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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근의 Biz이코노미] 이재용 재판, '다람쥐 쳇바퀴'도는 식은 안 된다
입력: 2017.05.19 05:00 / 수정: 2017.05.19 05: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에서 연일 증인신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특검은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 제시보다 앞서 진행된 참고인 및 피의자를 상대로 한 조사의 공정성을 검증하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더팩트 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에서 연일 증인신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특검은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 제시보다 앞서 진행된 참고인 및 피의자를 상대로 한 조사의 공정성을 검증하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더팩트 DB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증인, 25일이 토요일이면, 27일은 월요일 맞죠?"

조금은 황당해 보일 수 있는 이 질문은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4번째 재판에서 특검이 증인으로 출석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던진 질문이다.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부문 사장(전 승마협회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승마협회 부회장) 등 삼성 수뇌부 5명이 일제히 재판정 피고인석에 앉은 지도 한 달이 넘어갔다.

'이재용 재판', '삼성 재판'으로 불리는 이번 재판은 대통령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과 그로 인한 사상 첫 대통령 탄핵, 재계 서열 1위 대기업 총수의 구속 등 법리 다툼이 벌어진 경위와 결과에 따른 국가적 파장을 고려하면 그 무게감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진 재판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재판의 상징성은 그저 '사치스러운 수식어'로만 느껴진다. 다섯 차례에 걸친 증인 신문 과정에서 이렇다 할 증거는 찾아볼 수 없고, 일부 증인들은 되레 특검이 제출한 진술조서에 기재된 내용과 상반된 진술을 이어가며 혼란만 키웠다.

'알맹이' 없는 소모전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특검과 변호인단 양측 간 법리 다툼의 초점은 어느 순간부터 그 초점이 피고인들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가 아닌 사정 당국의 수사가 공정했었는지를 밝히는 '공정성 검증'으로 비껴가는 분위기마저 엿보인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특검의 태도다. "특검, 사실관계만 파악하시죠." "아까 나왔던 질문 같은데요." "불필요한 발언은 삼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심리하는 김진동 판사의 입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코멘트다.

이번 이재용 재판에서 시비 다툼이 벌어지는 최대 쟁점은 '이재용 부회장이 안정적인 경영 승계를 위해 청와대에 청탁했는지, 그 대가로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삼성에서 경제적 혜택을 제공했는지 여부다.

굴지의 대기업 총수가 온전히 사익을 위해 국가 원수와 결탁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후폭풍은 재계는 물론 나라 전체에 몰아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 실현을 위해 논란이 불거진 부분에 대해서는 공정한 법적 근거를 잣대로 엄격히 시비를 가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2일 이후 열흘 넘게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전 부회장, 장충기 전 사장, 박상진 전 사장, 황성수 전 전무(왼쪽부터)의 뇌물죄 혐의를 입증할만한 이렇다 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2일 이후 열흘 넘게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전 부회장, 장충기 전 사장, 박상진 전 사장, 황성수 전 전무(왼쪽부터)의 '뇌물죄' 혐의를 입증할만한 이렇다 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특검이 보여준 수사태도는 혐의 입증이라는 기본 논점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생각이 간혹 들 때가 있다. 재판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은 물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할애하는 것보다 특검 조사 때와 진술 내용이 다른 것을 이유로 '위증' 공방을 벌이는 데 집중하는 모습 때문이다.

실제로 1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 40분까지 무려 14시간 가까이 진행된 14회차 재판에서는 '의미 없는' 소모전이 절정에 달했다. 이날 특검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변호인 측이 '보류' 신청한 증거를 제시해 제재를 받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과정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단정 지었다는 이유로 재판부로부터 "판단에 대한 부분을 (증인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지적을 받았다.

오후 재판 때는 앞서 검찰 특수본 조사 때와 특검 조사 때 진술 내용이 달라진 것을 두고 증인(이영국 제일기획 스포츠전략 기획본부장)이 "당시 제대로 조서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과실도 있었고, 말이 서툰 부분을 검찰이 바로잡아 준 부분도 조서에 진술내용으로 기재된 점도 있는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에 특검은 40분 이상을 검찰 조사 당시 동행한 변호인을 통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이유와 회사 법무팀 및 변호인과 '입 맞추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변호인단과 설전을 벌였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매회 재판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검은 지난 10일과 12일에 진행된 증인신문에서도 조서 내용과 증인들의 진술 내용이 엇갈리자 해당 증인들을 상대로 부실 및 강압수사를 했느냐고 따져 묻는 데 집중하면서 '끼워 맞추기 수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물론 재판에 나온 증인이 의혹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키맨'이거나 주요 쟁점으로 법리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면, 재판 시간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원하는 답변을 듣기 위해 재판부의 지적이 나올 때까지 질문을 반복하거나 증인을 추궁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넘어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재판에서 국민들이 '토요일 이틀 후가 무슨 요일인지'를 궁금해 할 리는 없지 않겠는가. 한달여 동안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소모적 재판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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