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근의 영화 속 도시이야기] 아가일-홍콩(Hong Kong)
입력: 2024.04.15 07:46 / 수정: 2024.04.15 07:46

야경, 쇼핑, 트레킹의 천국
보안법 강화에 우려 시각 많아


영화 아가일 포스터. (출처-IMDB)
영화 '아가일' 포스터. (출처-IMDB)

[더팩트ㅣ대구=김승근 기자] 홍콩이 ‘아름다웠던’ 건 야경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센트럴섬과 침사추이 양쪽에서 빅토리아항이 내려다보이는 마천루 사이로 펼쳐지는 음악과 레이저쇼가 결합된 빛공연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기는 하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아가일(Argylle)’에 아주 잠깐 나왔던 홍콩의 배경장면에 바로 이 야경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가 펼쳐진다.

영화에서 스파이 아가일 역을 맡은 헨리 카빌이 있던 곳은 세트이긴 하지만 침사추이의 ‘마르코 폴로 홍콩’ 호텔을 차용한 걸로 보인다. 영화에서 보듯 심포니 오브 라이트의 명당은 마르코폴로 홍콩이 위치한 하버시티쇼핑몰쪽이라고 하겠다. 이 화려한 빛의 쇼도 2004년부터 시작됐으니 올해로 20년이나 됐다. ‘홍콩 아가씨’ 노래가 나왔던 1940년대 후반에는 별들이 소곤대기만 해도 아름다웠던 밤거리였는데, 화려한 조명에 레이저까지 가미된 현재 홍콩 야경의 그 찬란함은 더 말해 무얼 하겠는가.

아가일 역의 헨리카빌이 홍콩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배경으로 연기하고 있다. (출처-IMDB).
아가일 역의 헨리카빌이 홍콩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배경으로 연기하고 있다. (출처-IMDB).

하지만 이제는 야경만 아름다운 곳이 될 개연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전 세계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일국양제라는 특이한 시스템이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홍콩 반환을 앞두고 1982부터 2년여에 걸쳐 열린 영국과 중국의 협상에서 양국은 일국양제 원칙에 합의했다. 즉, 홍콩이 반환돼 중국의 일부가 되더라도 정치적으로 공산정권이 아니라 민주체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50년 동안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1997년 홍콩의 중국반환과 더불어 슬금슬금 시작된 중국의 자치권강화로 2014년 우산혁명 발발과 같은 홍콩시민의 반발에도 중국이라는 큰 물결에 홍콩은 목까지 잠식된 상태다.

나아가 반정부 행위 처벌을 강화한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지난달 23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면서 이제 우리가 알던 홍콩은 외형만 남을 가능성이 높게 됐다. 각국 정부들은 외국인의 홍콩 여행과 비즈니스 모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는 전망을 내놓고 있으며, 여행자들도 유의해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높다.

더욱이 중국 본토 수준으로 ‘반간첩법’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일부 기업이 홍콩에서 철수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홍콩의 급중국화로 홍콩인의 자유가 박탈되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홍콩의 지위도 흔들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8월 주변 시세보다 30% 싼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했던 홍콩 청쿵(長江)그룹이 이달 초 다시 30% 할인된 가격에 신규 아파트 단지를 분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청쿵그룹은 홍콩 최대 부호로 꼽히는 리카싱(96) 회장이 창업한 회사다.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5%는 그의 주머니에 들어간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부자이면서 공공연히 중국에 대한 비판을 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청쿵그룹이 저가 매각에 나선 건 홍콩 사업을 접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냐는 반응들이다.

영화 아가일의 한 장면. (출처-IMDB).
영화 '아가일'의 한 장면. (출처-IMDB).

하지만 아직까지 여행객들을 상대로 한 정책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 본토도 단순 관광객은 별 불편함 없이 여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홍콩도 여행 제약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보안법 때문에 이야기가 길어졌다. 사실 홍콩은 야경보다 쇼핑 천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생산공장이 없다 보니 시민들의 의식주와 관련된 제품들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한다. 이는 홍콩의 지리적, 사회적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홍콩의 면적은 제주도만 하지만 인구는 12배 정도 많은 750만 명가량 된다. 문제는 홍콩 전역에 이 인구가 흩어져서 살면 그나마 좀 낫지만 홍콩 인구 대부분은 구도심인 침사추이와 홍콩섬, 신계 등에 모여산다. 홍콩 면적의 3분의 2 이상이 습지와 산이어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살 곳도 모자랄 판에 공장을 짓는 건 언감생심 무리다. 그러다 보니 홍콩에 수입되는 공산품은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홍콩 전 지역이 면세구역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담배, 알코올 30% 이상 술, 메틸알코올, 탄화수소 등 4개 품목은 소비세 형식의 세금이 부과된다. 가장 큰 세금이 부과되는 단 하나의 상품은 바로 자동차다. 등록세 명목으로 고율의 세금이 붙는다. 주차비용도 엄청 비싼 만큼 홍콩에서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중산층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쇼핑보다 홍콩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는 트레킹루트가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이제는 많이 알려진 드래곤스백(Dragon’s back)의 경우 아시아 최고의 트레킹코스로 알려져 있다. 케이프 콜린슨 화장장에서부터 토테이완까지(혹은 반대방향으로) 섹오산길을 따라 바다를 보며 걷는다. 중하급 코스지만 풍경도 좋고 바닷바람도 제법 있어 땀을 닦으며 걷기에 괜찮은 코스다.

영화 아가일의 한 장면. (출처-IMDB).
영화 '아가일'의 한 장면. (출처-IMDB).

케이프 콜린슨 화장장이 그렇듯 홍콩 대부분 화장장은 도심에 있다. 아파트가 바로 보이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다. 홍콩 사람들은 죽은 영혼들이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서 화장장이 가까이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그것보다는 인구가 많다 보니 그와 비례해 사망자수 역시 적지 않아 화장장에서 제때 수용이 쉽지 않은 게 더 문제다. 그러다 보니 홍콩의 화장장은 ‘대기’가 필수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는데도 올해 1월에 한 달을 기다렸다는 블로그 사연이 있을 정도다. 과거엔 평균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화장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 기다리다 보니 정작 장례식을 치를 때 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다리는 동안 슬픔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의 장례식장 장면에서 우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게 냉혈한인 갱들 가족의 죽음이라서가 아닌 것이다.

tktf@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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