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안팎에서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한 위기가 고조되면서 주요 대기업들이 '대대적인 혁신'을 기반으로 조기 인사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글로벌 경기 침체와 주요 제품의 결함 이슈 등으로 재계 안팎에 불안이 고조되면서 대기업마다 고위급 경영진에 대한 인사 시기를 앞당기는 등 인사 풍토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사의 큰 틀이 '안정 속 변화'가 아닌 '대대적인 혁신, 기업문화 쇄신'으로 변화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큰 폭의 '물갈이 인사'가 조기에 시행할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들이 인사의 척도가 되는 임원 평가 시기를 예년보다 앞당겨 진행하고 있다. 10대 그룹 가운데 조기 인사에 먼저 시동을 건 곳은 현대중공업그룹과 한화그룹이다.
지난 17일 현대중공업은 대표이사에서 사임한 최길선 회장을 대신해 강환구 현대미포조선 사장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하고, 권오갑 사장을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 발령하는 등 사장단 및 사업대표를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초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던 것과 비교하면 20일 정도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사장단 인사 키워드는 '세대교체'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3조5000억 원 규모의 경영개선계획을 내놓은 등 각고의 노력에 나서고 있지만, 최근 노조 파업 등의 악재로 내부 변화가 시급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기존 '최길선-권오갑' 투톱 체제에서 '강환구-권오갑' 체제로 변화를 꾀한 것이란 분석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대내외적으로 일감 부족 등 어려운 경영환경이 지속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사장단 및 사업대표 체제를 갖추는 인사를 조기에 단행했다"며 "경영진 세대교체를 바탕으로 현재의 위기상황을 더욱 적극적으로 돌파해 나가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한화그룹 역시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한 기민한 대응'을 조기 인사 배경으로 꼽으며 그룹 경영기획실장인 금춘수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한화(무역 부문), 한화테크윈(시큐리티부문), 한화63시티 등 다수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사업계획을 조기에 수립했다"며 "이번 인사의 특징은 글로벌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발탁, 적소에 배치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과 한진중공업그룹은 각각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조기 인사를 단행해 '세대교체'에 속도를 높였다. |
삼성과 현대자동차, SK그룹 등 재계 '빅3'의 인사 향방에도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특히, 전례 없던 배터리 결함으로 최신형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의 판매중단을 선언한 삼성의 경우 오는 2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앞두고 대규모 인적 쇄신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신상필벌 원칙을 고수해 온 만큼 '갤럭시노트7'의 판매·생산 중지 이슈와 직접 관련이 있는 사업부문 고위급 인사를 대상으로 '문책성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수개월째 지속하고 있는 실적 부진과 미국발 '세타엔진 결함' 이슈 등 올 한해 악재가 잇달았던 현대자동차그룹은 정기 인사를 2개월여 앞두고 장원신 해외영업본부장을 북경현대기차 총경리 자리에 앉히는 등 국내외 핵심 사업부문에 대한 깜짝 인사에 나섰다. 특히, 지난 14일에는 기존 국내영업본부장을 맡고 있던 곽진 부사장은 자문으로 위촉하고, 후임으로 이광국 현대워싱턴사무소장 전무를 국내영업본부장(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며 사실상 '문책 인사'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SK그룹도 유력한 조기 인사 후보군으로 꼽힌다. SK그룹 측은 "연말 정기 인사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시기와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알 수 없는 문제"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올 들어 최태원 회장이 공식적으로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있고, 최 회장 경영 복귀 이후 눈에 띌 만큼의 대규모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인사의 폭이 넓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본부의 부진과 LG화학과 LG생명과학 합병 등 사업재편 요소가 산재해 있는 LG그룹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검찰 수사 이후 사회공헌 계획을 중심으로 한 그룹 쇄신안을 발표한 롯데그룹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점치는 전망도 나온다.
이 외에도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 등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는 한진그룹과 최근 그룹 컨트롤타워인 허창수 회장이 "시너지를 극대화해 외부역량과 결합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열린 조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며 신성장동력 발굴과 조직문화 쇄신에 대판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 GS그룹 역시 정기 인사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영환경에 대한 위기가 고조되면서 '매년 OO월 마다 정기 인사를 단행한다'라는 공식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라며 "한화와 현대중공업 등 이미 조기 인사를 단행한 대기업에서도 저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세대교체'를 인사 배경으로 꼽고 있는 만큼 아직 인사 계획을 밝히지 않은 대기업에서도 폭넓은 인적 쇄신에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