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원장 수락 한동훈, '구원투수' 아닌 '대타'
한동훈, 野 '윤석열 아바타' 프레임 벗을까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그는 20일 법무부 장관에서 사퇴, 이르면 오는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다. 사진은 21일 정부과천청사 대강당에서 진행된 이임식에 참석해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청사를 떠나던 한 전 장관. /배정한 기자 |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정치권에 돌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그 역시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및 정치권에서는 한 전 장관 결정을 놓고 여당의 '구원투수'라고들 한다. 그는 과연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한 전 장관을 '구원투수'로 보지만 사실 야구 경기에서 구원투수가 등장하는 상황과는 좀 거리가 있다. 구원투수는 대체로 승기를 잡았을 때 운용한다. 야구에서는 선발투수 호투로 5회를 넘기며 1~3점차로 앞설 때 '중간계투→셋업맨→마무리투수'로 경기를 마무리한다. 이때 선발투수를 제외한 투수들은 팀의 필승조다.
반대로 점수에서 뒤지고 있다면 일반적으로 구원투수를 운용하지 않는다. 패배가 확실하면 패전처리조가 나서고, 따라갈 수 있을 때 추격조를 내보낸다. 만약 한국시리즈 7차전 마지막 경기로 1~2점대 근소한 차이라면 '중간계투 승리조→셋업맨→마무리투수'를 운용해 경기를 뒤집기도 한다. 한 전 장관이 정치권에 등판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한 전 장관 상황을 야구와 비교한 이유는 그의 발언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한 전 장관은 본인을 투수가 아닌 타자로 지칭했다. 그는 21일 이임식 후 백브리핑에서 비대위원장 수락에 대해 "9회 말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국민의힘의 반전을 위해 한 방을 노리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구 마니아라는 점에서 한 전 장관의 비유가 참 재미있다.
그가 말한 9회 말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타자가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는 건 주자 없는 동점이거나 1~3루에 동점주자와 역전주자가 있는 경우다. 한 전 장관이 원하는 상황은 아마도 역전주자가 있는 상황이 아닐까. 그런데 야구에서는 그가 말한 상황에서 삼진 혹은 내·외야 플라이 아웃, 땅볼 등 아웃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물론 이변도 있다. 스포츠가 그렇다.
한 전 장관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수락과 관련해 "9회 말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반전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새롬 기자 |
야구란 스포츠는 기록과 통계를 분석해 경기를 운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운동경기와 차별성을 띤다. 대부분 운동경기에서는 선수가 지쳤거나 부상, 컨디션이 저조할 때 교체한다. 특이점이 있다면 야구의 '대타'(代打) 제도다. 대타는 감독이 가장 믿는 선수다. 그동안의 기록과 통계를 분석해 상대 투수의 공을 때릴 수 있는 선수가 대타로 타석에 선다. 실력과 '신뢰'가 바탕이다.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는 게 대타의 역할이다.
한 전 장관은 자신의 역할을 '대타'로 생각한 것 같다. 국민의힘이 한 전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낙점한 것은 그를 대타로 내세워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인물로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한 전 장관을 단순한 '윤석열 아바타'가 아니라고 분석한 것이다.
민주당에선 애써 한 전 장관을 평가절하하면서도 위기감이 감지된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으로 꼽히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22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윤석열 대통령과는 다르다.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며 "민주당에서 그의 등장을 낮게 평가하며 '한나땡'(한동훈 나오면 땡큐)을 말하는 분들의 1차원적 사고를 보며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냉철한 판단과 강력한 실행으로 여당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며 "민주당이 막연히 한 비대위원장의 실책만 기다리고 방심하다가는 필패할 것이다. 민주당은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굳게 단합해 혁신해야 한다. 너머에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제 여의도 정치권의 관심은 타석에 들어선 한 전 장관이 어떤 타격을 보여주느냐다. 분명한 것은 한 전 장관이 걸었던 검사, 그리고 법무부 장관과 여의도 문법이 180도 다르다는 점이다. 얼마나 이르게 적응해 반전의 장타를 때릴지는 한 전 장관에게 달렸다. 그에게 날아오는 공은 직구는 기본이고 체인지업, 슬라이더, 포크볼 등 다양한 구질의 견제구일 것이다. 당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온갖 곳에서 변화구가 날아오는 게 여의도 정치권이다. 여기서 한 전 장관은 '컨택 히터'와 '파워 히터' 중 선택해야 한다.
한 전 장관이 타석에 들어선 순간 야당은 '김건희 특검법'을 던질 예정이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까, 아니면 받아들일까. 그의 선택에 따라 당정 관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만약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다면 '윤석열 아바타'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한 전 장관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전략을 내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변화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한 전 장관도 여의도 정치로 들어왔으니 '조선 제일검'이란 타이틀은 뒤로하고, 변화무쌍할 필요가 있다. 과거 검사 한동훈 법무부 장관 한동훈 문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한 전 장관 본인이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상황이라 표현한 만큼 대타로서 어떤 타구를 날릴지 궁금해진다.