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 이광희 문화 엿보기] 평생 소나무를 그리는 소나무 화가 임영우 화백, 한국인의 푸른 기상과 의지를 그리다
입력: 2024.07.05 09:06 / 수정: 2024.07.05 09:06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15번째 개인전 열어

임영우 화백.
임영우 화백.

[더팩트 | 이광희 기자] "같은 일을 반복하면 지루함이 있어요. 하지만 소나무 그림을 그리는 데는 지루함이 없어요. 매번 새롭지요. 열심히 그리고 계속해서 소나무를 그리지만 그때마다 모두 다르게 그리다 보니 늘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어요."

"소나무는 한국인과 참으로 많이 닮아 있다"고 말하는 화가는 "역사 속에서 소나무는 집이 되고 마루가 되고 가구가 되었지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솔잎을 금줄에 매달아 잡귀를 막았어요. 땔감이 된 것도 소나무였지요. 한국인의 삶 속에서 소나무는 땔 레야 땔 수 없는 존재였지요."

그래서 그는 지금도 소나무를 그린다. 늘 푸른 기상과 의지와 그 배짱이 좋아서다. 눈 내린 천지에 고고하게 버티고 서서 이 땅의 주인이 바로 소나무 자신이란 것처럼 담대한 모습으로 강산을 지키는 것이 좋아서다.

화가는 1969년 소나무 유화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러하듯 소나무는 먹으로 그려왔다. 동양화가 그러했다. 하지만 서양화로 소나무를 그리는 이는 없었다. 그해 유화로 소나무 전시회를 열자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소나무는 묵화로만 그리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 또 하나 생겼다. 우리나라 최초로 소나무를 서양화로 그린 화가란 것이다.

그의 오랜 작업 탓에 그의 작품 속의 소나무는 어울림과 명징한 의지가 돋보인다.

임영우 화백의 소나무와 하늘.
임영우 화백의 '소나무와 하늘'.

작품 '소나무와 하늘'(130.3×89.4/오일/2023)은 허리 굽은 두 그루의 소나무가 다정하게 화폭의 중심을 장식하고 있다. 굵은 둥치와 두꺼운 껍질은 오랜 세월 이 땅을 지켜왔음을 직감케 한다.

눈이 부실만큼 흰 구름과 그 사이로 빛나는 파란 하늘이 소나무의 기상을 더욱 명징하게 한다. 초록의 솔잎이 하늘인지 파란 하늘이 솔잎인지. 소나무는 하늘을 이고 그렇게 서 있다. 8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한 화가가 자신의 부인과 더불어 서 있는 듯하다. 어울리고 기대고 비비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두 그루의 소나무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임영우 화백의 하늘빛.
임영우 화백의 '하늘빛'.

작품 '하늘빛'(259.1×194/ 오일, 2022)은 오랜 풍상으로 허리가 꺾인 늙은 소나무를 화면 우측에 배치했다. 많은 가지는 좌측으로 기울도록 함으로써 안정감을 준다.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허리가 휜 늙은 소나무는 눈이 시린 파란 하늘을 이고 수 백 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우리의 역사이며 이 땅에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나무는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화가는 자신의 이야기 같은 많은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환희를 이 소나무에 새겨놓았다.

그림 앞에 서서 한동안 소나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허리 꼬부라진 외할머니 생각이 스치고 장마당을 다녀오신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 떠오른다.

고단한 농사일에 지친 몸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시던 엄마가 그리워진다. 다른 나무와 달리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했기에 더욱 애절함이 녹아나는가 보다.

소나무 뒤로 보이는 하늘빛은 희망이다. 현실의 고단함에 찌든 소나무의 배경이 되는 눈부시도록 청명한 하늘은 무엇보다 밝은 내일이 있을 것이란 예시이다.

화가가 이 작품을 하늘빛이라고 붙인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닐까. 지독하게 슬프도록 소나무만 그린 화가의 생각과 그리움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작품이다.

임영우 화백의 동행.
임영우 화백의 '동행'.

작품 '동행'(162.2×112.1/ 오일/2012)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소나무의 어울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휘어지고 꼬부라진 모습이지만 혼자보다는 함께라서 좋다. 소나무는 습생이 그러한지 모르나 곧게 자란 것보다는 꼬부라진 게 맛이 좋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그러하다. 잘생기고 잘난 이들은 모두 그들만의 굴레를 만들어 산다. 그냥 평범하게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이웃들이 정을 나눈다.

화가가 꿈꾸며 그리는 세상은 후자다. 그들이 사는 곳의 소나무다. 그래서 더욱 색감도 온화하다. 풀 섭이나 뒷배가 된 산도 모두 연록으로 뒤덮여 있다. 내 것과 네 것이 혼재된 소나무의 어울림이 평화롭다. 화가가 지향하는 세계가 바로 이곳에 있다.

올해 78세라는 나이에 걸맞게 그의 작품 활동은 왕성하다.

그는 "그림 작업은 끝이 없는 과정이다. 보이지도 않지만 그저 걷든 달리든 다가서려고 끝까지 매달려 본다. 요약된 자신의 모습을 담기 위해 도를 닦는 일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 세상에 여행 와서 가장 소중한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이라며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이번 여행의 최대의 목표이자 과제"라고 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계룡시문화원 초대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개인전 15회 200여회 초대전 및 단체전에 출품하고 제29대 대전시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또 그릴회 명예회장과 대전사생회 고문, 한국미협대전시지부 초대작가로 그림과 연을 맺고 있으며 계룡시 엄사면 자신의 집에 작업실을 두고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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