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전경련이 해체 대신 쇄신을 택했지만, 여론의 의심 눈초리는 여전한 상태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이성로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지난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정경유착의 한 고리로 지목됐다. 여론은 즉각적인 해체를 요구하고 나섰고, 주요 기업들 역시 줄줄이 탈퇴를 선언했다. 단체 존폐 여부에 촉각이 쏠렸지만 해체는 없었다. 전경련은 해체 대신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정경유착'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전경련의 정부위원회 참여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전경련의 설립허가를 취소하고 모든 '위원회'의 참여를 배제하라'고 요구했다.
전경련은 소수 재벌들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정경유착 부패를 반복해왔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재현됐으며 어떻게든 조직은 유지하기 위해 혁신 없는 혁신안을 내놓았다. 정경유착 근절과 공익을 지키기 위해 전경련은 반드시 해체되어야 한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경실련은 "정부는 정경유착 근절과 공익을 지키기 위해 전경련을 해산시켜야 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주요 경제관련 행정 및 자문위원회에 여전히 전경련을 참여시키고 있고, 전경련의 자체 프로그램에 까지 참여하며 유착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경실련이 요구한 것은 모두 네 가지다. 첫 번째로 '정부는 설립목적 위반과 공익성 훼손한 전경련의 설립허가를 취소하라', 둘째로 '정부는 전경련의 위원회 참여를 배제하라', 셋째 '대선후보자들은 전경련 해체를 국민에게 약속하고, 국회는 '전경련 해산 촉구 결의안'을 조속히 통과시켜라'이고 마지막으로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 불법모금과 보수단체 관제데모 지원을 한 전경련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전경련 쇄신안 내용을 보면 명칭만 변경하고 마땅한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 조직도하고 현재 조직도 보면 통폐합하는 정도다. 주요 회원사들 탈퇴하고 구조조정만 하고 있는 정도로 느껴진다"며 "중요한것은 정경유착 근절하겠다고 했는데 근절책으로 '사회협력을 배제한다'는 것밖에 없다. 사실상 정경유착하고는 무관한 사항이다. 또한, 기존에 있던 커뮤니케이션팀을 그대로 두고 있는 국회, 정부와 연결고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밝혔다.
경실련이 10일 오전 경실련 강당에서 '전경련 정부위원회 참여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정경유착으로 부패한 전경련 설립허가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제공 |
전경련은 지난 1961년 설립된 경제 단체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및 업종별 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국내외의 각종 경제 문제에 대한 조사·연구, 주요 경제현안에 관한 대정부 정책 건의, 국제기구 및 외국경제단체와 교류협력 및 자유시장경제 이념의 전파와 기업의 사회공헌 촉진 등의 사업을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단체 설립 이후 '정경유착 꼬리표'를 쉽게 떼지 못했다. 지난 2002년엔 불법 정치자금 조성을 주도한 것이 알려지면서 거센 해체 압박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개입되며 여론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주요 회원사인 삼성, LG 등이 탈퇴를 선언하며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전경련은 창립 56년 만에 벼랑 끝에 몰렸으나 해체는 없었다. 지난 2월 24일 정기총회에서 허창수 회장의 사임과 함께 단체 해체가 유력했으나 전경련은 새 출발을 선언했다. 당시 유임을 택한 허 회장은 정경유착을 뿌리째 없애버리겠다며 '환골탈태'를 약속했다.
전경련은 정경유착 근절, 투명성 강화, 싱크탱크 강화 등을 내걸며 50년간 사용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간판을 내려놓고 회원 기업들이 중심이 되는 '한국기업연합회'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후속 조치로 기존 팀 수 23개에서 6개로 축소하는 동시에 팀장급 인사를 단행했고, 인력 배치가 끝나면 급여 삭감, 희망퇴직, 복지 축소 등 구체적인 예산 감축 방안이 추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체 명칭 변경은 이사회, 총회, 주무 관청 승인 등과 법적인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경련 측의 입장이다. 적어도 한 달 이상 뒤에는 '한국기업연합회'로 새 출발할 예정이다.
존폐 위기에서 명칭 변경, 강도 높은 조직 개편과 구조조정 등으로 쇄신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경실련은 지난달 30일 '전경련이 지난 2월 17일 총회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한영국상공회의소 등 해외경제단체들이 신규회원으로 가입했다고 발표했으나 거짓보도'라고 주장했다. 새로 가입한 단체로 이름이 언급된 12개사 가운데 10개사는 이미 회원사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그리고 10일엔 정부를 향해 전경련 설립허가 취소와 함께 주요 경제관련 행정, 자문위원회 참여를 배제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번 전경련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력 축소는 삼성, SK, LG 등 주요 그룹과 국책은행들의 연이은 탈퇴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더불어 지난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휘말린 뒤에도 기대했던 변화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는 게 전경련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일부에선 '간판만 바꾼게 아니냐'라는 의심의 눈초리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