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제품 홍보·마케팅 활동에도 제약이 생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헌법소원 결정 결과가 이르면 이번 주 내 결정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가 헌재의 판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오는 28일 '김영란법'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진행한다. 재계의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단연, 언론인·사립교원의 법 적용 대상 포함 여부다.
애초 '김영란법'은 부패한 공직자에 대한 징벌을 강화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데서부터 공론화됐다. 그러나 법안 통과 과정에서 해당 법안 적용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은 물론 그 배우자까지 포함되면서 재계 안팎에서 찬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재계에서는 지금까지 시행해온 일련의 홍보·마케팅 업무가 사실상 전면 개정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한 대기업 임원은 "('김영란법 시행과 관련해) 재계에서 진짜 우려하는 것은 3만 원으로 한정된 식대, 5만 원으로 한정된 선물비 등 단순한 수치개념이 아니다"라며 "국내는 물론 국외로 발판을 넓히고 있는 국내 대기업에 있어 단순한 제품은 물론 문화산업과 같은 큰 틀의 사업계획 홍보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하반기 계획한 각종 홍보·마케팅 프로젝트에 대해 전면 취소나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며 "글로벌 업체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안 적용 기준이 기업의 실제 경영활동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와 지적이 나오는 것 역시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다수의 대기업에서는 '김영란법' 시행일인 오는 9월 28일 이후 계획된 행사 일정을 일부 조정하거나 아예 신규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업계별로 체감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법 시행을 앞두고 혼란이 가중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는 완성차 업계와 가전업계, 유통업계 등이다.

특히, 완성차 업계의 고심은 깊다. 현대기아자동차,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자동차 등 국내 5개사는 물론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한 수입차 업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홍보·마케팅 활동은 '신차 출시·시승행사', '국제 모터쇼 참가'다. 대리점 내 전시차 등을 활용해 고객들에게 신차를 홍보하는 데 한계점을 극복하고 다수 잠정 고객에 가장 효과적으로 제품의 특징을 알릴 수 있는 만큼 '시승행사'는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으로 꼽힌다.
국내 완성차 업계 '맏형' 격인 현대자동차는 지난 15일 자사 최초 양산형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 시승행사를 진행했고, 쌍용자동차는 전날인 14일 '코란도 스포츠 2.2' 시승행사를 진행하는 등 자사 신모델 홍보를 위한 업체의 행보는 올해 역시 분주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오는 9월 이후 기존 방식의 신차 출시 및 시승행사 일정을 계획하고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나면 기존 행사 진행방식이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통편은 물론 행사 기간 제공되는 숙박, 음식물 등에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그 불똥이 고스란히 업체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이 같은 고민은 전자, 유통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사업 프로젝트 홍보 일정 대부분이 9월 이전으로 계획하고 있다. 오는 9월 터브먼 그룹과 손잡고 경기도 하남에 국내 최대 규모의 국내 최초 서구형 쇼핑 테마파크 '스타필드 하남'을 오픈하는 신세계 그룹은 지난달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터브먼이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운영 중인 대형 아웃렛 '돌핀몰', '워터사이드샵', '인터내셔널플라자' 등 현지 주요 테마파크를 둘러보고, 그룹이 완성하려는 대규모 상업시설의 콘셉트와 수요창출 계획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는 로버트 S. 터브먼 회장이 기자단과 국내 테마파크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 구상안에 대해 직접 견해를 밝혀 업계 전반의 관심이 집중됐다.
CJ그룹 역시 자사에서 추진하는 글로벌 문화사업 성과 및 비전을 홍보하고, 미국 현지에서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CGV'의 글로벌 사업' 계획을 알리기 위해 오는 29일부터 LA 미디어 투어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고심이 깊다. 백색가전에 사활을 건 LG는 지난 3월 서초R&D캠퍼스에서 출입기자단을 초청, 자시 최초 '초프리미엄' 가전 통합 브랜드인 'LG 시그니처' 론칭행사를 진행하는 등 최근 마케팅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LG 외에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가전업체에서는 올해 초 진행된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인 'CES 2016'에 이어 오는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IFA)에서 자사 시그니처 모델을 대거 공개할 계획을 잡고 있다.

한 가전 업계 관계자는 "매년 국제무대에서 전 세계 가전 업체가 자사 신제품 공개에 열을 올리며 자웅을 겨루는 대형 박람회가 열린다"며 "업체에서 일부 출입기자단을 현지로 초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홍보마케팅'으로 국외 주요 행사에 각국 언론을 초청해 자사 브랜드를 홍보하는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대중적인 홍보수단이지만, 이 같은 홍보방식에도 '울며 겨자 먹기 식'의 변화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며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최근 가장 관심이 쏠리는 화두는 '김영란법'이지만, 아직 다수의 대기업에서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불똥이 튀지 않도록 우선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개정안 등이 나오지 않은 상황인 만큼 잔뜩 움츠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