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이 논의되고 있는 서울 은평구 증산로 일대에는 집집이 빨간 깃발이 걸려있다./증산=송형근 인턴기자 |
[더팩트 l 증산=송형근 인턴기자] "오죽하면 빨간 깃발을 달겠습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재개발의 실상을 알려야죠."
서울 은평구 증산로의 골목을 뒤덮은 빨간 깃발을 본 주민의 얘기다. 주택가에 생뚱맞게 걸린 빨간 깃발. 몇몇 깃발은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재개발 결사반대', '재개발은 원주민을 내쫓는다'고 적혀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걸린 것일까?
18일 서울 은평구 증산로를 찾았다. 평일 오후의 한적함이 묻어나는 동네지만 20~30년 된 건물들이 가득해 낙후된 동네의 모습이 보였다. 몇몇 5층 이상 상가건물을 제외하곤 반경 500m 내에 높이 20m를 넘는 건물을 보기 힘들 정도다.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서울시는 지난 2012년부터 이 일대를 증산2구역으로 묶어 재개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재개발 찬반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은평구 증산로에서 30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재개발돼도 새로 지어질 아파트를 분양받을 돈이 없다. 영락없이 내쫓길 판이다"고 말하는 반면, 바로 옆에 다른 주민은 "재개발해서 오히려 돈을 벌 수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서로 옥신각신했다.
재개발에 대해 주민 의견이 다른 이유는 분담금 때문이다. 주민 보상금과 재개발 후 지어질 아파트 분양가 차이가 커서 세대당 분담금이 수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증산2구역에는 830세대가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약 60~70%는 23~30㎡ 규모의 소형 빌라에 거주한다. 통상 23~30㎡에 살고 있는 빌라 주민들의 시세 평가된 부동산 재산은 약 1억~1억2000만원. 재개발 후 가장 작은 규모인 80㎡의 분양가는 최소 3억200만원으로 이를 분양받으려고 하면 소형 빌라에 사는 주민은 약 2억원에 가까운 돈을 대출 받아야 한다.
통상 23~30㎡에 살고 있는 빌라 주민들의 시세 평가된 재산은 약 1억~1억2000만원. 재개발 후 가장 작은 규모인 80㎡ 분양가는 최소 3억200만원으로 이를 분양받으려고 하면 소형 빌라에 사는 주민은 약 2억원에 가까운 돈을 대출 받아야 한다. |
재개발 땐 분양가의 60%까지 금융권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를 받는다 해도 매달 내는 이자와 원금을 부담해야 한다. 재산이 1억원 남짓인 주민들에게 최소 2억원 이상의 분담금은 폭탄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 이 지역 30% 이상의 세대는 증산2지역 내재산지키기 모임을 만들고 재개발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가 집집이 걸린 빨간 깃발이다. 증산2지역 내재산지키기 관계자는 "기존 분담금만 해도 수억원에 달한다. 대다수 주민은 이를 낼 능력이 없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재개발에는 추가 분담금이 필요하다.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살던 동네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증산2구역 내재산지키기모임 회원들은 재개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집집이 깃발을 걸고 있다. |
일반적으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추가 분담금이 조합원에게 부담 지어진다. 증산2구역 내재산지키기 관계자가 추정한 최소 추가 분담금은 금융권 PF를 포함해 약 900억원 이상이다. 이를 조합원 830세대로 나눠본다면 가구당 1억원이 넘는 분담금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 같은 의견에 재개발 조합은 어이없다고 말하고 있다. 융자를 받아 분담금을 내고 분양 후에 아파트를 매각하면 시세차익으로 수억원이 남는다는 얘기다. 인근 상암동의 아파트 시세는 3.3㎡당 2000만원이 넘는다. 주변 시세에 따라 재개발 후 지어질 아파트 가운데 최소 평형인 80㎡가 5억원 정도가 된다면 조합원 분양가 3억200만원을 빼면 약 2억원에 가까운 차익이 남는 셈이다.
또한, 추가 분담금의 경우 아직 산정된 바가 없는데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고 황당해했다. 증산2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관계자는 "융자를 받아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시세 차익으로 돈이 더 남는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내쫓긴다고 주장한다. 추가 분담금은 아직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았는데 저런 금액이 나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격한 논쟁에 구청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재개발 사안은 극히 민감하다. 민원이 들어와서 빨간 깃발에 대해서만 깃발을 내려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나머지 부분은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