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물건을 할인해 주겠다는데 마다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욱이 값비싼 수입 자동차라면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같은 차량이라도 어디에서 사느냐, 누구에게 사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며, 소비자의 정보 수집 능력과 딜러와 협상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수입 자동차를 싸게 사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만족감이 더 높아지겠지만, 정가를 주고 산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주게 된다. 수입차 업체들은 대외적으로 정가 판매와 공개한 프로모션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영업 현장에는 치열한 할인 경쟁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수입차 프리미엄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매장에서 고객을 잡기 위한 딜러들의 달콤한 할인 유혹을 들어봤다. 16일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방문한 강남의 한 BMW 전시장에서는 프로모션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BMW 전시장 관계자는 "사전에 미리 홍보팀에 연락을 주시고 방문해야 한다"며 "우린 정가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프로모션에 대해 답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길 건너편 아우디 전시장에서는 파격적인 혜택으로 고객을 유치하고 있었다. 기자는 고객을 가장해 아우디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A6 모델을 문의했다. A6 35 TDI 모델의 공식 판매가격은 6250만 원이다. 딜러가 각종 혜택을 더해 제시한 가격은 5125만 원이었다. 찻값의 18%인 1125만 원이 할인됐다.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할인이 전부가 아니었다. '신차 서비스 3종 세트'인 블랙박스와 선팅, 유리막 코팅까지 해줄 수 있다는 대답까지 들었다.
이어 아우디 카탈로그가 담긴 봉투를 들고 메르세데스-벤츠 전시장을 방문하자 경쟁 업체에 질 수 없다는 듯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벤츠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에누리'가 적은 것으로 유명했지만, 이젠 옛말이 된 듯하다. A6 35 TDI와 경쟁 모델로 꼽히는 E-220 블루텍 AV의 공식 판매가격은 6280만 원이다. 상담을 통해 11%가량 할인된 견적서를 받았다. 여기에 딜러 마진을 뺀 400만 원을 추가로 할인받았다. 총 1068만4000원을 깎아주었으며, 할인율은 A6와 비슷한 수준이다. 딜러는 재고가 없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며 계약을 재촉했다.
프리미엄 수입차 메이커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폭스바겐도 '폭탄 세일'에 합류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주력 모델인 골프 2.0 TDI의 할인율도 18%에 달했다. 찻값 3450만 원의 골프 2.0 TDI를 2800만 원가량에 구매할 수 있다. 한 영업사원은 "우리보다 더 많이 할인해 주는 곳도 있을 것"이라며 "판매 목표량을 맞추기 위해 딜러사끼리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수입차의 높은 할인율 속에는 금융사의 할인이 포함되어 있다. 금융사의 추가 할인을 받는 대신 할부로 차량을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업체들 간 공격적인 프로모션은 판매량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벤츠 E-클래스는 모두 1637대다. 이 차량은 지난달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어어 BMW 5시리즈가 1068대를 팔아 2위에 올랐으며, 아우디 A6는 416대를 판매해 7위에 이름을 올렸다. BMW의 한 딜러가 정가 판매를 하고 있다고 했지만 판매량과 순위로 볼 때 경쟁사와 비슷한 프로모션을 제공하고 있음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수입차 업체의 파격 할인에 대해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손해 보고 장사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찻값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입차는 공임과 부품값이 비싸다. 중간이윤 없이 차를 팔아도 판매량이 많으면 결국 서비스센터를 통해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 15%를 넘은 수입차 시장이 더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며 불투명한 가격 결정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