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커플레이어로 전향 소식을 알린 임요환이 카드를 손에 들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요환은 "방송, 홍보이사 및 모델, 포커플레이어 등 다양한 활동으로 프로게이머시절보다 더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논현동=남윤호 기자 |
[ 논현동=김연정 기자] ‘황제 테란’, ‘e스포츠의 아이콘’ 등 수 많은 수식어를 달며 2000년대 스타크래프트를 주름잡던 ‘SlayerS_’BoxeR’ 임요환(33). 그가 지난 6일 ‘프로 포커플레이어’로 전향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2000년 가을 데뷔 이래 그의 공식, 비공식 경기 전적은 1033전 603승 430패, 58.4% 승률(2010년 2월 집계)을 기록했다. 임요환은 높은 승률로 많은 사람의 눈을 사로잡으며 세계의 모든 프로게이머 중 가장 크게 성공한 케이스로 꼽혔다.
또 같은 시기 에 활동한 라이벌 ‘폭풍 저그’ 홍진호(31)와의 경기는 임요환의 ‘임’과 홍진호의 ‘진’을 따 ‘임진록’(본 의미는 임진왜란 기반의 고전소설이지만 여기에선 ‘치열한 전투’의 의미로 쓰임)이라 불리며 최고의 흥행 카드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임진록’ 이야기는 지금도 업계에서 회자될 정도다.
e스포츠의 초기 시절,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자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다는 임요환. 선수에서 코치, 감독 그리고 최근의 ‘프로 포커플레이어’까지 게임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발걸음을 준비하는 그를 지난 26일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미투온 사옥에서 <더팩트>이 만났다.
임요환은 ‘전설’답지 않은 수수한 차림으로 취재진과 마주했지만, 그가 쏟아낸 말 속에는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던 숨은 노력과 e스포츠를 사랑하는 열정,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가 잔뜩 묻어났다.
임요한은 피부 관리법에 대해 "술, 담배를 금하고 햇빛을 피하면 된다"고 자신만의 '비법'을 공개했다. |
-요즘 선수 시절 때보다 더 바쁜 것 같다.
전체를 10으로 보자면 방송은 1, 나머지 9에서도 3:6 비율로 각각 미투온 홍보이사 및 홍보모델, 프로 포커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6을 선수로 지내야 하는데 요즘 그 부분을 틈틈이 해야 할 정도로 바쁜 상태다. tvN '더 지니어스-룰브레이커' 방송은 사실 홍진호를 제 자리(2인자)로 돌려놓으려고 시작한 건데…(웃음) 예상외로 많은 분이 관심을 보여 현재로서는 1이 될 수 없는 상황까지 됐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프로게이머를 할 때보다 더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 운동도 챙겨서 하려고 하는데 그 부분도 못 챙기고 있다.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 한 달 정도 휴식기간을 가지면서 체력이 많이 돌아온 것 같다. 언제 또 붕괴할 진 모르지만 말이다. (웃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쉴 틈이 없는데도 피부가 굉장히 좋다. 특별 관리라도?
관리라기보다 술은 자주 안 마시는 편이고 담배는 안 피운다. 또 햇볕을 자주 안 쬐는 것도 비법(?) 중 하나다. 그동안 햇빛을 많이 안 보는 직업을 가진 것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된다.
임요환은 선수 시절 당시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알리기 위해 방송, 광고 등 여러 활동을 했다"며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 "스타프래프트의 전설로 남다."
-'황제 테란', 'e스포츠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 당시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임요환은 인기란 말 대신 '높은 곳'이라 표현했다)는 프로 시스템을 빨리 구축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남자 특성상 게임을 좋아한다. 난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연구해서 전문직종으로 바꿔보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들 놀 때, 잘 때 좀 더 연습했다. 물론 게임을 좋아했지만 '연습'의 개념으로 했던 것 같다. 선수 시절 때도 '어떤 전략, 어떤 빌드 가지고 나갈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그런 것들이 성적과 이어졌고 그래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대회 결승전에 동시에 올라가게 됐다. 결승 선수가 되니 마냥 예전처럼 연습만 하는 환경이 안 되더라. 인터뷰, 각종 광고 그리고 영화까지 찍었다. e스포츠 프로게이머를 알리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다. "스타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영향력도 커졌다.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다. 선수 활동에 손해를 보고 성적에도 영향이 갔지만, e스포츠를 알렸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인정해 줬던 것 같다. 그래서 다소 나쁜 말을 들어도 혹은 '사명감'에 따른 부담을 가져도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었다. 그런 분들이 나에겐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연습과 관계없는 활동을 하다 보니 성적에 대한 발버둥은 더 커졌다. 한동안은 유지했지만, 그 이후에는 수직 하락은 아니지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 가는 시점에서 연습환경이 나빠지고 하니 더 떨어졌다.
-영화 얘기를 잠깐 했는데…. '도둑맞곤 못 살아'라는 영화에 출연했었다.
영화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연기를 정말 못했다. (웃음) 게임을 못하는 사람으로 나오긴 했지만, 연기도 너무 못했다. 사실 난 게이머 전에는 매우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게임 관련 방송을 하면서 조금은 적극적인 사람이 됐다. 하지만 그 방송 역시 내가 잘 하는 게임 분야 방송이었지 영화는 내가 아예 모르는 분야였다.
또 게임처럼 사이버 세상에서 만나는 것이 아닌 주위에 감독 이하 스태프 그리고 여러 대의 카메라까지 모두 나만 보고 있더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요즘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경험도 있고 나름 철판(?)도 깔려서 가능하다.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선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 여러 활동을 했고 '내 생애 이런 날이 오다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팬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청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수 시절 나는 앞만 보고 위만 보는 선수였다. 인기에 대한 실감은 해도 "내가 얼마나 인기가 많나,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나?" 등 주위를 둘러보진 않았다.
성적이 떨어지는 순간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마저 줄어들 거라는 생각을 해서 앞만 보고 달렸다. 사실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은 못 했다. 이 관심이 끊기지 않도록 게임이든 다른 활동이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 이었다. 인기에 연연하며 "내가 톱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 아마 오래 유지 못 했을 것이다. 공든 탑을 쓰기에 바빴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서도 그런 것에 시간을 허비해 망가지는 선수를 많이 봤다. 그 당시에 제대로 잡아준 김형중 감독과 함께한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임요환 선수 때문에 공군 ACE가 생겼다는 말도 있었다.
그 당시 원희룡 의원이 많은 힘을 써 준 것 같아 본의 아니게 혜택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1기로 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군대 가서 얼굴이 많이 망가졌다. (웃음) 선임 중 한 명이 정말 많이 괴롭혔다. 하지만 그 선임이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또 성적을 내기 위해 힘썼고 그 덕에 연습 환경이 많이 바뀐 것은 인정한다.
"사실 감독 임요환은 '어리바리'했던 것 같다"며 "누군가를 이끄는 성향은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놓은 임요환. |
-'판타지 플레이'로도 유명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기막히다'라는 생각이 드는 플레이가 있다면?
마린으로 럴커를 잡는 것은 사실 연습을 하다 보면 나오는 것이다. 상성 상 테란이 저그를 상대하기 힘든 시절이 있었는데 내가 그 전술을 보였을 당시는 이미 테란이 조금 좋아졌던 시기였다. 그 전 시기는 정말 테란이 암울했다. 사실 테란으로 나만큼 노력하는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그, 프로토스 종족 선수들이 소위 '스페셜 테란'을 만나 대처하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저를 비롯한 조정현, 김정민 등 테란이 빛을 보는 시기였던 것 같다.
사실 사회팀에 있을 때는 성적에 대한 압박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미 다져놓은 전략, 전술에서 하나씩 튀어나온 아이디어를 활용했던 것이고 실제로 많은 생각을 했던 때는 공군 ACE 시절이다.
당시 블루스톰 맵에서 썼던 건데 3번 시도해서 3번 모두 이겼다. 그때 정말 통쾌했다. 함께 했던 게이머가 구성훈, 민찬기 그리고 한 명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잘 만들었고 실제 경기 때도 100% 승률은 아니지만 원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준 전략이었다.
전략을 만들고 다듬고 시행착오를 겪어 높은 승률이 나오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팬들을 위해 또 무언가를 만들었구나! 이걸 성공하면 팬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선수 초반에는 인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선수를 하다 보니 "스포츠는 팬이고 팬이 없으면 스포츠가 아닐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 2가 나온 후 빠른 전향을 택했다.
군 제대 후 1년 정도 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잡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의지가 되는 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소속 회사에서도 계획이 있더라. 선수로서 열정이 있었지만, 코치를 맡게 됐다. 처음 코치를 맡은 것 이상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재계약 시기와 맞물려 스타2 발매 소식을 들었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면 빨리 전향해서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더 잘했다면 지금도 선수 생활을 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지도자로도 전향했다. 선수와 감독, 어떤 차이가 있었나?
우선 지도자보단 선수 쪽으로 마음이 간다. 특히 지도자의 길은 내가 하고 싶던 시기가 아닐 때 들어섰다. 또 지도자 안에서도 감독과 코치의 무게는 다르더라. 코치 생활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가야 할 자리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SKT 코치로 복귀할 때도 1~2년 정도 배우고 모든 것을 대처할 수 있을 때 감독을 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감독이 됐다.
사실 감독 임요환은 '어리바리'했던 것 같다.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선수들에게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난 모질지 못해 선수에게 싫은 소리를 못했다. 감독으로서 안 좋은 기질인 것 같다. 내가 못하면 코치를 통해서라도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위에서 내려온 압박을 내가 다 감수하고 말았다. 위에서 압박을 받더라도 선수들에겐 '파이팅'을 외쳤다. 감독을 맡으면서 생각한 것이 있었다. '선수들에게 최상의 조건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적이 계속 떨어지다 보니 감당이 안 되더라. 뒤늦게 야단치니 선수들로부터 "감독이 변했다"는 말을 듣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선수 은퇴 모습을 지켜봤고 자연스럽게 건강도 안 좋아지고 그래서 내 체질이 아니다 싶다는 생각으로 굳혀졌다. 그동안 내 자리를 메워줄 사람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최연성이 제대했다. 최연성이라면 팀을 맡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잘 갈고 닦는 것은 자신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또 팀 단위를 이끄는 성향은 아닌 것 같다. 스타2 중계를 해 본 적도 있는데 안 좋은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운동을 하면서 휴식기를 가졌고 이후 미투온과 연이 닿아 일을 시작하게 됐다.
-리그오브레전드 업계에서 일하는 올드게이머도 많다. 제의는 없었나?
제의가 오진 않았지만 왔다고 해도 과연 했을지 의문이다. 스타만 십수 년을 해왔다.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를 해 본 적이 없다. 사실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 스타 외 게임은 해보질 않았다. 다른 게임을 하다 보면 신경이 분산되는 경향이 있어 안 했다. 또 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괜찮다면 스타2 선수를 다시 생각했을 거다. 프로게이머로서 십수 년 같은 자세를 취해 오면서 얻어 온 많은 직업병이 확실히 치유되지 않는 한 다른 게임으로의 결심은 힘들다. 그래서 몸은 많이 움직이지 않고 생각 위주로 하는 포커플레이어가 나와 딱 맞았던 것 같다.
[SS e-레전드]임요환 "홀덤=도박?, 맷 데이먼 매년 참가하는 '마인드 스포츠'" ②에서 계속됩니다.
sightstone@tf.co.kr
비즈포커스 bizfocu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