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거리 싸움판이 된 정치, 크고 작은 싸움질 그만하고 국민을 생각하라"
사안마다 설전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여당과 야당. 민생은 말뿐이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 더팩트 DB |
[더팩트 | 이광희 기자] 조선시대에는 두 개의 거대한 파당이 있었다. 하나는 훈구파이며 다른 하나는 사림파였다.
이들 두 세력은 끊임없는 권력 야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정치적 혼란을 낳았다.
훈구파는 조선 전기에 형성됐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켰다. 그리고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되었다.
그는 사병을 해산시키고 왕권 강화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그를 따르며 공신에 오른 이들이 많았다. 당연히 파란이 일다보니 공신도 많고 본의 아니게 역적으로 몰려 죽은 이들도 많았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도운 공신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훈구파였다.
이들은 새롭게 형성된 권력 질서를 지키려고 애썼다. 학문보다는 실무 능력을 중시함으로써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권력으로 확보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각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최대한 향유했다.
이러다보니 변화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새로운 것을 배제하고 전통과 기존 질서를 고수하며 권력 향유에 젖어 있었다.
여기에 맞서 일어난 파당이 사림파였다. 사림파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학문 연구에 몰두하던 선비들의 집단이었다.
이들은 이상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부패한 정치를 비판했다. 청렴하고 깨끗한 정치를 주장하며 훈구파를 비판했다.
두 파당은 서로의 생각이 너무나 달랐다. 훈구는 너무 현실적인 반면 사림은 너무나 이상적이었다. 이러다보니 매번 다투었고 갈수록 대립은 심화됐다.
이념과 가치관이 다르다보니 끝없는 대립으로 이어졌다.
무오사화를 비롯한 숱한 사화가 줄을 이었고 서로 피바람을 몰아가며 죽이고 죽었다.
조선의 파당은 그렇게 혼란을 이어가며 조선역사를 관통했다.
이러다보니 백성들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피폐한 삶속에서 죽지 못해 살았다.
1592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곧이어 발생한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 등 외침을 숱하게 받은 것도 이런 파당과 무관치 않다. 게다가 이런 난리가 날 때도 서로 지지고 볶고 싸웠다. 물론 상호 견제와 균형이란 측면에서 또 진보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일면도 있었다.
50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정치는 여야의 심각한 대립으로 나라가 혼란스럽다. 혹자는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정치가 혼란스럽고 혐오스럽다. 반으로 쪼개진 여론과 국민 갈등 구조의 원인은 정치에 있다. 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여당은 무조건 수성에 몰두하고 있다. 현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우리 편을 앞세운다. 이에 반하면 적이다.
영부인 문제도 그렇다. 국민들은 그렇다고 하는데도 여당은 아니라고 한다. 용산은 더욱 아니라고 한다. 국민이 무지하고 몽매한 이들이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국민들이다. 정부는 모든 국민의 촉수 끝에 올라 앉아 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그들이 하는 언행,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국민의 촉수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들도 국민들이기에 그렇다.
곧 비밀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함에도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해 국민들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아주 큰 착각이다. 국민은 속지 않는다. 적확하게 알지는 못할지라도 거의 대부분은 알고 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다.
이는 비단 영부인문제 뿐만이 아니다. 현 정부의 인사문제도 그렇고 검찰공화국이란 오명을 듣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생각하는 바가 있다.
본인들은 무슨 문제냐고 하지만 화합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세상을 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음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의료대란도 그렇다. 이만한 예상도 못하고 대처할 능력도 없이 일만 벌여놓은 꼴이다. 답답한 것은 국민들이다. 위정자들은 주치의가 따로 있다. 그들이 아프면 주치의들이 알아서 치료해 준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 고통을 참아야 하고 심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의료대란이다.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도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당당하다.
야당도 다를 게 없다. 솔직히 야당의 사법리스크에 대해 국민들은 다 안다. 법대로 하자지만 지켜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에 증거를 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증거를 댈 수 없는 일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다. 인간적으로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것도 잘 안다. 일부 극렬지지자들은 그게 무슨 문제냐고 말한다. 하지만 형수에게 혹은 형에게 한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국민은 안다.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런 면모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를 추종하는 이들은 무조건이다. 그를 감싸기 위해 당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특정인을 위한 정당처럼 여겨진다. 반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들추는 추태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힘이 든다. 사는 게 어렵다. 갈수록 체감경기는 내리막길이다.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대간하다.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게 고역인 경우도 많다.
청년들은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하고 세월의 강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흘러가다보면 무슨 수가 나지 않겠냐는 심사다. 노인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그들이 갈 곳은 없다. 산이나 들로 쏘대는 일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다. 등산도 하루 이틀이다. 언제까지 산만타고 산단 말인가.
국가를 경영하며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산적한 일의 처리도 부지기수다. 지금처럼 여야가 싸우며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선정한 것은 대신 일을 봐달라는 요청이었다. 가서 놀고 싸우고 패거리로 세상 시끄럽게 하라고 해준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국론이 반으로 갈라 혼란스럽게 하라고 선량들을 뽑은 게 아니다.
국제 정세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 대선의 결과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방향은 또 어떻게 진전될 것이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북한의 미치광이 노름은 또 어떠할지. 중국은 우리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런 와중에 여야는 조선시대를 관통한 파당들처럼 물고 뜯고 싸움질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신 좀 제발 차려라. 국민들이 어떤 어려움에 내몰리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봐라.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봐라. 이 나라 정치인들에게 하는 국민으로서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