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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이슈] 한국타이어 '산재 사망' 쟁점, 문재인 정부는 풀 수 있을까
입력: 2017.06.01 04:00 / 수정: 2017.06.01 04:00

한국타이어 대전, 금산공장에선 최근 20년 동안 100명이 넘는 근로자가 각종 질병으로 사망한 가운데 산업재해 보상을 받은 인원은 극소수로 알려졌다. /대전=이성로 기자
한국타이어 대전, 금산공장에선 최근 20년 동안 100명이 넘는 근로자가 각종 질병으로 사망한 가운데 산업재해 보상을 받은 인원은 극소수로 알려졌다. /대전=이성로 기자

[더팩트ㅣ대전=이성로 기자] 유해물질 산업재해 후유증 등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100명이 넘는 근로자가 사망하고 산재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노동계의 원성을 사고 있는 '한국타이어 산재 사망' 사건이 새로 들어 선 문재인 정부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산재협의회)는 환경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년 동안 풀지 못한 한국타이어 근로자 산재 사망을 둘러싼 의혹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재협의회는 지난달 30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한국타이어 산재 사망 수사촉구 등의 내용을 담은 촉구서를 제출했다.

국내 타이어업계 1위 한국타이어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산재의 공장'이란 오명을 지난 1997년부터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고 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타이어 대전, 금산공장과 중앙연구소에선 무려 93명의 직원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공장 근로자의 사망 사건은 멈추지 않았다. 김종훈 의원실(무소속)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6년까지는 암, 순환기질환 등으로 최소 36명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청업체 직원, 질병으로 퇴사 후 사망한 사람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원까지 고려하면 지난 20년 동안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사망자 수는 최소 139명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와 한국타이어 공장 측은 업무환경과 산재 신청과 관련해 팽팽한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다. /그래픽=정용무 기자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와 한국타이어 공장 측은 업무환경과 산재 신청과 관련해 팽팽한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다. /그래픽=정용무 기자

◆ 한국타이어 공장 근로자, 산재 보상이 힘든 이유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지난 2015년 12월에 설립됐다. 8년 넘게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타이어 생산라인을 담당하던 고 박찬복 씨가 사망한 직후였다. 당시 박 씨는 혈액암 진단을 받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산재보상법은 지난 2007년 12월 업무상 재해의 구체적인 인정기준을 대통령령으로 개정됐다. 당시 한국타이어는 500억 원을 투자해 혈액암(백혈병)의 발병 원인인 유해성 화합물질의 누출을 막았다고 했으나 박 씨가 혈액암으로 사망하자 박응용(54) 위원장의 주도하에 산재협의회가 탄생했다.

수백 명의 한국타이어 공장 노동자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질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산업재해 보상을 받는 인원은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역학조사에도 유기용제(시너·솔벤트 등 어떤 물질을 녹일 수 있는 액체상태의 유기화합물질로 휘발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공기 중에 유해가스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중독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과 인과관계가 불분명해 의학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 산재 승인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공업화 진전과 더불어 발생하는 산업재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련된 사회보험이다.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근로자를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에는 2007년 12월에 전면 개정됐고, 이후 여러 부분 개정을 거쳐 시행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산재는 관련 법규에 따라 전문가로 구성된 질병판정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근로복지공단에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산재협의회에 따르면 1997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타이어 산재 신청 승인 비율은 채 1%도 안 된다. 주요 원인은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피복됐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07년 12월 산재보상보험법이 전면개정됐으나 이후에도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산재 승인율은 사실상 0%대(약 0.9%)에 머물고 있다.

미미한 산재 승인과 관련, 근로복지공단 측은 법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복지공단 한 관계자는 "의료 전문가로 구성된 질병판정위원회에서 협의를 하고, 저희는 관련 법규에 의거해 승인 여부를 판단한다"면서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많은 인원이 사망했고, 산재 승인율이 낮은 것에는 유감이지만, 법 개정에 따라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문제이다. 저희도 근로자들에게 최대한의 대우를 해주고 싶지만, 법을 따라야 하는 입장인 뿐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재협의회는 고무산업 특성상 공장 근로자들이 유해물질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열악한 근무환경과 제대로 된 사전 교육을 받지 못해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고, 사내에서 산재를 신청한 직원들로 하여금 불이익을 당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타이어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특수관계로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의혹까지 제기한 상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딸이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의 아들과 결혼해 서로 사돈지간이다.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은 제대로 된 환기 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어 타이어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유해물질 흄이 공장 내부에 쌓여 있다고 산재협의회는 주장한다.(위). 박응용(아래 가운데)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위원장이 투쟁하고 있는 모습.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제공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은 제대로 된 환기 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어 타이어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유해물질 '흄'이 공장 내부에 쌓여 있다고 산재협의회는 주장한다.(위). 박응용(아래 가운데)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위원장이 투쟁하고 있는 모습.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제공

◆ "근무중 다치면 권고사직을 권유한다"

2009년 타카야수 동맥염 판정을 받은 박응용 산재협의회 위원장은 "한국타이어 공장 내 근무 환경은 말도 할 것 없이 열악하고, 노동탄압도 엄청나다"라면서 "근무를 하다 다치면 권고사직을 권유하고, 설령 산재를 신청해도 불승인 결과가 나오는 결과가 다반수이기 때문에 패배주의가 완연한 상태다. 노동조합 활동이 완전히 봉쇄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 협력업체인 크로바실업 소속으로 대전공장에서 근무한 김운학 씨는 지난 2000년 입사해 2014년 3월 다발성신경병증 확진을 받았고, 지난해 12월까지 대전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대전공장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산재 신청 이후 불이익을 토로했다.

김 씨는 취재진과 전화인터뷰에서 "대전공장의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유해물질에 대한 사전 교육은 전혀 없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고, 환기 시설이 없어 유해물질(흄)을 그대로 흡입하며 일한다.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산소마스크는 노후가 심해 효과가 전혀 없어 일반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를 하고 있다. 대부분 근로자가 일반 마스크를 사용해도 회사에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면서 "질병이 생겨 산재를 신청하면 공장 내에서 따돌림을 받았다. 노동탄압이 엄청났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는 다발성신경병증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불승인 통보를 받았고, 소송을 통해 어렵게 산재 승인을 받아냈다.

김 씨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측은 '산재를 신청하려면 해봐라. 소용없는 짓이다'며 으름장을 내놓는다고 한다. 그는 "자다가 죽는 직원이 다반사지만, 사측은 무시해버린다. 산재를 신청하면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고 일한다"며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보이지 않은 노동탄압으로 인해 피해자가 늘어남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자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서승화 한국타이어 대표이사를 비롯해 협력업체인 크로바실업 등을 산업안전보건법 안전조치 위반 등으로 고발한 상태다.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 관계자는 공장 근로자의 근무 환경에 대해 관련 법규와 내부 규정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고용노동청은 문제가 된 공장은 주기적으로 감시·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로 기자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 관계자는 "공장 근로자의 근무 환경에 대해 관련 법규와 내부 규정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고용노동청은 문제가 된 공장은 주기적으로 감시·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로 기자

◆ 한국타이어 "법규·내부 규정 엄격히 지키고 있다" 주장

한국타이어 측은 이같은 주장과 근로자 사망 상황 등에 대해 떳떳하다는 입장이다. 보안을 이유로 공장 내 취재는 거절했고, 산업재해 피해에 대해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 관계자는 "공장에선 당연히 정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법적으로나 내부 규정엔 문제가 없다. 안전 장비 역시 엄격하게 지켜오고 있다.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는 이유다. 피해자들의 주장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김 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는 법적 기준이 있다면 그보다 더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근본적으로 산재 인정 여부는 한국타이어가 정하는 게 아니고 근로복지공단이 정한다. 혹시라도 근무를 하시다가 요청이 있으면 저희는 성실히 임해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청의 입장은 어떨까.

대전지방 노동청 관계자는 "2007년부터 계속해서 한국타이어 이슈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예전부터 역학조사도 진행했고, 유해물질에 대해선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사업장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다. 노조 측과 다 같이 대전, 금산 공장에 대해 합동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한쪽 부분만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피해자 병명에 관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노동청에서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분이 노사간 전체 그리고 저희도 같이 안전보건에 대해서 서로 함께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저희는 지적사항에 대해 이행 여부도 계속해서 모니터링 하고 지적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집단 사망과 관련해 해결 의지를 보인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더팩트 DB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집단 사망과 관련해 해결 의지를 보인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더팩트 DB

◆ 문재인 정부로 넘어간 한국터이어 산재 이슈

한국타이어를 비롯해 근로복지공단. 지방노동청이 집단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자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새 정권에 기대를 걸고 있다.

산재협의회는 지난 4월 25일 19대 대선 출마 후보자들에게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태의 근원적 해결 방안' 공개질의서를 일괄 발송했고, 당시, 문재인, 심상정, 김선동 후보가 긍정적 답변을 내놓았다.

당시 문 후보는 집단사망사태에 대한 불법행위 엄정수사와 함께 산재 예방과 산재 피해 최소화를 위한 법제도를 개선·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심 후보는 한국타이어의 독점권 회수를 주장하며 공기업 전환여부의 현실적 가능성을 확인하고 절차와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 역시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를 적발했으나, 기업주나 관련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았다"며 해결 의지를 보였다.

문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현재,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조만간 이정미 정의당 국회의원, 이용득 더불어 민주당(전국노동위원장) 의원 관계자와 자리를 갖고 해결방안을 함께 강구하기로 했다.

또한, 산재협의회는 지난달 30일 문재인 정부 조국 민정수석실에 '집단 사망'과 관련된 공문(촉구서)을 보냈다. 촉구 사항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문제가 된 한국타이어 공장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점, 질병으로 인한 해고자에 대한 복직 문제 그리고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밝혔던 '한국타이어 집단 사망' 관련 진상 조사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묻는 관련 내용을 담았다.

박응용 위원장은 "앞서 9년 동안 한국타이어 집단사망 사건과 관련해 역학조사도 이루어졌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저희로선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해 한국타이어의 정경유착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제 9년 만에 비보수 정권이 들어섰다. 앞서 대통령 후보자들이 한국타이어 사망 사건에 대해 해결 의지를 보인 만큼 새 정부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송을 통해 어렵게 산재 보상을 받은 김운학 씨는 이렇게 말한다. "공장 내에서 산재 이야기를 꺼내면 따돌림은 물론 여러 불이익을 당한다. 현재 공장에 남아 있는 직원들 모두 당장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장에 남아 죽음을 담보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많은 근로자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08년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100명이 넘는 직원이 각종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이후에도 사망자는 계속해서 나올 개연성은 남아 있다. 하지만 산재로 인정받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게 한국타이어 산재 이슈의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9년 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해내지 못한 '한국타이어 집단 사망 사건' 해결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지 한국타이어 근로자는 물론 노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sungro5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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