2단계) 도입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이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는 그간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 지배력 강화를 위해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했다는 특검의 주장과 상반된 것으로 앞서 정은보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부위원장을 비롯해 다수 금융위 관계자들 역시 법정에서 청와대 개입설을 일축한 바 있어 '부정한 청탁'을 입증해야 하는 특검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2017년 6월 16일 자 <이재용 재판, 금융위 부위원장 "靑, 삼성 '지주사 전환' 무관심"> 기사 내용 참조)
18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의 41번째 재판에서 방영민 삼성생명 기획실장(부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신문에서 다뤄진 쟁점은 지난 2016년 삼성이 추진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의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 여부다.
특검은 이 같은 계획이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 구도를 완성하기 위한 '밑그림'으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이 기획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과 청와대의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방 부사장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지난 2015년 2월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IFRS4 2단계 도입에 대한 논의가 가시화했다"라며 "새 기준이 적용되면 삼성생명의 자본금이 44조 원가량 줄어들고, 지급 여력률 역시 매우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회사에서는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유일하게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금융지주회사 전환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당시 보험업계에서는 IFRS4 2단계 도입으로 국내 보험산업의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오는 2021년 도입이 예고된 IFRS4 2단계에서는 기존 원가로 평가하던 보험부채(고객에게 보험금을 환급하기 위해 회사가 마련해 놓는 책임준비금)를 시가로 평가해 보험회사의 부채가 큰 폭으로 늘어난다. 특히, 고금리 상품 판매 비중이 높은 삼성생명의 경우 '부채 폭탄'을 방어하는 데 약 23조 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방영민 부사장은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2년 내 매각해야 한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았지만, 회사 측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를 시행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
방 부사장은 "삼성생명이 확보해야 하는 자금 규모는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등 경쟁업체 전체가 증액해야 할 총액보다 많았다"라며 "자본확충방안으로 거론된 대주주 중심의 유상증자, 신종자본증권발행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된 아이디어가 바로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이었다"라고 말했다.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삼성생명은 다수 자회사로부터 배당을 받을 수 있고, 이들의 잉여자금에 대해서도 추가 배당이 가능하다. 또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으로 외부 차입금을 유치해 이를 토대로 삼성생명에서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게 된다.
방 부사장은 트검이 주장하는 '이 부회장→미전실→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업무 프로세스에 관해서도 전면 반박했다.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 아이디어는 제가 먼저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과 이승재 미전실 전무에게 제안한 것"이라며 "삼성생명에 대한 지분율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대주주 지분율이 이미 50%를 넘은 상태로 경영권 확보와는 사실상 무관하다.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물론 누구로부터 '원안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회사의 경우 인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금융위와 사전 협의 없이는 인가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라며 "금융위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2년 내 매각해야 한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았는데, 이는 사실상 현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로 시장에도 엄청난 충격줄 수 있는 사안이었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더는 계획을 추진할 수 없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결국 '철회'라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