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대통령·정치인보다 인플루언서 더 신뢰
상대 비난 풍토 여전…선거제 논의 진전 없어
지난 21일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정책네트워크가 공개한 '2023 교육정책 인식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직업별 신뢰도 결과, '정치인'이 최하위를 기록했다. /배정한 기자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우리나라 미래 세대가 대통령, 정치인보다 인플루언서를 더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1일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정책네트워크가 공개한 '2023 교육정책 인식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직업별 신뢰도 결과, 대통령(22.7%), 정치인(23.4%)보다 인플루언서(31.5%)가 높았다. 정치인에 대한 10대의 냉정한 평가다. 헛웃음이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치가 우리 현재 사회에 주어진 시급한 과제와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지 않고 무분별한 인기 영합이나 골수 지지층만을 의식한 극단 발언으로 국민께 피로감만 안긴 지 오래"라면서 "정치권에 대한 미래세대의 신뢰가 이처럼 바닥을 친 데에는 여야 모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사실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정부기관 중 가장 국민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로 24.1%에 불과했다. 신뢰도가 가장 높은 지방자치단체(58.8%)보다 두 배 이상 낮은 수치다. 국회는 2013년부터 꾸준히 최하위에 머무는 불명예를 안았다.
다소 흥미로운 점은 취재 과정에서 국회의원은 '국민'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공개 발언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여야가 내놓는 논평을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국민'이다. 대체로 '국민이 원하는' '국민이 요구하는' '국민이 바라는' '국민의 눈높이' 등으로 자주 표현한다. 주장을 합리화하는 데 국민을 소환하는 형태다.
모든 국민이 진짜 동의하는지 꼬치꼬치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의 언어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긴다. 선출직 고위공직자인 의원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되는 세비를 받는 이유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굳이 따지자면 국민은 고용주이고, 의원은 임기제 계약직인 셈이다.
여야 간 선거제 개편 논의는 진전이 없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제·선거구를 선거일 1년 전에 확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이제 각 정당과 의원은 4년마다 돌아오는 '국민의 평가'를 앞두고 있다. 국회 (재)입성을 노리는 정치인들과 의회 권력을 잡기 위한 정당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흑색 비방전이 판치는 구태 정치가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상대를 깎아내려 민심을 얻으려는 선거 풍토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야는 혁신을 외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적 쇄신, 공천이다. 선거철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이라서 그럴까. 큰 기대감이 들지 않는다. 금배지를 노리는 이들은 많고, 정원은 300명으로 정해져 있어 어느 정당에서든 필연적으로 잡음이 새어 나온다. 민주당에서는 친명계의 '자객 출마' 논란, 국민의힘에선 김경율 비대위원의 사천 논란이 뜨겁다.
비단 공천 문제뿐 아니다. 총선이 불과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여야 간 선거제 개편 논의는 진전이 없다. 특히 민주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와 병립형 비례제 회귀 여부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유리한 선거제를 고집한다는 비판이 많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제·선거구를 선거일 1년 전에 확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깜깜이 선거' 구태는 또 반복되고 있다.
이도 모자라 여야는 '쌍특검법'(김건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재표결,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 강성희 진보당 의원의 행사장 강제 퇴장 등 여러 이슈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여야가 지속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함으로써 정치를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여야가 국민과 법을 우습게 여기는 듯한 모습을 이제는 그만 보여야 한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바닥을 치고 있는데, 지지를 호소하는 게 가당키나 할까. 의원들이 우리나라 미래 세대가 최하위 점수를 준 것에 대해 창피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다른 일반 국민도 청소년들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 살을 깎는 정치인의 책임 없는 정치, 그만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