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성로 기자] 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정국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재계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놓여 있게 됐다.
이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정부 서울청사에서 1급 간부회의를 긴급 소집해 경제 상황 점검에 들어갔다. 이어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국내외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 상황을 점검해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게이트'로 한껏 움츠려 있던 재계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재계는 정치권 최대 현안이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향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 수사와 압수수색 그리고 국정조사 청문회까지 마친 대기업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 경영 환경에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최악은 피했다. 만약 부결됐다면 정치와 재계는 더욱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안도의 한숨을 쉰 재계 입장에선 정국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경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주요 그룹 관계자들은 '밝은 앞날'을 기대했다. A그룹 관계자는 "향후 국정에 대해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정치권에서 안정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B그룹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 사태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촉발된 '불확실성'이 재계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며 "정치권에서 중심을 잡고, 재계의 원활한 경영활동에 제동을 거는 불안 요소를 제거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눈앞의 큰 고비를 넘긴 만큼 하루빨리 경영 안정화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은 내부적으로는 불안한 정국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경유착'의 진원지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이 축소될 것으로 보이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무역보호주의'를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자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인한 '트럼프노믹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보복 무역'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더불어 대통령 탄핵으로 국가 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한 마당에 정부의 안정적인 환율이나 금리 관리도 힘들어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C 그룹 관계자는 "재계에서 신경 쓰는 부분은 대통령 탄핵 결과 자체보다 이번 결정으로 기업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는 여부다. 안갯속 정국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경제살리기'와 무관한 정치적 이슈가 기업의 경영활동에 제동을 걸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밝혔다.
D 그룹 관계자 역시 '안도'보단 '걱정'이 앞섰다. 그는 "현 정부와 여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경제활성화법안들이 이번 탄핵안 가결로 모두 백지화할 경우 기업들이 연초부터 마련해 온 사업구상의 '큰 틀'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내부의 불안한 정국은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라며 "사실상 내년 사업구상이 '올스톱' 상태에 빠진 상황인 만큼 정치권에서도 재계 전반의 위기에 공감하고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국정조사 청문회에 이어 대통령의 탄핵안까지 당장 눈앞의 고비를 넘긴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내적으론 정경유착 의혹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룹 연말 인사나 내년 사업 구상 역시 미진하긴 마찬가지다. 외적으로 '트럼프노믹스', '중국 보복 무역' 역시 풀지 못한 실타래다. 이상과 현실 앞에 놓여 있는 재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