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다시 5‧18 …'사람 할 일 했다'는 기억의 자부심을 소환하며
입력: 2024.05.03 09:02 / 수정: 2024.05.03 09:02

민주주의 본질적 가치 지키려는 집단지성의 마음 위에 5월정신은 꾸준히 존립할 것

5.18 44주기를 맞았다. 그렇듯 긴 세월이 흘렀지만 광주의 5월을 향한 폄훼와 왜곡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 시민들이 마음을 다치고 있다. 사진은 국립518 민주묘지./광주=나윤상 기자
5.18 44주기를 맞았다. 그렇듯 긴 세월이 흘렀지만 광주의 5월을 향한 폄훼와 왜곡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 시민들이 마음을 다치고 있다. 사진은 국립518 민주묘지./광주=나윤상 기자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사람이 그러면 쓰겠느냐. 사람이 할 짓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 어른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얘기다. 사람의 마음을 옳고 그름을 따지는 가치 판단의 중심에 둔 민족윤리의 자연스런 전래였을 법 싶다.

사람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을 갖춘 이'라는 의미 규정을 하고 있다. 영어에서도 '됨됨이'(personality, character)라는 해석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단순히 다른 종과의 구분을 위해 일컫는 보통의 명사는 아닌 셈이다.

전 삶을 거쳐 '똘레랑스'의 인문성을 주창해 온 휴머니스트 고 홍세화 작가의 5‧18에 대한 언급이 문득 떠오른다. 어느 학술모임에서 지인이 홍 작가에게 물었다. 총칼 앞에서 어떻게 두려움을 떨치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홍 작가가 이렇게 답했다 한다. 사람이니까.

광주는 5‧18 44주기를 맞고 있다. 이때쯤이면 기자들은 이번 5월에는 '무엇을 써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진다. 정부가 운영을 지원한 '5‧18 진상규명위원회'마저 눈에 띄는 성과를 내놓지 못해 욕을 먹는 마당에 기자들이라고 따끈한 특종을 찾을 리 만무하다.

더러 어떤 후배들은 기자에게 이렇게 묻기도 한다. 선배, 이번 5‧18에는 뭘 써야 돼? 난감한 질문이지만 이번 5‧18에는 그나마 제법 선배다운 답변을 해줄 수 있었다. 사람 얘기를 쓰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고 홍세화 작가 덕분이다.

1980년 그날 이후 44년의 시간을 맞고 있지만 광주의 5‧18은 여전히 '고독한 섬'이다. 정치권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이슈화하고 있고, 5월 관련 단체들은 국가 유공자 승격을 소리 높여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 5월 그날, 지금은 민주광장이라 불리는 광주의 금남로에서 군중에 뒤섞여 시위대열에 섰던 기자의 마음속에서는 그런 요구들마저가 왠지 낯설고 막막하다. 헌법 전문에 수록되기 위해, 국가 유공자가 되기 위해 그날 그 자리에 서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1980년 5월을 몸소 겪은 시민의 입장에서 여전히 명치 끝에 통증을 느끼는 까닭은 5‧18을 향한 조롱과 멸시 때문이다. 그 폄훼와 왜곡 앞에서 5‧18의 전국화‧세계화는 어쩌면 허울 좋은 깃발에 불과하다.

가짜유공자 논란, 5‧18을 소뼈처럼 우려먹는다는 비난에 기자는 충분히 공감한다. 깊이 성찰하고 아픔을 느껴야 할 사안이다. 신동엽 시인도 '4월도 껍데기는 가라'고 통렬하게 외쳤다. 그래야 4‧19의 알맹이를 온전히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5‧18은 어느 순간부터 진영 간에 프레임 싸움을 벌이는 정치적 의제가 되면서 도구화되고 때가 묻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설상가상, 이념논쟁과 지역주의가 덧칠되며 깊은 내상까지 입었다.

아무리 고귀한 혁명적 가치도 순백의 모습을 여전히 지켜갈 수는 없다. 세계사가 이를 증거한다. 껍데기는 껍데기일 뿐, 본질적인 가치의 소중함을 지키고 배려하는 집단지성의 마음 위에 광주의 5‧18은 존립하고 있다. 또 그렇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모체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해 갈 것이다.

끝으로 종북과 좌빨을 운운하며 5‧18의 역사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이들에게 이 말을 꼭 되돌려주고 싶다. 사람이기에 했던 일이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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