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선의 '우아한' 산책] '블랙홀' 수도권 집중과 중력의 법칙
입력: 2024.08.28 00:00 / 수정: 2024.08.28 00:00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대한민국의 사람과 재화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수도권으로 인구 이동이 4만 7000여 명, 올해는 상반기에만 이미 3만여 명을 넘어서면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더팩트 DB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대한민국의 사람과 재화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수도권으로 인구 이동이 4만 7000여 명, 올해는 상반기에만 이미 3만여 명을 넘어서면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더팩트 DB

[더팩트 | 진희선 칼럼니스트]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대한민국의 사람과 재화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수도권으로 인구 이동이 4만 7000여 명, 올해는 상반기에만 이미 3만여 명을 넘어서고 있다. 올 6월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3억 원,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전체 아파트 가격은 3억 5000만 원으로 9억 5000만 원 차이가 난다.

10년 전인 2014년만 해도 이 차이는 3억 1000만 원이었으나 집값 상승 시기였던 2018년에 6억 2000만 원으로 그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서울 아파트 한 채를 팔면 지방 아파트 3채를 살 수 있다. 그런데 조금 더 기다리면 4채, 5채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의 속도로 가격 차이가 벌어진다면 말이다. 문제는 그럴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를 압축해서 대변하는 2개의 지표가 있다. 출산율과 집값 격차다. 0.6%대 수준의 출산율은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적격한 지표다. 열악한 출산과 보육 환경, 감당하기 어려운 사교육비에다가, 대학을 마치고 나면 치열한 취업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벌한 경쟁을 해야 한다. 지금 청년들은 본인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생존하고 있는 마당에 아이를 낳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출산하고 싶은 의욕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총체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문제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고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출산율이 높아지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살기 좋은 사회가 너무 욕심이라면 살 만한 사회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사회적 문제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초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아이 낳으면 얼마를 더 준다는 식으로는 출산율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대한민국의 지역 간 불균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는 지역별 주택가격의 격차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지방은 소멸해 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ICT, 플랫폼을 기반으로 산업 고도화가 이루어지면서, 기업들은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다. 인재들이 풍부한 서울, 규모 경제의 효율성을 쫓는 돈의 흐름을 타고 수도권 쏠림은 가속화되고 있다. 창업자들에게는 다양한 부류의 인적 네트워크 속에 풍부한 수요를 갖춘 수도권이 지방에 비해 창업하기에 훨씬 좋은 환경이다.

일자리와 경제가 집중되고, 거기에 교육과 의료, 문화 수요가 곁들어지면서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심화된다. 많은 사람이 수도권으로 몰려오면서 살 집을 구하니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지방은 인구가 줄고 경제 규모가 줄어드니 집값이 상대적으로 쌀 수밖에 없다. 수도권 집중 결과로 국민이 가장 절실하게 현실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주택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수도권 집중은 지역 간 불균형에서 비롯되었다.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서울의 집값은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며, 지방과의 집값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 해소가 국가 과제로 채택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4년 ‘대도시 인구 집중 방지책’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광복이 되는 1945년 90만에 불과했던 서울 인구는 1960년에 244만 명에 이른다. 당시 박정희 정부에서 수도권 인구 집중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 이후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제정되어 대규모 인구 유발시설의 수도권 입지를 강력하게 제한하면서 지방 도시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서울에 있는 공장 이전을 촉진했다. 행정복합도시가 세종시에 들어서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더불어 혁신도시사업이 추진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방분권과 ‘부울경특별연합’을 내세우며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할 정책을 모색했다. 현 정부에서는 지방시대위원회를 신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60년 동안 수도권 집중을 규제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수백조의 재정을 부었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인적 물적 재화는 끊임없이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228곳 기초지자체 중 지방 인구 소멸지역이 2005년 33개였는데, 20여 년 만인 2024년에 130개로 늘어가고 있다. 국토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2019년을 기점으로 국가 인구의 절반이 넘어서고, 지금은 70만 명이 비수도권보다 더 많다.

우주의 시원은 빅뱅에서 시작된다. 카오스의 혼돈과정을 거치며, 질량을 가진 물체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서로 끌어당기고 고도의 압축과 응축 결과, 무수한 항성과 행성의 무리가 탄생했다. 이렇게 탄생한 항성과 행성의 무리는 질서와 조화를 지니는 코스모스라는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 태양계를 보면 태양을 중심으로 여러 행성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일정한 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만약 어떤 행성이 자기 고유의 중력을 상실한다면 다른 행성에 빨려들거나 태양에 흡수되어 버릴 것이다.

지방의 인적 물적 재화가 끊임없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지방 고유의 중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블랙홀'이 되어버린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지역마다 자기의 고유한 중력을 갖춘 성장거점도시를 육성해야 한다. 지역의 물적 인적 재화를 집중화하여, 특정 분야에서는 서울과 맞짱을 뜰 수 있을 정도의 성장거점도시를 키워야 한다. 기업, 교육, 의료, 문화 등이 함께 어우러진 100만 명 내외의 인구를 갖춘 성장거점도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생활권 단위의 경제적 순환 생태계가 형성되고, 규모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져 고유의 중력을 갖춘 도시로 자립할 수 있다.

지역별로 성장거점도시가 조성되면, 이를 중심으로 농어촌 마을과 함께 도농복합 생태계가 조성된다. 농어촌은 도시에 싱싱한 먹거리 식자재를 공급하며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풍부한 자연 인프라를 제공한다. 성장거점도시는 농어촌 사람들에게 필요한 양질의 의료와 교육, 공공 인프라 시설을 제공하며, 다양한 쇼핑과 다채로운 문화시설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기업들이 일자리 생태계를 구축하여,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굳이 수도권을 부러워하지 않고 인근 성장거점도시에서 직업을 구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우주의 극히 미세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문제는 우주의 법칙에 그 답이 있다. 대한민국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역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jhseon1@naver.com

※ 본 칼럼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더팩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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