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엔화 가치가 6년여 만에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수출 동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차의 '몸값'이 가파른 내림세를 보이면서 국외시장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일본의 도요타와 정면승부를 펼치고 있는 완성차 업계 '맏형' 현대차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6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달러화 대비 엔화는 6월 말 101.33엔에서 지난달 말 109.65엔으로 8.2% 올랐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1011.8원에서 1055.2원으로 4.3% 오르는 데 그쳤다. 다시 말해 엔화 가치가 원화 가치 대비 두배가량 더 떨어진 셈이다.
엔화 가치의 가파른 내림세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일본차 '몸값 하락'으로 이어졌다. 일본 완성차 업계의 대표주자인 도요타는 최근 미국 시장에서 자사 중형세단 '캠리'의 주력 모델 가격을 2만2970달러로 책정했다. 이는 현대차가 올해 북미 시장에 내놓은 '쏘나타' 주력 모델 가격 2만3175달러보다 200달러 이상 더 싼 가격이다.
닛산 역시 비슷한 시기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18개 모델 가운데 7개 모델의 가격을 적게는 2.7%에서 최대 10.7%까지 내리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엔저 효과'를 등에 업은 일본 완성차 브랜드의 공격적인 가격 인하 마케팅이 가장 부담스러운 쪽은 현대차다. 현대차를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등 공신을 한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약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저 현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지난해 이후 현대차의 경영 성적표는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올 상반기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4조256억 원, 매출은 44조4016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두 지표 모두 5.8%, 0.3%씩 줄었다. 엔저 등 환율의 영향으로 매출 감소율 대비 영업이익 감소 폭이 더 늘면서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이다.
미국 시장점유율 역시 하향세로 돌아섰다. 일본 업체의 가격 마케팅이 본격화한 지난달 현대차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한 달 전보다 0.4%p 떨어진 7.9%를 기록했다. 신형 '쏘나타'와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 등 잇따라 신차를 출시했지만, '신차효과'역시 엔저 효과에 빛을 바랐다는 평가다.
반면, 히노자동차를 포함한 도요타 그룹은 올 상반기 전 세계에서 모두 509만7000대의 차량을 판매하며 독일의 폭스바겐을 제치고 판매량 1위에 올랐다. 경영 실적 역시 상승곡선을 그렸다. 2분기 도요타 그룹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6조3907엔, 6927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4.4%씩 증가했다.
엔저의 장기화는 내수시장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 역시 현대차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달 한전부지 매입에 10조5500억 원을 베팅한 현대차에게 내수시장의 지원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지만, 올 상반기 현대차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42.7%로 지난해 동기 대비 5.4%p 떨어졌다. 독일 '빅 4'를 중심으로 한 수입차 브랜드에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던 내수시장을 조금씩 내주고 있는 것.
더욱이 한국도요타, 닛산 코리아 등 일본 완성차 브랜드가 엔화 가치 하락에 힘입어 국내에 출시하는 신차의 가격을 잇달아 낮게 책정하고 있어 현대차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일본의 대표 완성차 브랜드들이 주력 모델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펴고 있다"며 "사상 처음으로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70%대 밑으로 떨어지는 등 수입차의 내수시장 선점 속도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만큼 엔저 현상의 장기화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닛산 코리아의 경우 지난달 사전예약 판매를 시작한 5인승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시카이'의 가격을 3200~39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수입차 단골 베스트셀링카이자 동급 SUV인 폭스바겐의 '티구안'보다 500~1000만 원 정도 낮은 가격이다.
한국도요타 역시 자사 베스트셀링카 '캠리'의 신모델을 현대차의 'LF소나타'와 비슷한 2000만 원대에 국내 시장에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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