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주식 논란' 소명 없는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자격 있나
입력: 2024.06.12 00:00 / 수정: 2024.06.12 10:25

미공개 정보 이용해 주식 매입 의혹
애꿎은 LG복지재단만 이미지 훼손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는 미공개 정보로 주식을 대량 매입해 거액의 수익을 거뒀다는 의혹과 관련해 3개월째 침묵하고 있다. /더팩트 DB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는 미공개 정보로 주식을 대량 매입해 거액의 수익을 거뒀다는 의혹과 관련해 3개월째 침묵하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LG 2대 회장인 상남(上南) 구자경 명예회장은 지난 1991년 LG복지재단을 세웠다. 교편을 잡은 경력이 있었던 그는 기업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에도 인재 육성과 소외 계층 지원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그 실천의 일환으로 LG복지재단을 만들어 아낌없는 지원에 나섰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나눔 정신은 3대 회장인 화담(和談) 구본무 선대회장으로 이어졌다. 구본무 선대회장은 LG복지재단을 통해 사회 곳곳의 '숨은 영웅'들을 찾아 상패·상금을 수여하는 '의인상'을 제정했고, 구광모 회장 체제 아래 '의인상'은 LG를 넘어 재계의 대표 모범 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25년 무료 진료를 이어간 '진주시 슈바이처',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2016년부터 운영된 '청개구리 식당', 남한산성 길목에서 김밥 장사로 평생 모은 전 재산 6억3000만원을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 등등. LG복지재단은 그간 알려지지 않던 훈훈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미담 대신 부정적인 이슈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중이다. 2022년부터 LG복지재단을 이끌고 있는 구연경 대표가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투자 정보를 사전에 알고 주식을 매입하는 등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하는 일이다.

사회적 귀감이 되는 복지재단의 대표이사가 벌였다고 보기엔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요약해 설명하면, 구연경 대표는 앞서 바이오 업체 A사의 주식 3만주를 매수했는데, 남편인 윤관 블루런벤처스(미국 실리콘밸리 기반 기관투자사) 대표 관련 호재성 발표가 나기 전에 미공개 정보를 이용, A사 주식을 개인적으로 매수해 거액의 수익을 거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A사 주가는 윤관 대표가 지난해 4월 500억원의 투자를 발표한 직후 16% 넘게 급등하기도 했다.

구연경 대표의 위법 소지는 금융당국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당장 법적 문제보단 논란의 여파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현재는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선대회장이 쌓은 공든 탑을 LG가(家) 장녀인 구연경 대표가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LG복지재단은 구연경 대표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고, 추후 부정 거래 행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지우기 힘든 수치스러운 흉터를 남기게 된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와 나눈다'라는 복지재단 설립 취지를 고려했을 때 개인의 배를 불리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의 논란을 야기한 것만으로도 구연경 대표가 물러나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는 비판적 시선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가 지난 2022년 8월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저신장 아동 성장호르몬제 기증식에서 어린이에게 기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LG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가 지난 2022년 8월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저신장 아동 성장호르몬제 기증식'에서 어린이에게 기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LG

구연경 대표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취득했더라도 '개인적 일탈'이라는 점에서 복지재단의 잘못으로 볼 순 없다. 그러나 구연경 대표가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며 조직을 움켜쥐고 있는 한 논란의 꼬리표는 쉽게 떼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재단에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킨 구연경 대표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구연경 대표 사퇴론'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단 이미지를 훼손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번 논란을 대하는 구연경 대표의 태도가 소극적이고 무책임해서다. 지난 3월 처음으로 주식 취득 의혹이 제기된 이후 지금까지, 사회공헌 활동이 아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LG복지재단이 줄곧 입길에 오르고, 당국의 조사 가능성이 제기됐음에도 전혀 수습 의지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실이 아니라면 의혹의 핵심인 '주식 취득 시점'을 밝히면 그만이지만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았고, 관련자인 윤관 대표 역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더팩트> 취재진은 LG복지재단을 통해 주식 취득 의혹에 대한 서면 질문을 구연경 대표에게 전달했으나, 아무런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구연경 대표는 LG복지재단 뒤로 숨어버린 모양새다. 그는 의혹 제기 직후 A사 보유 주식을 LG복지재단에 기부했고, 재계에서는 책임 회피 의도가 다분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기부하면 더는 문제 삼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구연경 대표의 기부 계획에는 제동이 걸렸다. 재단 이사회는 지난달 10일 관련 자료가 불충분하다며 수증(受贈) 보류를 결정했다. 주식을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고, 최악의 경우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고 판단해 기부 안건을 처리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LG복지재단은 구연경 대표의 기부 건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에 수억원의 기부금이 들어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번 건은 그렇지 않다. 차라리 구연경 대표가 '논란의 주식'을 재단이 아닌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재단이 압박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을 터다. LG복지재단은 보류된 기부 안건을 추후 다시 논의할 예정인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음 이사회 날짜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LG복지재단이 선대의 바람대로 '미담 제조'의 역할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구연경 대표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소명을 통해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거나, 복지재단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물러난 뒤 수습에 나서는 방법이다. 물론 그간 양상으로 미뤄볼 때, 구연경 대표가 두 가지 중 하나라도 택해 복지재단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보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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